우리나라 기업들은 대부분 12월 결산 상장법인이기 때문에 3월에는 정기주주총회, 사업보고서, 감사보고서 등 회계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절차가 다른 달보다 많습니다. 이 때 보고서를 누락하거나 상장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던 부실기업들이 드러납니다. 이런 이유로 금융투자업계에서는 3월을 상장폐지 시즌이라고 부르죠.
주식투자를 할 때 가장 두려운 것 중 하나는 본인이 투자한 종목이 거래되지 않는 것입니다. 일련의 이유로 거래가 정지됐다가 재개되면 다행이지만 상장폐지라도 되는 날엔 그야말로 투자한 돈이 공중분해되기 때문이죠.
상장폐지(상폐)는 증권시장에 상장된 증권이 매매대상 유가증권으로서 적격성을 상실해 상장 자격이 취소되는 걸 의미합니다. 종목이 상폐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우선 사업보고서를 미제출할 경우 상폐될 수 있습니다. 상장사는 법정제출기한(사업연도 경과 후 90일, 분기·반기 45일) 이내에 사업보고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만약 법정제출기한에 제출하지 않으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됩니다.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후 법정제출기한부터 10일 이내 사업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상장폐지 기준에 부합하게 됩니다.
법정제출기한은 12월 결산 법인을 기준으로 대부분 4월 1일까지라고 보면 됩니다.
최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사업보고서 제출기한을 연장하는 상장사들이 유독 눈에 띕니다. 사업보고서 제출이 지연되는 기업에 대한 투자는 반드시 유의해야 합니다. 단순히 물리적 시간이 부족했을 수도 있지만 재무적으로 문제가 많은 기업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보고서 제출기한 연장을 원하는 회사 중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기업들이 꽤 높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이달 사업보고서 제출기한 연장 신고서를 공시한 기업들은 코스피 상장사의 경우 7개사, 코스닥 상장사의 경우 30개사로 집계됐습니다.
이들 기업이 사업보고서 제출기한을 연장하려는 사유는 모두 감사보고서 제출이 지연됐기 때문입니다. 감사보고서는 주로 정기주총 일주일 전에 제출해야 합니다. 주총시즌이 막바지에 달하면서 감사보고서 지연을 이유로 사업보고서 제출기한을 연장하려는 기업들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투자하려는 기업의 감사보고서도 꼼꼼히 살펴봐야 합니다. 감사인 의견이 부적정 또는 의견거절인 경우에도 상폐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코스피 상장사는 2년 연속 감사보고서 감사의견이 감사범위 제한 한정인 경우, 코스닥 상장사는 부적정, 의견거절, 범위제한 한정인 경우 상폐 대상에 오릅니다.
이밖에 3년 이상 영업정지, 부도·도산·파산, 주식분산율 기준 미달, 거래량 기준 미달, 시가총액 50억원(40억원) 미달, 완전자본잠식, 3년(2년) 이상 자기자본 50% 이상 잠식,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에서 부적격 판정이 나왔을 경우 등이 상폐 기준에 해당합니다.
이 중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는 더 엄격하게 개선될 것으로 보입니다. 금융당국이 심사절차를 단축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거래소가 2009년 도입한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는 자본잠식, 매출액 미달, 횡령·배임, 영업정지 등 시장거래 부적합 사유가 발생할 경우 심사를 진행합니다.
현행상 코스피에서는 기업심사위원회(기심위), 상장공시위원회 등 2심제로 구성됐으며 코스닥은 기심위, 1차 시장위원회, 2차 시장위원회 등 3심제입니다.
기심위에서는 심의·의결을 통해 상장유지 또는 상장폐지, 최대 1년 개선기간을 부여하고, 코스피 상장사는 추가로 1년 더 부여 받을 수 있습니다.
기심위에서 상장폐지가 결정될 경우 상장사가 이의 신청할 수 있으며 코스피는 상장공시위원회가, 코스닥에서는 시장위원회가 상장 폐지 여부와 개선기간을 재결정합니다. 상장공시위원회는 추가로 최대 2년까지 개선기간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에 코스피 상장사는 최대 4년간, 코스닥 상장사는 최대 2년간 개선기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밖에 심사보류, 소송 등이 이어지면 상장폐지 기간은 더 길어집니다.
금융당국은 상폐 사유가 발생해 거래가 정지된 ‘좀비기업’에 묶인 자금 등이 증시 활력을 떨어뜨린다고 보고 개선절차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