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6월 금리 인하설을 띄우는 가운데 국내 물가가 쉽게 잡히지 않거나 더 오를 경우 한국은행 입장에서는 금리 인하 시점을 잡기가 더 곤혹스러워질 수 있다.
27일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에 따르면 이번주(3월 25일~26일) 세계 3대 유종의 배럴당 평균 가격은 브렌트유 86.5달러, 두바이유 85.84달러,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81.78달러로 집계됐다. 올해 1월 1주차(1월 2일~5일) 평균 가격과 비교하면 각각 11.4%, 10.8%, 13.1% 상승한 수치다.
지정학적 리스크 심화가 유가 상승의 배경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무력 충돌로 촉발된 중동 분쟁이 장기화하는 양상이며 우크라이나의 지속적인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으로 수급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수출이 두 달 연속 감소한 데 더해 이라크가 향후 수개월간 원유 수출을 하루 330만 배럴로 제한키로 한 것도 유가 오름세를 부추겼다.
유가 변동이 미국 물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가 초미의 관심이다. 지난 1월 미국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4% 올라 예상치에 부합했다. 유가 상승세 둔화가 호재로 작용했다는 게 중론이다. 오는 29일(현지시간) 발표될 2월 PCE 물가가 예상보다 높을 경우 연방준비제도(Fed)가 6월께 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이라는 시장 기대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국내 물가는 유가에 더 민감하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탓이다. 지난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1%로 재반등한 상태인데 고유가 악재까지 추가되면 정부가 기대하는 2%대 물가 조기 안착은 요원해진다. 한은이 발표한 2월 수입물가지수는 전월보다 1.2% 올라 2개월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 수입물가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
통화정책을 주관하는 한은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한은은 지난달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상반기 브렌트유 평균 가격을 배럴당 82달러로 전제했다. 현 시세는 한은의 예상을 훨씬 웃돌고 있다.
미국 물가가 들썩여 6월 금리 인하설이 무색해지면 한은도 금리를 내리는 시점을 더 뒤로 미룰 수밖에 없다. 시장의 관측대로 6월부터 미국 금리 인하가 시작돼도 국내 소비자물가 불안이 이어지는 상황이라면 한은도 섣불리 금리 인하에 나서기 어렵다.
안동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국제 유가에 큰 영향을 받는 데다 이미 농산물 등 가격도 많이 오른 상황"이라며 "현재 금리 수준이 낮지 않아 물가 잡겠다고 인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가계부채 부실 우려 속에 금리를 더 올리기도 어렵고 미국보다 먼저 내리는 건 더 힘들어 오도 가도 못하고 끼인 형국"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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