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확산에 필수인 반도체 수요 증가 흐름 속에 차세대 메모리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시장을 선점한 가운데 '반(反) 엔비디아' 진영이 속속 결집하며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비롯한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이 즐비한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는 과거 PC, 스마트폰 시대에 경험했던 반도체 초호황기가 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 이들의 AI 성능 개선용 차세대 메모리 기술인 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CXL)·고대역폭메모리(HBM) 관련주들의 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불과 6개월 전인 9월 27일 종가 기준 6만8400원에 불과했는데 최근 8만원선을 회복했다. 엔비디아 차세대 GPU에 탑재할 HBM3E를 양산 중인 SK하이닉스는 11만4700원에서 18만원 수준으로 올라섰다. 반도체 지식재산(IP)을 보유한 오픈엣지테크놀로지, 팹리스 업체 제주반도체, 장비 업체 한미반도체 등이 함께 급등했다.
CXL은 삼성전자 주도로 개발되는 AI 시스템용 차세대 고용량 메모리 연결 기술로 시스템 내부 데이터 이동 시 병목 구간을 줄이고 AI 서비스 동작 속도를 높인다. 지난 26일 미국에서 열린 글로벌 반도체 학회 '멤콘 2024'에서 삼성전자가 소개한 주요 메모리 솔루션이 CXL 기술에 기반한다. 최진혁 삼성전자 미주 메모리연구소장은 이 현장에서 "기술 혁신과 파트너 협력을 통해 AI 시대 반도체 발전을 이끌겠다"고 언급했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의 AI용 데이터센터 수요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HBM은 메모리에 단시간에 더 많은 데이터를 넣고 뺄 수 있도록 이동 통로를 넓히는 기술로, 이를 탑재한 GPU나 NPU는 AI 연산에 필요한 데이터를 더 빠르게 가져와 처리할 수 있다. 고성능 AI용 GPU 수요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엔비디아 제품에 이미 SK하이닉스가 개발한 최신 HBM3E(5세대 HBM) 메모리가 탑재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3·4세대 HBM에 이어 5·6세대 HBM 양산과 공정 선도 계획을 내놓고 이 분야 기술 주도권을 탈환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엔비디아 입장에선 이들 모두 잠재적 핵심 파트너다.
AI 반도체 주도주 엔비디아의 위상에 균열을 내기 위해 인텔, 구글, 퀄컴, ARM 등 글로벌 빅테크와 삼성전자, 네이버 등 국내 AI 주요 기업들의 합종연횡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소위 반 엔비디아 진영 대표 주자는 2023년 9월 결성된 기술 컨소시엄 ‘통합가속재단(Unified Acceleration Foundation·이하 UXL 재단)’이다. UXL 재단에서 인텔·구글·삼성·퀄컴·ARM 등이 리눅스 재단 산하 오픈소스 프로젝트로 AI 가속기 프로그래밍 모델과 이를 활용하는 애플리케이션 플랫폼 연계를 추진한다.
강동원 KB증권 연구원은 28일 보고서를 통해 "삼성전자는 자체 개발한 AI 추론용 칩(마하1)을 네이버 추론용 서버에 공급할 예정이고, 인텔도 자체 개발한 AI 추론용 칩(가우디)을 기반으로 쿠다를 벗어나 플랫폼을 구축해 네이버 AI 서비스를 구동하려는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며 "고비용(GPU+HBM)과 저비용(NPU+DRAM)의 중간 단계인 중비용(NPU+HBM) 하이브리드 AI 가속기를 요구하는 기업도 크게 늘고 있어 향후 AI 시장에서는 GPU, NPU, HBM, DRAM 상관없이 큰 폭의 성장이 예상되고 엔비디아 대 반 엔비디아 경쟁 가속화가 AI 시장 파이를 급격히 키우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한국투자증권도 전날 보고서를 통해 메모리 반도체 주가 상승은 이제 시작이라고 진단하고 "수요에 대한 의구심이 줄어들고 메모리 업사이클을 지지하는 쪽으로 시장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라면서 "HBM은 SK하이닉스 대비 경쟁 열위에 있으나 일반 DRAM 수요가 회복되는 구간에서는 생산력(Capa)을 확보하고 있는 삼성전자도 기회가 있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동반 상승할 구간"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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