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00만명의 시민이 이용하는 수도권 철도에서 안전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유는 '최저가 입찰제'의 부작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철도는 화재, 탈선, 고장, 연착 등 일단 문제가 발생하면 시민들의 발이 묶일 뿐 아니라 대형 인명피해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시민들의 목숨을 담보로 운영되는 철도차량 시장이 품질과 기술력이 아닌 가격 논리에 매몰되면서 국내 철도산업 경쟁력은 물론 시민의 안전까지 후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열차사고 30건중 25건이 한 곳의 제조사...최저가 논리에 갇힌 한국 철도시장
28일 정부·철도업계 등에 따르면 국내 철도차량 시장은 정부가 유일한 발주처로, 수요가 제한돼 매우 폐쇄적 구조를 지닌다. 철도시장은 국가계약법에 따라 규격·가격 분리 동시 입찰제, 일정 기술기준을 통과한 후 통과자에 한해 최저가 투찰자가 낙찰되는 2단계 낙찰 구조로 운영된다. 기술 평가가 있긴 하지만 평가기준이 모호한데다 최저점만 넘기면 되기 때문에 무의미하고, 최종 단계에서는 어차피 가장 저렴한 가격을 써낸 업체가 선택된다는 점에서 '최저가 입찰제'가 지배한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전언이다.
최저가 입찰제의 단적인 사례는 2021년 4월 부산 1호선 전동차 200량 교체 사업 입찰 평가 결과다. 당시 입찰에 참여한 국내 3개 제조업체는 1단계 기술평가에서 최소 기준인 85점을 모두 통과했지만 2단계에서 최저가를 적어낸 특정 A사가 최종 낙찰자로 선정됐다.
최저가 입찰제가 최근 주목받는 이유는 신규 도입한 열차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안전사고가 철도업계의 이런 관행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시장구조가 품질이 아닌 가격경쟁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발주처마저 정부로 한정적이다보니 철도 제조사들이 수익성 악화에 내몰리면서도 저가 수주 관행을 끊을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열차 품질의 하향 평준화와 철도사고 증가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철도공사 관계자는 "현행 제도는 입찰자의 능력 평가가 아닌 입찰자들 간 가격 출혈 경쟁만을 부추기기 위한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면서 "제조사의 기술력, 안정성, 적기 납품에 대한 신뢰성 등 사실상 납품하기 위한 모든 조건이 부족해도 최저가를 적어 내기만 하면 누구나 공급업체가 될 수 있는 방식"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철도노조가 이달(9~14일) 발생한 수도권 전동차 사고를 조사했더니 총 30건의 사고 가운데 25건의 사고가 중소 열차 제조사 A기업이 납품한 열차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의 80%가 넘는 수치다. A사가 납품한 열차에서는 SLV(보조전원장치) 화재, 중고장, 과전류, 보조휴즈 고장, 통신장애 등 원인도 다양했다. A사는 서울시가 2015년 전동차 경쟁입찰제도를 본격 도입한 뒤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철도수주를 싹쓸이하며 짧은 기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현재 철도시장은 1강, 1중, 1약 구도인데, A사가 전체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최저가 낙찰을 위해 낮은 품질의 중국산 부품을 사용하다보니 필연적으로 사고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 위례선에 투입될 A사 트램의 경우 차량의 기계·전기 분야 부품 34개 중 절반 가까이를 중국에서 공급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시장점유율 1위 업체 중국중차(CRRC)로부터 조달받는 부품이 대부분이다.
가장 저렴한 가격을 써낸 투찰자가 시장을 독식하다보니 국내 철도차량 업체들의 저가 중국산 부품 의존도는 점점 심해지는 추세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중국산 철도차량의 부품 수입액은 2018년 4206만2000달러(약 567억9631만원)에서 지난해 6887만7000달러(약 930억1838만원)로 5년 만에 63.8% 증가했다. 지난해 중국에서 들여온 수입액은 전체의 46%에 달했다.
문제는 기술과 품질이 충분히 담보되지 않은 업체들이 납품한 열차가 오는 202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민을 수송한다는 점이다. 정부의 노후전동차 교체사업의 대부분을 품질이 검증되지 않은 중소업체들이 수주해간 만큼 이들이 납품한 열차가 운행되기 시작되면 크고 작은 사고가 지금보다 더 빈번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익명을 요구한 코레일 관계자는 "쉬쉬하고 있지만 A업체 열차는 연속 운행하면 다운돼 배차간격은 물론 특정 구간은 운행하지 않는 사고가 하루에도 몇 번씩 발생하고 있다"면서 "AS나 리콜 등에 대한 구체적 지침도 없고, 수리 후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걸 보면 제조사도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신규 전동차 운행이 지난해 말부터 시작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안전사고는 계속 증가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철도 전문가들은 품질에 하자가 발생한 업체를 대상으로 한 패널티를 강화하고 입찰 기준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학과 교수는 "특정 기기, 특정 업체에서 지속적으로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동안의 평가 관례에서 벗어나 기술, 회사의 재정능력, 부품 등의 기준을 높여 고사양의 철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며 "스펙과 맞지 않게 설계하거나 지속 문제를 일으킨 곳에 대한 패널티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철도기술연구원과 코레일의 예산을 높여 전동견인기와 제동시스템, 윤축 같은 핵심 부품의 연구를 강화하고 입찰 인증기준을 높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선하 공주대 교수는 "철도의 부품별 문제를 파악해 내구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연구원의 지속적인 실험이 요구된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공공성 강화를 위해 안전기준을 높이는 방식으로 철도경쟁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코레일의 사장이 3년 주기로 바뀌면서 철도를 낮은 단가에 도입해 경영실적을 쌓은 이후 책임지지 않고 물러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이들이 사고에 대해서는 무책임하게 방관하기 때문에 저가 수주 관행과 각종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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