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학개론] 말 많고 탈 많던 크루셜텍, 어떻게 상장폐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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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레 기자
입력 2024-04-0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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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의록 통해 상장폐지 의사결정 과정 확인 가능

  • 코스닥심사위원회 위원 전원 크루셜텍 상폐 동의

  • 실적 개선 여력 불투명… 대표이사 도덕성도 비판

사진픽사베이 제공
[사진=픽사베이]
공시학개론 이번 편에서는 상장사들의 마지막 순간을 실제 사례를 토대로 다뤄보겠습니다. 가장 최근인 지난 2월 5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한 끝에 상장폐지가 확정된 전 코스닥시장 상장사 '크루셜텍'의 회의록을 핵심 사안 위주로 간략히 들여다보겠습니다.

우선 지난해 12월 15일 열린 마지막 심의에는 코스닥시장위원회 전체 위원 9명 중 6명이 참석했습니다. 여기에 안건준 크루셜텍 대표가 동석했고 크루셜텍의 경영권을 인수하려 한 이미지스테크놀로지(이미지스) 김정철 대표이사도 추후 같이 자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회의는 △안건 보고 및 논의 △심사회사(크루셜텍) 의견 청취 △안건 의결 △폐회 순으로 진행되는데요. 회의 후반부에는 안 대표가 겸직하고 있는 레이저쎌 문제도 거론되는 등 다각적인 질의가 이어집니다. 
 
안건 보고부터 상장폐지 기류 조성 
먼저 참석 위원이 크루셜텍이 신규사업으로 추진하는 진공기반 스팀전사방식 기술 VS(Vacuum Steam)솔루션 사업 매출은 이전에 없었는지 묻습니다.

이에 거래소 관계자는 "2022년과 2023년에도 신규사업으로 진행하겠다고 하고 매출이 발생하지 않았는데, 내년 해당 부분에서 매출이 22억원, 영업이익 6억원을 시현한다는 계획을 제출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해당 위원은 "이 사업(VS솔루션 사업)을 제외하면 영업이익 7억원(크루셜텍이 제시한 전체 영업이익 목표액) 달성도 어려워 보인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거래소 관계자도 "기존 사업만으로 올해(2023년) 3분기까지 130억원 매출에 상당한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년에 단번에 수익성이 개선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동조했습니다.

코스닥시장위원회 위원장도 "그렇다"며 "상당히 장밋빛 예상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즉 크루셜텍이 제출한 개선계획 이행내역서에 대해 시장 위원회는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곧 이어 크루셜텍을 인수하려 한 이미지스에 대한 평가가 이어집니다. 위원 중 한명은 이미지스가 전환사채를 발행해 크루셜텍을 인수하려는 계획인지 질의합니다.

거래소 관계자는 "공교롭게 시기가 일치했던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며 "I사(이미지스)의 80억원 전환사채 공시를 보면 운영자금 목적으로 자금을 사용할 계획이고 구체적으로 연구 개발이나 생산자금 등으로 사용한다고 돼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어 "전환사채를 8월에 발행했고 인수와 관련 양사 간 인수의향서(LOI)를 체결한 것은 11월 20일"이라며 "회사(크루셜텍)는 11월 30일에 I사에서 실사를 완료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당시 이미지스가 제출한 '주요사항보고서(전환사채권 발행 결정)'에 따르면 운영자금 목적으로 80억원의 전환사채를 발행한다고 공시했습니다. 전환 시 발행될 주식 수는 총 262만8120주로 전체 주식 수 대비 14.46%에 해당하는 수준입니다.

그러면서 한 위원은 "I사가 크루셜텍을 인수하더라도 상장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도 만족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며 "속개 후 개선기간 부여는 굉장히 부담이 큰 결정이 될 것"이라고 상장폐지에 무게를 두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코스닥시장위원회, 경영권 매각 이슈 집중 질의
이어서 안 대표가 참석한 심사회사 의견 청취로 가보겠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매각 이슈가 핵심 화두가 됐습니다. 크루셜텍이 진행한 매각 협상이 번번이 결렬됐기 때문이죠. 그리고 대표의 의견도 계속 바뀌면서 시장위원회 위원들의 집중 질의가 전개됩니다. 

한 위원이 안 대표에게 지난 10월 시장위원회에서 복수의 회사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 협상은 모두 무산됐는지 묻자 안 대표는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이 위원은 매각이 성사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재차 질문합니다.

이에 안 대표는 "매각 상대방 선정 시 시너지를 가장 크게 생각했었는데 상대방은 그렇지 않았다"며 "상대방 회사가 스스로의 성장을 위해 심사회사(크루셜텍)를 인수하려던 경우가 있었다"고 협상 무산 이유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미지스와 진행하고 있는 인수 협상에 대해서도 "I사 대표이사는 개인적으로 잘 아는 분이지만 회사를 합치는 작업이다 보니 시간이 지연되고 있다"고 부연했죠.

그러자 위원장이 직접 나서 "I사는 최대주주(안 대표) 지분 7.95%를 인수한다고 했다가 입장을 철회했다"며 "대주주 지위를 상실하는 것 때문에 협상이 지지부진한 것 아니냐"고 되묻습니다.

이에 안 대표는 "크루셜텍을 창업하고 23년이 지났지만 유상증자로 130억원을 납입했고 주식을 매각한 적이 없다"며 "지금 와서 구주 매각은 본인에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이미지스의 재정 상태에 대한 질의가 이어집니다. 이미지스 또한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당기순손실이 지속됐고 2023년에도 영업손실을 기록해 결손금이 누적되는 등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죠. 위원들은 인수가 되더라도 운영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질지 의문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와 관련해 안 대표는 "결국 가장 큰 장점은 시너지"라며 "I사는 팹리스(설계 전문 회사)이기 때문에 생산시설을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우리 회사를 인수하면 100억원이 넘는 투자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인수 명분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이어 안 대표는 "회사 간 협력을 했을 때 그 어느 회사보다 시너지가 발생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심의가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번번이 변경되고 있는 경영권 매각 이슈가 등장합니다. 

위원장은 "지난 위원회에서 제시한 지분과 경영권 매각을 11월 30일까지 모두 완료하겠다고 했는데 다시 새로운 인수자와 12월 8일 경영권 양수도계약을 체결하겠다고 했다"며 "시장위원회가 계속해서 기다려줄 수 없다"고 다그치기도 했습니다.

안 대표는 이에 "빠른 시간 내에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짤막한 답변만 내놨죠.

이어 한 위원이 "(이미지스와) 최대주주 지분 및 경영권 매각이 체결됐나"라고 묻습니다. 이에 대한 답변은 안 대표가 아니라 김정철 이미지스 대표가 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 대표는 "우선 유상증자부터 하려고 한다"며 "심사회사 상황을 봤을 때 40억~60억원 정도로 보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유상증자 납입만으로 최대주주가 될 수 있어 경영권 확보가 가능하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다른 위원이 심사회사가 상장폐지되더라도 사업 확장 및 시너지를 고려해 유상증자에 참여할 의향이 있는지 묻자 김 대표는 "그렇다"고 답변했습니다. 

크루셜텍의 경영 정상화 가능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시장위원회 위원과 거래소 관계자는 상장 유지 요건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경영권 매각 이슈를 집중적으로 질의한 것으로 보입니다. 
 
안건준 크루셜텍 대표 윤리 문제 대두…결국 '상장폐지' 확정
이후 안 대표가 최대주주면서 대표이사 자리를 겸직하고 있는 레이저쎌 이슈를 끝으로 최종 안건 심의 결과가 나옵니다.

한 위원은 "심사회사가 어려워지는 중에 '○○○○(레이저쎌)'이 기업공개(IPO)를 했다"며 "현재 레이저쎌 최대주주로서 대표이사직을 겸직하고 있고 심사회사 핵심 인원이 ○○○○에서 근무하고 있다. 벤처기업협회 회장이라고 하지만 도덕적인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실제 안 대표는 지난 2022년 6월 레이저쎌을 상장시키면서 거래소에 (레이저쎌) 대표이사직을 3년간 겸직하지 않겠다는 확약서를 제출하기도 했는데요. 이를 비웃듯 안 대표는 상장 후 3개월 만에 레이저쎌 대표이사로 취임해 양사 대표 자리를 겸하고 있죠. 특히 크루셜텍과 레이저쎌 보고서에 있는 대표이사 경력에도 겸직 여부를 기재하지 않은 점에 대해 시장위원회와 거래소는 윤리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어서 최종 심의가 나옵니다.

한 위원은 "여태까지 지켜진 것이 없다. 회사가 제출한 계획도 신빙성이 떨어지고 향후 개선될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상장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없는 것으로 보아 상장폐지 의견"이라고 최종 심의 결과를 내놓습니다.

다른 위원도 "속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 위원회에 제시했던 계획을 변경하고 오늘도 진술이 바뀌었다"며 "계획의 신뢰성이 높지 않고 40억원의 유상증자를 하더라도 추가적인 자본잠식 가능성이 있다"고 상장폐지 의견을 냈죠.

이에 위원장은 "참석 위원 전원이 상장폐지에 동의하는 것을 확인하고 코스닥시장위원회 운영 규정 제9조에 따라 '크루셜텍 주권의 상장폐지 여부 심의·의결 건'에 대해 최종 상장폐지를 의결한다"고 최종 결과를 밝혔습니다.

기사 분량상 회의록에 수록된 모든 질의응답 내용을 담지 못하고 주요 사안 위주로 짚어봤는데요. 회의록을 보면 거래소와 시장위원회가 상장폐지를 두고 중점적으로 확인하는 부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상장 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 '실적 개선 여력'이죠. 실적 악화의 끝은 결국 자본잠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데요. 그만큼 투자 결정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잣대는 상장 기업의 재무상태와 성장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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