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최근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중고가 감가상각' 문제가 덮쳤다. 4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CNBC 방송은 최근 테슬라 신차를 포함한 전기차(EV)의 중고가 하락세가 가파른 걸로 나타나 전기차 구매 의욕이 떨어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저가형 전기차를 내놨던 테슬라의 경우 중고가 하락 폭이 커 구매자들이 굳이 신차를 사고 싶지 않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자동차 연구 웹사이트 아이씨카닷컴이 3월에 내놓은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출시 후 1~5년이 지난 중고 전기차 평균 가격은 지난 1년간 31.8% 하락해 감가상각액이 1만4418달러(약 1950만원)에 달했다. 반면 같은 기간 출시한 내연기관차의 중고가는 3.6%만 줄어 감가상각액이 10배가량 차이가 났다. 지난해 12월 기준 테슬라 모델X 중고가격은 1년 전보다 36% 내린 4만8511달러를 기록해 유독 큰 낙폭을 보였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1월 보도했다.
중고가는 차량의 선호도를 나타내는 핵심 지표로, 일반적으로 약 3년 된 모델에 대해 중고 구매자가 기꺼이 지불할 의향이 있는 금액을 집계한 결과다. 중고가 하락 폭이 크면 신차 구매 욕구가 위축될 수 있다. 아이씨카닷컴의 수석 분석가 칼 브라우어는 "중고 전기차 가격이 낮아지면 일부 구매자 선호도는 높아지나, 새로운 전기차에 대한 수요도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새 차를 구입한 프리미엄이 수년 만에 사라진다는 걸 아는 순간 그 가치가 낮아지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기차의 중고가가 워낙 싸다 보니 소비자들은 구매 방식도 바꾸고 있다. 되팔 때 제값을 못 받다 보니 전기차 구매자들은 리스(일정 기간 자동차 사용 권리에 대한 월정액을 지불하는 계약)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리스 계약 비율이 유럽 전체에서 약 60%를 차지하고, 영국 등 일부 시장에서는 9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도한 가격 경쟁'이 급격한 중고가 하락을 불렀다는 해석도 나왔다. 아이씨카닷컴은 테슬라의 공격적 가격 인하 전략이 중고가 폭락에 기름을 부었다고 진단했다. 테슬라가 판매 촉진을 위해 가격을 급격히 인하하는 전략을 취하자, 업계 전체적으로 중고가가 하락하게 됐다는 것이다. 가격 경쟁을 부른 시장 구조도 문제로 지적된다. 중국 전기차 1위 업체 비야디(BYD) 등이 신차를 헐값에 내놓으면서 테슬라 등 다른 자동차 제조사들도 앞다퉈 할인 경쟁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로이터통신은 5일 그간 추진했던 저가 전기차 생산 계획을 폐지하고 자율주행(무인택시)로 무게추를 옮길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이날 뉴욕 증시에서 테슬라 주가는 장중 6%까지 하락하며 혼란에 빠졌다. 이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소셜미디어(SNS) 엑스를 통해 보도 내용을 부인한 뒤 자율주행 무인택시가 오는 8월 공개된다고 전했다. 테슬라의 이 같은 결정은 중국 제조사와의 가격경쟁에 대한 압박을 감안한 결과로 로이터통신은 추정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