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강력한 인플레이션이 세계 금융시장을 충격에 빠뜨렸다. 인플레이션 리스크가 재부각되며 금리 인하 기대가 빠르게 후퇴했고, 엔화 가치는 34년 만에 처음으로 달러당 153엔대까지 추락했다.
10일(현지시간) CME페드워치에 따르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오는 6월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출 가능성은 전날 56%에서 17%대로 급감했다. 반면, 9월 및 11월에 연준이 첫 금리 인하를 단행할 확률은 각각 45%, 41%에 달했다. 올해 후반기에나 금리 인하가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 물가는 3%대에 고착하는 모습이다. 3월 CPI는 전년 동월보다 3.5% 오르며, 예상치(3.4%)와 2월 상승률(3.2%) 모두를 웃돌았다. 물가 변동성이 큰 에너지 및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CPI 역시 3.8% 올라, 예상치(3.7%)를 상회했다. 피벗 시기가 뒤로 밀리며 연 3회로 예측됐던 금리 인하 횟수는 1~2회로 줄었다.
시장은 CPI에 즉각 반응했다.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 인덱스는 이날 장중 1% 넘게 오른 105.3까지 치솟으며 지난해 11월 이후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장중 153.24엔까지 밀리며, 1990년 6월 이후 34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일본은행은 지난 2022년에 엔화 가치가 152엔까지 밀리자, 외환 시장에 직접 개입한 바 있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 일본 시장이 당장 개입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봤다. 포렉스빌의 수석 통화 애널리스트인 아담 버튼은 “이달에 일본이 개입할 가능성은 30% 수준”이라며 강달러가 엔화 약세의 근본 원인인 점에 비춰 일본이 섣불리 움직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금리 인하 기대 후퇴에도 유가는 꼿꼿했다. 브렌트유는 1% 오른 배럴당 90달러 선에 거래되며, 올해 들어 16% 넘게 올랐다. 블룸버그통신이 이란이 이스라엘의 군사 및 정부 시설에 미사일 또는 드론 공격에 나설 것으로 보도하며 유가 시장은 초긴장 상태다.
월가는 금리 인하 기대치를 줄줄이 낮췄다. 골드만삭스 소속 이코노미스트들은 첫 금리 인하 시기를 6월에서 7월로 미뤘고, 바클레이즈는 올해 금리 인하 횟수를 1회로 예상했다.
끝난 줄 알았던 금리 인상 가능성도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이날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시장은) 다음 금리 움직임이 인하가 아닌 상승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6월 금리 인하는 연준이 2021년 여름에 저질렀던 실수에 필적할 만한 위험하고 심각한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지금 당장 금리 인하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연준의 통화정책이 안갯속에 빠지면서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섣불리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가는 통화 가치가 급격하게 하락할 수 있어서다. 통화 약세는 수입 물가를 자극해 인플레이션을 촉발할 수 있다. 경기침체가 계속되는 유럽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유로존의 3월 CPI는 2.4%까지 둔화한 상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