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부동산 경기 침체와 기업금융(IB) 실적 부진으로 증권사들의 실적이 위축된 가운데 국내 4대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들은 기부 규모를 늘려 나란히 업계 상위권을 차지했다.
11일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증권사 사업보고서 기준 증권사 61곳 중 가장 많이 기부를 한 곳은 하나증권으로 지난 1년 동안 84억원을 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해 하나증권에 이어 NH투자증권은 66억원, 신한투자증권은 54억원, KB증권은 37억원을 기부하며 4대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들이 모두 수백억원을 기부했다.
기부금 증가 폭 역시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들이 우세했다. 가장 많이 기부 증가폭을 늘린 증권사는 NH투자증권으로 1년 사이 107% 이상 기부 금액을 늘렸다.
하나증권의 경우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적자 전환했지만, 기부금 증액률은 74%에 달했다. 신한투자증권의 기부금 규모도 57% 늘었다.
KB증권의 기부금 규모는 전년(80억원) 대비 53% 감소했다. 2022년도 영업실적이 좋지 않았다고 자체적으로 판단해 비용처리 되는 기부금을 줄였다는 것의 KB증권 측의 설명이다. 다만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201% 대로 늘어난 만큼 올해 기부금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기부금 액수 기준 4대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들이 나란히 1~4위를 차지한 건 지난해가 처음이다. 이전까지는 몇몇 금융지주 계열사와 삼성증권, 미래에셋증권 등이 함께 상위권에 있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금융지주가 금융당국의 개입을 의식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책무 강화 등을 위해 기부금 규모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근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손실 등으로 업황이 안 좋아, 기부금을 비용으로 인식한 주요 증권사들이 기부금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면서도 "반면 금융지주사의 경우 정부의 지적에 예민한 만큼 지주 차원에서 기부를 많이 장려하는 분위기다"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대형 증권사인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은 기부금을 각각 24%, 64% 줄였다.
해당 관계자는 “최근 지주사들이 ESG에 초점을 맞춘 만큼 사회 공헌 활동을 하도록 지시가 내려온다”며 “대외적인 시선과 질타에 더욱 예민해 (계열사를 통해서도) 영업이익과 별개로 기부를 더 많이 한다”고 말했다.
기부는 증권사의 주요 ESG 활동 수단이다. 지난해 증권사의 기부금 규모는 총 390억원으로, 전년(339억원) 대비 약 15% 늘었다.
또 다른 증권업계 관계자는 "최근 증권사들이 ESG 채권 발행도 확대하는 등 대외적으로 ESG 활동을 하고는 있지만 대외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은 기부가 최선이다"라면서 "다만 ESG에서 S(사회)는 하고 있지만, G(지배구조)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ESG 경영 개선을 위한 자구책 마련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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