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저지의 애플 매장이 노조 결성을 청원하면서, 애플의 노조 확산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전자도 올해 노조와 유례없는 마찰을 보이는 가운데, IT 업계 쌍두마차로서 과거 무노조 원칙을 고수했던 두 기업의 노사 상생 귀추가 주목된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쇼트힐스 애플 매장 임직원 104명은 '미국 통신 노동자 협회(CWA)'를 대표해 '국가노동관계 위원회(NLRB)'에 노조 설립 청원서를 제출했다.
존 내기(John Nagy) 애플 쇼트힐스 매장 노조 조직위원회 위원은 "노조 설립이 근로자들에게 존중과 급여, 혜택, 근무 여건 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라며 "사측은 이를 방해하지 말고, 근로자들이 결성 여부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라"고 촉구했다.
이번 청원을 두고 애플은 이메일 성명을 통해 "늘 시장 상위권 수준의 급여를 지급해 왔다"며 "모든 정규직과 시간제 직원에게 우수하고 포괄적인 혜택을 제공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미국 내 애플 매장의 노조 설립 청원은 이번이 다섯번째다. 애플은 1976년 창립 이래 무노조 경영 원칙을 고수해 왔지만, 2022년 메릴랜드 토슨과 오클라호마 시티 매장에 노조가 결성되면서 46년 만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애플은 2022년 12월 CWA 등으로부터 복지혜택 제외 등 노조결성 방해 의혹을 제기 받았다. CWA는 애플 매장 직원들을 대표해 해로운 작업장 조건과 적은 임금 등 다양한 불만사항들을 애플에 다수 제출해 왔다.
실제로 애플은 그동안 꾸준히 매장들의 노조 결성을 저지해 왔다. CWA와 노조로부터 직원들을 회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으며, 특히 2022년 4월 고용·노동법 전문 로펌인 리틀러 멘델슨 소속 변호사를 고용하며 대응에 나선 바 있다.
애플은 미국 내 270여개의 매장을 두고 있는데, 2023년 3월 말 2주간 각 매장 관리자를 통해 직원들에게 노조 결성의 위험성을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아울러 매장 직원들에게 "노조에 가입한다는 건 노조에 발언권과 권리를 넘기는 것"이라며 경고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애플은 메릴랜드 토슨과 오클라호마 시티 단 두 곳의 매장만 노조를 결성하는 성과를 얻어냈다. 애틀랜타와 세인트루이스 등은 노조 결성 시도를 철회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도 노사 갈등에 따른 힘겨루기로 상황이 녹록지 않다.
당장 2만명 이상의 조합원을 보유한 최대 노조 조직인 전국삼성전자노조(전삼노·NSEU)가 오는 17일 경기 화성시 삼성전자 부품연구동(DSR타워)에서 집회를 열고 시위를 비롯한 쟁의 행위에 나서겠다고 예고한 상황이다.
13일 사측이 집회 예정 장소에 봄철 맞이용 대규모 실내 꽃밭을 조성하자, 노조 측은 전례 없는 대규모 화단이라며 이를 집회 방해로 규정하고 항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969년 창립 이래 50년간 무노조 원칙을 지켜오다, 2020년 이재용 회장의 '무노조 경영 종식' 선언으로 노조 활동을 시작한 삼성전자에 이번 쟁의 행위는 유례 없는 갈등으로 손꼽히고 있다. 실제 파업에 돌입하게 되면 창립 55년 만의 첫 파업 사례가 된다.
앞서 지난 18일 삼성전자 노조는 조합원을 대상으로 쟁의행위 찬반 투표를 진행해 97.5%의 찬성표를 끌어냈다. 투표에는 총 5개 노조(△1노조 사무직노동조합 △2노조 구미네트워크노동조합 △3노조 동행노동조합 △4노조 전삼노 △5노조 DX노동조합)가 참여했다.
이번 쟁의의 배경으로는 올해 글로벌 반도체 업황 부진에 따른 반도체(DS) 사업부의 성과급 미지급과 임금 인상률 이견이 주요 원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연간 1차례 연초 목표 달성 여부에 따라 초과이익금의 5분의1 한도 내에서 개인 연봉의 최대 50%를 사업부별 초과이익성과급(OPI)으로 지급해 왔다.
주력 부서인 반도체 사업부는 지난해 초만 하더라도 연봉의 50%를 성과급으로 받았으나 업황 부진으로 올해 성과급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상·하반기 각각 지급하는 목표달성장려금(TAI)도 상반기(25%) 대비 절반인 월 기본급의 12.5% 수준으로 감소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경쟁사인 SK하이닉스가 임직원들에게 성과급(PI)과 200만원 상당의 격려금에 자사주 15주까지 지급하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등 불만이 이어진 것이다.
노조는 지난 1월 말부터 노조는 경계현 삼성전자 대표를 만나 월 기본급의 최대 200%에 해당하는 격려금 지급을 건의했으나, 사측은 지급 계획이 없다며 이를 거절했다. 2월 말 달래기에 나선 사측은 2.5%의 임금 기본 인상률(성과 인상률 별도)을 제시했지만, 노조는 사측에 8.1%를 요구했다. 이는 사용자와 근로자 위원이 함께 참석하는 노사협의회가 요구하는 5.74%에 비해서도 높은 편이다.
3월 초 노사는 중앙노동위원회 주재의 임금협상 조정회의서 합의 중재에 도달하지 못해 '조정 중지' 결정을 받았다. 이에 따라 전삼노는 조합원 투표를 거쳐 합법적으로 파업을 할 수 있는 쟁의권을 확보했다. 3월 18일 노사 간 협의에서 사측은 기본 인상률 3%와 성과 인상률 2.1%를 더한 5.1% 임금 인상률 안을 제안했지만, 노조가 8.1% 안을 고수하며 불복하자 협상은 결렬됐다.
전삼노가 노사협의회 임금협상에 관해 불만을 제기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22년에도 "회사가 노사협의회를 통해 일방적인 불법 임금협상을 하고 있다"며 고용노동부에 고발하는 등 지속해서 노사협의회 결정에 불만을 드러냈다.
한편 각국의 노동계는 애플과 삼성전자의 노사 갈등 향방을 상이한 시각으로 평가했다.
윌마 리브먼(Wilma B Liebman) 미국 전 NLRB 위원장은 애플의 첫 노조 결성을 두고 "집단행동은 인간의 본능으로 노동조합은 어떤 형태로든 분명히 증가할 것이다"라며 "바이든 정부의 친노동 성향을 근거로 애플의 노조 확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이와 달리 국내 노동계는 노조 측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회사에 전체 직원 과반으로 구성된 노조가 없을 경우, 노사협의회를 통해 임금 조정에 대한 협의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1일 기준 전삼노의 삼성전자 직원 가입자는 2만3904명으로 전체 직원의 약 20% 수준으로 과반에 못 미쳐 대표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