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삼성전자·TSMC·인텔 등 글로벌 반도체 생산(파운드리) '빅3'에 지급할 보조금 규모를 확정함에 따라 4㎚(나노미터) 미만 초미세공정 시장 주도권을 쥐기 위한 업체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게 됐다. 초미세공정의 주 고객인 미국 빅테크와 삼성전자 간 합종연횡이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16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전날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첨단 반도체 생산시설을 건립하는 삼성전자에 반도체 보조금 64억 달러(약 8조8500억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러한 미국 정부 보조금 계획에 맞춰 삼성전자는 테일러에 170억 달러(약 23조5000억원)를 투자한다는 당초 계획을 3배 가까이 확대해 2030년까지 총 450억 달러(약 62조3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이번 보조금 발표에서 삼성전자 투자에 관한 미국 정부의 기대감을 엿볼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삼성전자는 투자금 대비 약 16%의 현금 보조금을 받는다. 1000억 달러를 투자해 현금 보조금 85억 달러(8.5%)를 받는 인텔과 650억 달러를 투자해 현금 보조금 66억 달러(10.2%)를 받는 TSMC를 넘어서는 수치다.
이는 삼성전자가 1996년부터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며 미국 내 공급망 확대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또 삼성전자가 미국 정부에서 저금리로 각각 110억 달러와 115억 달러 대출을 받는 인텔·TSMC와 달리 대출을 받지 않는 점도 높은 보조금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는 작년 기준 79조6900억원 상당 현금과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5일(현지시간) 삼성전자 테일러 캠퍼스에서 열린 미국 정부 반도체 보조금 행사에 참석한 경계현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장(대표)은 "삼성전자는 1996년 미국 텍사스에 뿌리를 내리고 반도체 생산라인 확대와 함께 지역 산업 생태계 강화에 힘썼다"며 "이번 투자는 반도체라는 제품을 넘어 (미국) 산업 공동체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이렇게 미국 투자를 강화하는 이유는 퀄컴·엔비디아·AMD·구글·테슬라 등 초미세공정 주요 고객인 대형 팹리스(반도체 설계기업)가 모두 미국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이들과 설계·생산 과정 전반에서 긴밀히 협력함으로써 최종 반도체 완성품 품질을 한층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기대하고 있다.
일례로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리사 수 AMD CEO 등은 보조금 행사에 축사를 보내며 삼성전자의 미국 내 첨단 파운드리에 관한 큰 기대감을 드러냈다. 세 회사는 삼성 파운드리에서 자사 주력 반도체를 양산한 적 있는 핵심 파트너다. 구글과 테슬라도 모바일 칩과 자율주행 칩을 삼성 파운드리에서 만들고 있다.
경 대표는 "테일러 공장이 완공되면 최첨단 제조 시설을 통해 미국 파트너·고객과 더 긴밀하게 연결될 것"이라며 "설계부터 완성까지 미국에서 만든 최첨단 제품을 고객에게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테일러 첫 공장은 2026년부터 4㎚(나노미터)와 2㎚의 초미세공정 반도체를 생산한다. 두 번째 공장은 2027년 완공되며 첫 공장에 준하는 초미세공정을 도입할 계획이다. 연구개발 시설도 2027년 개원한다.
이를 토대로 삼성전자는 TSMC·인텔과 미국 내 고객을 두고 본격 경쟁할 것으로 전망된다.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첨단 파운드리 시설을 3개 짓고 있다. 두 번째 공장에는 기존에 계획했던 3㎚뿐 아니라 2㎚ 초미세공정도 도입한다. 다만 미국 내 투자에 관한 대만 여론이 악화하고 있는 점은 TSMC 계획에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인텔은 오하이오주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만든다. 여기에 2㎚와 1.8㎚ 초미세공정을 도입함으로써 2030년까지 삼성전자를 제치고 파운드리 업계 2위에 올라서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바 있다. 팻 겔싱어 인텔 CEO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에게 개인 팹 투어를 제안하는 등 미국 내 고객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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