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주가가 폭락을 거듭해 역사적 고점의 40% 수준까지 떨어졌다. 석달째 외국인과 기관들의 매도세가 집중된 결과다. 중장기 성장 여력을 보여 주지 못한다면 네이버의 주가가 추가 하락할 공산이 큰데 이미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1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네이버 주가는 종가 기준 연이틀 18만원 언저리에 있다. 외국인과 기관은 올해 2월부터 매도세를 본격화해 1조7550억원어치 물량을 쏟아냈다. 이 기간 외국인 순매도 금액만 1조84억원이다.
실적 부진 때문이 아니다. 최근 네이버의 경영 실적 추이와 전망은 양호하다. 2023년 매출은 전년 대비 17.6% 증가한 9조6706억원, 영업이익은 14.1% 늘어난 1조4888억원을 기록했다.
최대 사업인 '서치플랫폼' 부문 매출이 3조5891억원이었고 커머스(2조5466억), 콘텐츠(1조7330억), 핀테크(1조3548억), 클라우드(4472억) 순으로 많은 매출을 냈다. 투자정보서비스 에프앤가이드의 컨센서스에 따르면 네이버의 올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도 전년 동기 대비 9%, 18% 증가할 전망이다.
양호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연일 바닥을 확인하고 있다. 장래가 불투명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특히 글로벌 플랫폼 업체들이 벌이고 있는 인공지능(AI) 대전에서 네이버가 뒤처져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력 사업 역시 경쟁이 심화하고 있어 미래 성장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네이버는 검색광고와 디스플레이광고 사업을 통해 확고한 매출을 일으키고 있는 서치플랫폼 부문을 캐시카우로 삼으면서 국내서는 커머스와 핀테크, 글로벌 시장에서는 콘텐츠와 클라우드 부문을 성장 축으로 삼아 왔다.
검색광고의 경우 국내 시장 2위까지 치고 올라온 구글의 추격을 받고 있다. 인터넷트렌드 검색 점유율 통계에 따르면 네이버가 57%로 선두고 구글은 35%로 2위지만 연초 대비 둘의 격차가 줄었다.
커머스 부문은 작년 1월 계열로 편입된 북미 커머스 업체 '포시마크'의 순손실을 메우는 동시에 국내에서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중국 커머스 플랫폼과도 경쟁해야 하는 부분이 부담이다. 역시 북미에서 인수한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를 포함하는 콘텐츠 부문도 네이버웹툰 미국법인(웹툰엔터테인먼트)의 현지 상장을 추진하기 위해 연간 흑자 전환이란 과제를 안고 있다.
네이버가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의 차별화를 기치로 내건 클라우드 부문도 기업용 클라우드와 이를 활용하는 AI 확산세에 아직 속도가 붙지 않았다. AI 개발에 필수인 고성능 AI 반도체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오다 인텔과 AI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는 연구 협력을 최근에야 시작했다. 협력을 통한 AI 개발 성과를 실제 매출과 이익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기업용 클라우드 시장을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다국적 기업이 선점한 가운데 네이버 같은 한국 업체에 시장을 열어 줬던 정부의 클라우드·AI 기술 투자도 올해 들어 원활하지 않다. 글로벌 시장에서 구글과 MS는 자체 기업용 AI 제품의 전방위 사업에 나섰다. MS 투자를 받은 챗GPT 개발사 오픈AI는 최근 일본에 첫 아시아 거점을 세워 일본시장 전용 AI 모델을 선보였다.
앞서 네이버도 아시아 진출 거점으로 일본 소프트뱅크와 합작 설립한 A홀딩스를 통해 공동 지배하는 일본 기업 '라인야후'와 협력해 왔다. 이들은 일본과 동남아 시장에서 메신저, 웹툰, 간편결제, 기업용 협업 솔루션, AI·클라우드 사업까지 폭넓은 시너지를 낼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지난달 일본 정부가 라인 메신저를 통한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을 문제 삼아 제동이 걸렸다. 라인야후는 주요 주주인 네이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소프트뱅크의 영향력을 높이는 형태로 자본 관계를 바꾸라는 '행정 지도'를 받았다.
취임 2년을 넘긴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지난달 정기주주총회에서 주주들로부터 '유튜브에 밀리는 동영상 플랫폼' '글로벌 대비 AI 기술 경쟁력' 등 약점을 꼬집는 질문과 "부진한 주가 때문에 고통스럽다, 네이버는 혁신이 없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최 대표는 이에 답하며 '클립(쇼트폼)'과 '치지직' 서비스 집중, 커머스와 AI의 결합 및 기술 수출, 중국 플랫폼과 네이버 쇼핑 모델의 협력 가능성, 자사주 소각 계획 등 앞으로의 '선택과 집중' 방향을 제시했다.
증권사들은 앞다퉈 네이버 목표 주가를 내리고 있다. 다올투자증권과 상상인증권은 지난 8일 각각 네이버 목표 주가를 30만원에서 26만원으로 낮췄다. KB증권도 29만5000원에서 27만원으로 낮췄다. 9일 NH투자증권은 31만원에서 28만5000원으로, 15일 교보증권은 30만원에서 28만원으로 내렸다.
하이투자증권은 "네이버가 보유한 A홀딩스 지분을 매각할 가능성이 높다"며 "일본 스마트스토어 사업 철수로 대표되는 일본 진출 가능성 축소는 밸류에이션 할인 요소"라고 지적했다.
교보증권은 "클라우드 사업의 재무적 성과 가시화 속도와 웹툰 거래액 성장 둔화 추이를 반영해 두 부문에 적용되는 글로벌 경쟁사 대비 멀티플 할인율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다올투자증권은 "중국 커머스 플랫폼 규모가 작아 단기 실적 영향은 제한적이나, 장기 성장 전략이 더욱 구체화되지 않는다면 상승 탄력은 약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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