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총선 이후 '여야 협치'를 위해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둘러 영수회담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2022년 민주당 대표에 선출된 이후 8차례에 걸쳐 윤 대통령에게 회담을 요청했지만, 대통령실은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며 여전히 소극적인 입장이다.
18일 정치권에 따르면 영수(領袖)는 집단의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영수회담은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회담을 뜻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5년 박순천 민중당 대표와 만나 한·일 협정 비준안과 베트남전쟁 파병 동의안 등을 논의하면서 시작됐다.
가장 많은 영수회담을 진행한 이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으로, 재임 중 무려 8차례를 진행했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이틀 뒤 조순 한나라당 총재와 만나 김종필 총리 후보자 인준 문제를 논의했고, 이회창 총재와는 무려 7차례 회동해 의약분업 등 각종 현안을 논의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정분리'를 선언한 이후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하지 않으면서 영수회담은 점차 감소했다. 그럼에도 노 전 대통령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2005년 만나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대연정'을 제안했다. 당시 박 대표는 '참 나쁜 대통령'이라며 거부했고, 노 전 대통령은 거센 당내 반발에 직면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 등과 3차례 만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미국산 소고기 수입재개 문제,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 등 초당적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는 영수회담은 열리지 않았지만 2015년 박 전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3자 회동이 성사됐다. 약 2시간 가까이 이어진 회동은 별 성과 없이 끝났지만, 꽉 막힌 정국에서 여야가 자신들의 입장을 허심탄회하게 나눴다는 의의를 지닌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정은 전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2018년 4월 단 1차례 영수회담을 했다. 다만 이는 홍 대표가 2017년 7월 취임 기자회견에서 "내가 당 대표를 하는 한 영수회담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한 영향이 크다. 문 전 대통령은 취임 당일 야당 당사를 찾아 협조를 구하는 등 여야 소통을 강조했었다.
정치권에서는 '4월 총선 여당 참패'로 남은 임기 3년을 여소야대 정국에서 보내야 하는 윤 대통령에게 이 대표와 영수회담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없더라도 '야당과 소통에 나섰다'는 것 자체로 일종의 분위기 쇄신과 국면 전환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차기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최근 언론 보도에서는 대통령실이 국무총리 후보로 김부겸 전 총리와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비서실장 후보로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등 야당 인사들을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곤혹스러워하는 기류다. 박 전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금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너무도 중요한 시기여서 협치가 긴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서로 마주 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두 도시 이야기'처럼 보여지고 있다"고 적었다. 김 전 총리는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양 전 원장은 "뭘 더 할 생각이 없다. 무리한 보도"라고 부인했다.
이에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18일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윤 대통령에게) 협치할 마음이 티끌이라도 있다면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며 "간보기 작전을 펼쳐서 되는 게 아니라 이 대표를 비롯해 야당 대표들과 마주 앉아 협치 선언을 하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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