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중심의 한국 경제가 성장률 둔화를 겪는 가운데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22일(한국시간) 보도했다.
FT는 한국의 경제 체질이 한계에 봉착했다고 분석했다. 제조업 중심 경제의 동력이었던 값싼 전기와 노동력이 더는 확보되지 않는다고 매체는 짚었다. FT는 산업용 전기료를 싸게 제공한 공기업 한국전력공사가 매년 1500억 달러(약 207조원)의 부채를 쌓고 있는 점과 37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노동생산성이 최하위 그룹에 있는 점을 지적했다.
한국의 약점으로 꼽힌 건 미진한 '기반산업'이다. FT는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경제학과 교수를 인용해 한국이 반도체나 리튬이온배터리 등 기술의 상용화에 강점이 있다고 전달했다. 반면 이런 상용 기술의 밑바탕이 되는 기술 개발에는 취약해 중국과 일본의 추격 위협에 놓여 있다고 덧붙였다. 박상인 교수는 FT 인터뷰에서 "모방을 통해 선진국을 따라잡는 한국의 경제 구조는 1970년대 이후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선 최근의 인공지능(AI) 열풍에 따른 반도체 경기 활성화가 한국경제 전체를 구원할 것이란 기대감도 있다. 하지만 FT는 "급락하는 출산율부터 낙후된 에너지 부문, 실적이 저조한 자본시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 해결에 있어 한국은 부진한 실적을 나타내고 있다"고 꼬집었다.
FT는 한국경제 체질 변화가 어려운 요인으로 '대기업 중심' 산업구조를 언급했다. 전후부터 1980년대까지의 한국의 고속 성장은 이들 대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면서 톡톡히 효과를 봤다고 평가된다. FT는 이들 대기업 성장 이면에 중소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의 관행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전체 노동자 80%가 고용된 중소기업은 인력이나 생산설비에 투자할 자금이 부족해 낮은 생산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매체는 덧붙였다.
이 매체는 '반도체 호황'을 이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해서도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두 업체는 모두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기대하고 미국 내 대규모 생산시설 건설에 나섰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이런 생산기지 이전은 한국의 생산 노하우가 미국으로 이전되는 효과가 있다고 매체는 내다봤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생산 단지가 대규모로 지어지는 흐름 속에서 반도체 공급이 과잉됐을 때 수익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안으로는 주력 산업 교체가 제시됐다. 제조업 대신 설계와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FT는 전했다. FT는 AI 칩 설계 스타트업 리벨리온의 박성현 대표의 발언을 인용해 AI 열풍인 산업 체질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기존에 잘하고 있는 하드웨어 제조 분야를 잘 살리면서도 점차 수익성이 높은 '설계'와 '서비스' 분야에도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고 매체는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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