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의 대통령 당선자 프라보워 수비안토의 공약집에는 17개 중장기 과제와 8개 단기 과제가 제시되어 있다. 식량·물·에너지 자급자족, 부정부패 방지, 빈곤 퇴치 등이 포함된 중장기 과제 중 하나는 경제적 평등과 중소기업 강화 및 신수도의 지속적 개발이다. 현 조코위 대통령의 정책 계승을 공언한 프라보워가 조코위의 핵심 정책인 신수도 이전을 독립 과제로 설정하지 않고 다른 프로그램에 덧붙여 제시함으로써 그것이 새 정부의 우선 정책이 아님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당선 확정 후의 상황 역시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신도시 이전 사업의 지속 여부가 여론의 큰 주목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가장 큰 관심과 논란을 불러일으킨 문제는 무료 급식 프로그램이었다.
무료 급식은 프라보워의 단기 과제 중 첫 번째 공약이었다.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무료 점심 제공을 목표로 하는 이 프로그램은 선거 캠페인 기간뿐만 아니라 선거 후에도 사회적 담론의 중심에 있었다. 당선 후 프라보워는 이 정책의 추진 의사를 재확인했을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방문 중 현지의 무료 급식 상황을 살펴보고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인도네시아에서 무료 급식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정책이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수업이 오전 7시 무렵 시작해서 보통 12시나 1시에 끝나기에 점심시간이 따로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에 간단히 간식을 먹는 정도가 학생들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따라서,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점심시간을 신설하고 무료 급식을 도입한다는 공약은 혁신적 구상이라 평가받을 수 있었다.
무료 급식 공약이 여론의 주목을 받자, 선거 캠프에서는 이를 뒷받침할 다양한 논리를 제시했다. 건강 상태 개선에 따라 기대할 수 있는 학력 상승, 사회적 불평등 축소와 기회균등 확대, 점심을 함께함으로써 생길 친밀감 증가 등이 부각되었다. 경제 성장에 미칠 잠재적 효과 역시 언급되어서, 영양 상태 개선으로 양질의 노동력 배출이 가능해지고, 급식 제공에 참여할 농어민, 축산업자, 상인, 중소기업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배고픈 학생을 없애자는 주장 자체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뚜렷하게 제기되지 않았다. 반면, 프로그램의 구체적 실행 방안, 특히 비용과 관련하여 부정적 의견이 쏟아졌다. 프라보워의 계획에 따르면 한 끼 급식 비용은 1만5000루피아(Rupiah)였다. 1만 루피아가 한화로 환산하면 대략 850원이기에, 그 비용은 1300원 정도인 셈이었다. 무료 급식 대상 학생이 7800만명으로 추산되었기에 전체 예산은 440조 루피아(약 37조원)에 달하리라 예상되었다. 이는 2024년 정부 예산 3300조 루피아의 13%에 해당하는 천문학적인 규모로서, 무료 급식에 대한 투자가 타당한지를 둘러싼 논란을 촉발했다.
프라보워 측에서는 무료 급식의 전면 시행이 2029년에야 가능할 것이며, 시행 첫해에 필요한 예산은 100~120조 루피아(약 8조~10조원) 정도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구매 대신 직접 조리 방식을 취하고, 기존 예산을 재조정함으로써 예산 규모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추산치에 따르면, 첫해에 필요한 경비는 정부 예산의 2% 이내인 50조 루피아(약 4조원) 정도로서 현재 예산 범위 내에서 실행 가능한 수준이었다.
예산 문제 외에도 운영 과정에서 발생할 여러 문제점이 언급되었다. 특히 새로운 부정부패 고리의 발생 가능성, 교육 예산 전용으로 인한 교육의 질 저하, 기존 농산물 시장의 교란과 인플레이션 촉발 등이 거론되었다.
그 개념조차 생소하고, 막대한 예산이 투여되며, 운영 경험이 전무함에도 프라보워가 무료 급식을 추진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근 10년 동안 인도네시아에서 전개된 혁신적 변화 과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시기에 부상한 복지 국가 개념과 그 확대 적용, 그리고 그것의 정치적 효용성이라는 틀 속에서 무료 급식의 정치적 의미를 파악해 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복지 개념은 1997년 아시아 경제 위기 이후 조금씩 유입되었다. 이전까지 정부 지원은 대체로 시혜적 성격을 띠어서, 정치적 필요에 따라 대통령이 선택적으로 일회성 지원을 제공하는 형식이 일반적이었다. 복지라는 표현의 사용조차 부적절한 시절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경제 위기 이후 실업자와 빈곤층이 급증하자 정부는 이들을 지원하는 조치를 시작했다. 그러나 복지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정부 지원은 일시적이고 비체계적이었으며, 경제 상황이 호전되자 지원 역시 축소되었다.
2004년 유도요노 대통령의 취임 이후 인도네시아 복지 정책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유가 보조금 축소 계획을 세운 유도요노 정부는 이로 인해 발생할 대중적 저항을 완화하고자 유가 보조금 일부를 저소득층에 대한 직접 지원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 결과 인도네시아 역사상 처음으로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생계 지원금이 대규모로 제공될 수 있었다. 하지만 운영상의 미숙함과 유가 변동에 따른 예산상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보조금은 체계적이고 정기적인 지원책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유도요노 정권에서 전개된 또 다른 변화는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의 도입이었다. 관련 법안은 2004년에 마련되었지만, 정부의 추진 의지 부족으로 의료보험 시행은 계속 미루어졌다. 이에 시민사회 단체의 압력이 커지자, 정부는 5년의 유예 기간을 거친 후 2014년 실행을 결정했다. 저소득층의 경우 정부가 보험료를 전액 부담하고, 취업자의 경우 고용주와 피고용자가 보험료를 분담하는 형식으로 보험이 설계되었다.
2000년대 이후 간헐적으로 시행되었던 복지 정책은 2014년 조코위 정부가 들어서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먼저, 유도요노 정부에서 유예된 의료보험이 본격 시행됨에 따라,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의료비 보조가 이루어졌고, 의료 보장을 받는 대상 역시 점진적으로 확대되었다.
의료 보장에 추가하여 조코위 정부는 교육비 지원, 쌀을 포함한 현물 지원, 현금 지원 등 세 가지 정책을 시행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일회적이고 시혜적 성격을 띠었던 정부 지원이 복지라는 틀 속에서 통합적으로 이루어질 기반이 마련되었다. 효율적 복지 체계 구축을 위해 정부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저소득층 선별 작업을 진행했고, 이를 기초로 하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또한 복지 카드를 도입함으로써 복지 혜택의 접근성을 높였다.
조코위 정부의 복지 드라이브는 예산 배정에 있어 획기적인 변화를 수반했다. 2014년 전체 예산의 1%에 불과하던 의료 관련 예산은 2016년 5.1%로 급증했으며, 이후에도 4~5%의 비중을 유지하고 있다. 복지 관련 예산 역시 2014년 0.6%에서 2016년 11.9%로 대폭 증가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 한때 14%까지 상승했던 사회보장 예산은 2023년 전체 예산의 10.8%를 차지했다.
복지 정책의 확장은 혜택을 받는 대상의 확대로 이어졌다. 2023년 자료를 보면, 10㎏의 쌀을 지원받는 가구는 2200만 가구, 인구 규모로는 8900만명에 달했고, 생필품 지원 수혜 가구는 1800만 가구에 이르렀다. 현금 지원을 받는 대상 역시 대략 2000만 가구로 추산되었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현금과 생필품 수혜 가구 중 임신부, 유아, 장애인, 노인, 학생이 있는 천만 가구를 선별하여 추가 현금을 지원했고, 저소득층 학생 1700만명을 대상으로 연간 백만 루피아까지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코로나 팬데믹 국면을 거치며 실업자, 노인, 중소 상공인을 대상으로 시행된 보조금이 이후에도 지속되었기에 현재 15종 내외의 복지 관련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급격한 예산 증가를 필요로 한다는 면에서 복지 확대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며, 이는 복지 국가 건설에 대한 조코위의 단호한 태도를 반영했다. 이러한 조코위의 행보는 정부 지원의 직접 수혜자뿐 아니라 일반 국민에게도 뚜렷하게 각인되었고, 과거 어떤 대통령보다 국민의 복지 향상에 진정성을 가진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그에게 부여했다.
대통령 임기 말임에도 조코위의 정치적 영향력은 강력하게 지속되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일부를 제외하고 그에 대한 지지율은 70~80%로 유지되었다. 이러한 높은 수준의 지지율 저변에는 복지 정책 실현이라는 그의 업적이 놓여 있다. 9000만명에 달하는 국민이 난생 처음 정기적이고 체계적인 복지 지원을 받게 되면서, 이들은 조코위의 강력한 지지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조코위의 성공은 프라보워의 무료 급식 정책 입안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게다가 조코위의 정책과 달리 무료 급식은 보편 복지의 성격을 가진다. 조코위 정부에서 복지를 체감하지 못한 중산층까지 거의 모든 국민이 정부 지원의 혜택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적 선택을 통해 프라보워 역시 조코위가 누려온 높은 대중적 지지와 2029년 재선을 기대할 수 있다.
복지 국가를 향한 인도네시아의 질주는 앞으로 지속될 것처럼 보인다. 물론 걸림돌도 있다. 조코위 정부에서의 복지 예산 확대, 다른 식으로 말하면, 다른 부문에서의 예산 축소가 초래한 긴장과 불만은 5% 이상의 경제 성장이 계속되고 예산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상당 부분 완화될 수 있었다. 이는 앞으로의 복지 정책 역시 경제 성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지난 10년 동안 지속된 경제 성장 추세가 앞으로도 이어질 때, 프라보워가 꿈꾸는 재선의 길은 복지 국가 건설의 꿈과 함께할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인류학과 (학사·석사 수료) ▷호주국립대학 (박사)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전 강원대 사회과학원 원장 ▷전 한국동남아학회 회장 ▷ 인도네시아 팟자드자란 대학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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