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적 멸종'.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는 한국 저출생 문제를 두고 이렇게 표현했다. 뉴욕타임스는 한국 인구가 14세기 흑사병 창궐 때보다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너도나도 '한국처럼 되지는 말자'고 한다. 그런데 정작 우리만 환상에 갇혀 있다.
24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월에 태어난 출생아 수는 1만9362명이다. 2월 기준 역대 최저치를 또 경신했다. 전혀 새롭지 않다. 여기에 한국은 내년 초고령 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다. 20년 뒤엔 생산인구가 줄고 노인 인구가 급증해 부양비 부담이 2배로 훌쩍 뛴다는 전망도 어딘가 기시감이 든다. 문제 지점은 여기다. 우리는 '멸종'이라는 위기에 이상하리만치 둔감하다.
지난달 한국은행은 돌봄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자는 보고서를 냈다. 저출산·고령화 시대 월평균 370만원이라는 천정부지 간병비에 대한 나름의 대안이었다. 고령자 증가로 돌봄서비스 수요는 증가하는데 노동 공급은 점점 부족해진다. 이는 저출산, 가족 간병으로 이어져 2042년에는 GDP 대비 2.1~3.6%에 달하는 손실을 초래할 전망이다.
안타까운 것은 두 달간 노동계 반발만 있었을 뿐 보고서가 짚은 간병비 부담 완화에 대한 이렇다 할 사회적 차원의 논의가 없었다는 점이다. 어느 직종이든 차별은 없어야 하고 개인의 노력은 존중받아야 한다. 다만 국가 소멸 위기를 앞둔 지금 '돌봄의 사회화를 위한 국가 차원의 비전을 만들자'는 구호는 아직 우리에게 시간이 넉넉히 남았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정부 대신 불편한 진실을 건드리고 질타를 오롯이 감내한 한은이 눈물겹기까지 하다.
환상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은 0.6명대다. 머지않은 미래에 한국인은 멸종위기등급 '절멸' 단계로 치닫게 될 것이다. 미래를 이끌어가야 할 젊은 세대에게는 이런 현실이 속상하기만 하다. 다만 진화론적 관점에서 저출산·고령화와 같은 결핍은 때로 성장을 촉진하기도 한다. 생존 의지가 있다면 이젠 환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성장을 고민해야 한다. 언제까지 차별 조장이라는 죄책감만 건드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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