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년 4·10 총선은 보수우파의 참패로 막을 내렸다. 선거 전에 4·.10 총선의 의미와 성격을 알기 쉽게 설명해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나름대로 다음과 같은 표를 만들었다.
투표에서 내가 선택하는 당과 후보가 어느 입장에 서있나 생각해보고 우파 지향이 옳다 싶으면 여당을, 좌파지향이 옳다 싶으면 야당을 찍으면 된다고 안내하며 이번 투표의 성격을 규정지었다. 이렇게 규정지은 이유는 무엇인가?
종전선언과 한반도 평화법
4년 전 4·15 총선이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이 나고 제 21대 국회가 막 출범했을 때 2020년 6월 15일 제1호 법안으로 ‘한반도 종전선언 결의안’을 발의했다. 173명의 의원이 공동발의에 참여했는데 이것은 역대 최고의 기록이라고 한다. 이 결의안에는 종전선언 실행과 평화협정 체결에 관한 논의를 담고 있고, 문재인과 김정은이 2018년 발표한 판문점선언의 이행과 국제사회가 이 선언을 촉구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2021년 4월에는 국회 평화외교포럼에서 한반도평화를 위한 한·미의원 외교활동을 논의했고 이어 2021년 5월에는 미 연방의회에서 브래드 셔먼 하원의원의 주도로 ‘한반도 평화법(H.R.3446,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Act)’이 발의되었다. 발의된 이 법의 내용에는 한국전쟁의 공식적 종전, 평화협정 추진, 북·미 연락사무소 설치, 북·미 이산가족 상봉 등이 담겨있었다. 이에 민주당의 김경협 의원은 186명의 국회의원과 함께 환영성명을 발표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6개월 이내에 종전선언과 동시에 평화협정을 맺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주장할 다음 단계는 휴전협정을 관리하는 유엔사 사령부의 해체이며 그 다음 단계의 주장은 당연히 미군철수이다.
‘한반도 종전선언 결의안’ 발의를 주도한 의원들은 1985년 삼민투 사건에 연루되어 국가보안법, 집회시위법 위반으로 2년 넘게 투옥된 적이 있다. 이로 인하여 병역면제처분을 받았으며 나중에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되었다. 이들을 ‘주사파’라고 하는데 이는 김일성을 추종한다는 ‘주체사상파’의 줄임말이고 ‘삼민투’란 ‘민족통일, 민주쟁취, 민중해방 투쟁위원회’의 약칭이다. 이 위원회 멤버들이 했던 일이 주한 미대사관 점거 및 폭탄 투척 그리고 미 문화원 방화였다. 뼈 속 깊이 반미 사상에 젖어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반미투쟁의 주동자들 중 많은 이들이 그 후 국회의원이 되었고 현재 이들이 우리나라 정치를 좌지우지하게 된다. 이들의 대표적인 활동이 주한미군 철수 운동이었다. 이들은 주사파의 상징인 한민전(한국민족민주전선)을 결성하고 ‘구국의 소리’라는 북한의 라디오방송을 듣고 그 지침에 따라 학습하고 행동했다.
이들을 정치에 본격적으로 끌어들인 것이 김대중과 노무현 두 좌파 대통령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정치 세계에 등장하면서 그동안 비축해두었던 에너지를 발산하며 사회 곳곳에 스며들었다. 그들은 반미, 친북활동을 하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감옥에 다녀온 사실을 훈장처럼 내세우며 개선장군처럼 국회로 입성했다. 그 후 좌파정당이 드디어 국회의 다수 권력을 장악하게 되자 그들은 이제 공공연히 한·미동맹을 와해시킬 수 있는 주장을 하게 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나온 것이 ‘한반도평화법’이다.
사악한 사탕발림의 유혹
이번 4·10 선거에서는 보기 드문 기괴한 양상이 펼쳐졌다. 1985년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을 했던 삼민투 위원장이 이번에는 우파정당의 후보가 되어 총선에 참여하였다. 그는 서울대 학생시절 학생회장 선거에서 ‘양키는 집으로 돌려보내져야한다’거나 ‘핵기지가 철수돼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폈다. 그 후 좌파 청년단체도 만들고 좌파정당에서 공천을 받으려고 많은 시도를 하고 실제로 공천을 받아 출마도 수없이 했다. 마음대로 되지 않자 무소속으로 공직 진출을 시도했었다. 이도저도 안되자 이번에 4·10 선거에서 우파정당의 후보로 공천을 받고 서울 한복판에서 출마하였다. 그 와중에 선거 판세가 불리하자 자기를 공천한 정당 소속의 현직 대통령에게 탈당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 사람이 한·미동맹에 대해 그리고 미군철수에 대해 어떻게 입장을 바꾸었는지 듣지 못했다. 북한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해서도 들은 바 없다. 북한과 전쟁이 나면 자유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울지, 평화를 위해 양보하고 항복할지 그의 입장을 들은 기억이 없다. 그가 만약에 당선이 되었다면 과연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촉구하는 한반도평화법에 찬성했을지 반대했을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우파여당은 이번 선거에서 뼈아픈 실책을 저질렀다. 정당의 이념적 지향과 달리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가리지 않고 중도확장을 한다며 여러 사람을 당의 후보로 내세웠다는 것이다. 다시 한반도평화법으로 돌아가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정부의 성격이 급격하게 왼쪽으로 틀어졌다. 북한과 중국에 급속히 친화적인 태도를 보였다. 돌이킬 수 없는 짓들을 저질렀다. 온갖 무리수를 써서 원자력 발전 사업을 체계적으로 파괴했다. 전기는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갖고 있는 반도체산업이나 조선산업의 뿌리였다. 결국에는 중국의 원전에서 나오는 전기를 사오게 될 것이라는 얘기도 들렸다. 이는 또 우리나라의 핵무기 개발능력을 원천적으로 없애려는 시도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북한 귀순자들을 강제로 돌려보냈다. 북한이 돌려보내라하니 조사도 없이 돌려보내 그들을 사지로 모는 범죄를 저질렀다. 김정은과의 회담에서 전 세계가 지켜보는 앞에서 USB를 전달했다. 신경제구상과 경제 협력, 에너지 협력이라는 표현 말고는 어떤 자료가 담겼는지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원전 기술이 담겨있다는 얘기도 있지만 국민들에게 밝히지 않았다. 이러는 와중에 문 정부가 시작한 것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이다. 남북간 적대적 긴장과 전쟁위협을 없애고 한반도에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하는 것이라 했다.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판문점에서 공동으로 연내 6·25 전쟁의 종전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확인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9일에는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후 ‘9월 평양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로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 서해 평화수역 조성 등을 내용으로 하는 ‘9·19 군사분야 합의서’를 발표했다. 대북 정찰 및 감시활동을 못하게 하는 일련의 남북합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나온 것이 한반도평화법이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맺자는 것인데 여기에 북한의 비핵화나 북한의 인권은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평화협정을 맺으면 북한이 협정의 정신을 살려 스스로 비핵화할 것이라는 기대를 담은 법안이었다. 한국 의회와 미국 하원에서 거의 동시에 발의되었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친북 단체들이 대거 참여했다. 미의회에 H.R. 3446 한반도평화법은 이렇게 발의되었다. 발의에 미 의회 48명의 의원들이 참여했다.
AKUS(한미연합회)의 경고와 노력
이런 위기 속에서 H.R. 3446의 핵심문제들을 지적하고 미의회 의원들을 설득해낸 일련의 움직임이 있었다. 혼자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들이 모여 AKUS(America-Korea United Society)라는 단체를 만들고 H.R. 3446에서 말하는 종전과 평화가 무엇을 말하는지 미 의회 의원들을 차례로 설득했다. 종전협정과 평화협정이 유엔사 해체를 가져오고 이는 미군 철수로 이어지고 한·미동맹의 와해를 부르며 한반도의 적화로 종결된다는 것을 경고했다. 법안에 동의를 표했던 48명의 의원들이 20명으로 줄었다. 결국 이 법안은 회기를 넘기게 되어 자동 폐기되었다. 그냥 보고만 있을 좌파들이 아니다. 새로운 회기가 시작되자 다시 H.R. 1369를 발의했다. 이에 대해 AKUS본부는 또다시 의원들의 설득에 나섰다. 친북으로 치닫던 고국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서 미·일관계를 정상화하면서 국내 걱정은 덜고 미의회에만 집중하면 되었다. 그러나 이번 총선 결과는 AKUS 회원들에게 힘빠지는 일이 되고 말았다. 4·10 총선에서 좌파정당의 압승으로 이제 한국의 국회에서 이 법안이 다시 나오는 것을 걱정하게 되었다. 결국 이 법안은 중국을 이롭게 하고 러시아를 자극하고 북·중·러가 연합하게 할 위험이 크고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를 해치는 그런 법안이다. 한국에서 친북·종중 좌파정당의 총선승리는 다시 미국의 좌파 의원들을 자극하여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고 준동할 것이 예상된다.
지난번 선거에서 국민들의 선량이 되겠다고 나선 후보들이 우파지향인지 좌파지향인지, 한·미동맹을 주장하는지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지, 자유민주국가를 목표로 하는지 사회주의 국가를 목표로 하는지 가려야 하고, 이것이 이번 선거의 핵심쟁점이라는 지적이 무색하게 되었다. 하지만 70년 전 대한민국을 지켜내고 미국과 함께 개인, 자유, 시장, 민주주의 등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바탕으로 맺은 한·미간의 동맹이 지금도 너무나 중요하며, 한·미간뿐 아니라 동아시아와 자유세계의 안보와 평화와 전략적 이익을 지켜낸다는 사실에 우리 모두 눈을 떠야 한다. 평화를 내세우며 한반도를 친북·종중 전체주의자들의 손아귀에 떨어지게 하려는 그들의 주장은 악마들의 속삭임이다. 이제 우리는 그런 유혹이 만연한 시대에 살게 되었다. 우리와 우리 자손들을 구해내는 것 또한 우리들의 몫이다. 우리나라를 주사파들의 고향 북한처럼, 좌파 포퓰리즘의 대명사가 된 베네수엘라나 아르헨티나처럼 혹은 미군 철수를 외치다 중국의 먹잇감이 될 뻔한 필리핀처럼 그렇게 둘 수는 없지 않나. 한반도 평화라는 악마의 속삭임에 속아 넘어갈 수는 없지 않나? 우리가 언제까지 AKUS 회원들의 애국심에만 의존해야 하나? 오늘부터 나도 AKUS다!
황승연 필자 주요 이력
▷독일 자르브뤼켄 대학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 ㈜데이콤 공동 정보사회연구소장 ▷전 한반도 정보화추진본부 지역정보화기획단장 ▷경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굿소사이어티 조사연구소 대표 ▷상속세제 개혁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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