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당 108 대 야당 192! 대통령과 집권당에 대한 국민의 심판은 예상보다 가혹했다. 개헌만 함부로 넘보지 못하는 선에서 정치권 전체를 향하여 ‘이제 알아서 잘해라!’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누구든 대통령이 다음날 국정 운영의 전향적인 기조 변화를 담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대국민 사과문은 없었고 오히려 국무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서 ‘열심히 했지만 국민이 진심을 알아주지 않았다’고 억울한 심경을 피력했다. 그러자 집권당은 당선자 중심으로 미래지향적 혁신 대신에 정권 옹위를 참칭한 자기방어에 돌입했다. 대통령의 실정을 가리고 ‘친윤’당으로 선거를 치러 당을 민심에서 분리한 사람들이 비서실장이 되었고, 이른바 ‘찐윤’ 의원이 원내대표로 선출될 개연성이 매우 높아졌다.
물론 집권당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없지는 않다. “여권이 방향을 제대로 못 잡으면 예정된 코스는 탄핵이다.”(김해을 낙선자 조해진) “보수 정치인이 오히려 걱정을 더 끼치고 민폐를 끼치는 집단이 되고 있다.”(창원마산합포 당선자 최형두) 그러나 고통스러운 성찰과 변화를 외면하고 당보다 개인이 우선하는 분위기가 압도하면서 국정 실패의 위기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어느 평론가는 위기의식이 느껴지지 않는 현 집권당의 태도를 두고 국민의힘에 사망선고를 내렸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국민의힘은 죽지 않는다. 다만 민심의 엄중한 경고의 의미를 여전히 파악하지 못한 채 위대한 정신승리에 빠진 ‘아큐(阿Q)의힘’으로 남아 대한민국의 리스크로 작동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번 총선에서 집권당의 참패는 한국 사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위대한 국민의 선택으로 정의되어야 마땅하다. 다시 말해서 거대한 퇴행을 저지하라는 국민의 경고였다. ①‘독재화 국가’ 저지. 입만 열면 자유를 강조하는 대통령이지만 정작 공권력은 비판자의 ‘입을 틀어막고’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는 무도함을 보였다. ②경제적 양극화 저지. 대파 총선으로 불릴 만큼 물가 상승은 총선 결과를 좌우했다. 부자 감세와 건전 재정을 고수하며 서민의 고통을 외면하는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향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했다. ③차별적인 사회의 저지. 학벌에 의한 차별,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남녀의 차별적 임금, 장애인 차별 등 우리 사회는 경제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안전과 인간답게 살 권리에 대한 인식이 약함을 준엄하게 경고했다. ④국격 추락의 저지. 자유민주주의와 한·미 동맹은 대한민국의 태생적 한계이자 디폴트값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미국 중심의 일방적인 가치 외교는 외교적 고립을 자초했고 국격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중이다. 대한민국이 차기 G7 회담의 초청국에서 배제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제 대한민국은 리부팅하고 전열을 정비하여 다시 뛰어야 한다. 한국 사회가 처한 현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정밀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면 우리는 과거 남미 국가들처럼 후진국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가장 먼저 총인구 감소와 인구 편중에 따른 경제적·사회적 부담을 냉정하고 치밀하게 분석하고, 그에 상응해 방향 전환을 모색하고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인구 감소는 곧 국가 총역량의 감소를 의미한다. 학령인구의 감소, 입대 자원의 감소, 노동력의 감소, 소비자의 감소 등 국가와 사회 전반의 침체를 의미한다.
또한 기후 환경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절실하다. 극단적인 기후 변화는 지구상 곳곳에 상상할 수 없는 홍수와 산불을 야기하고 인간과 동물의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탄소중립을 향한 국제사회의 합의에 보조를 맞추고 그에 호응하는 산업적 체질 전환을 모색하고, 국민의 동의와 호응을 이끌어내는 정책적 수단과 대책을 총동원하는 전향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우리는 진정으로 대전환의 시점에 서 있음을 명징하게 인식해야 한다. 인구구조의 대변화는 출발점이다. 50년 전 이 땅에는 100만명씩 새 생명이 태어났다. 경제는 성장했고, 사회는 발전했고, 모두가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았다. 이제 그 수는 20만명대로 줄었다. 장기적으로 확대 지향의 사회에서 ‘축소 지향의 사회’로 갈 수밖에 없다는 확고한 지표다. 예를 들어 100만명 시대의 교육은 무한 경쟁체제와 능력지상주의를 지향할 수 있었지만 20만명 시대의 교육은 한 명 한 명의 재능과 특기를 살리는 보편적 공공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주택, 의료, 복지, 국방 등 모든 분야가 그 속성에 맞게 전환의 시스템을 서둘러 갖춰야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추격형 후진국에서 선도형 선진국으로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제조업 중심 산업경제는 탈근대적 정보산업 중심 지식경제로 전환 중이다. 노동집약적인 경제 체질을 지식 기반의 창의적인 경제 모델로 근본적으로 재구조화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의 한국 경제에 대한 지적은 참으로 우려스럽다. 매체는 한국 정부의 용인 반도체 단지 투자를 한국형 모델 개혁 의지가 없거나 무능력함을 드러내는 제조업-대기업이라는 전통 성장 동력에 기대고 있다고 폄훼했다.(프레시안, 4. 22)
더불어 서울과 수도권 일극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발전하는 모델에서 벗어나 비수도권 지역에 다극점을 형성하고 분산형으로 발전하는 모델로 전환하지 않으면 한국 사회는 궁극적으로 코리아A와 코리아B로 분열하는 양상으로 치달을 수 있다. 그것은 과밀 수도권과 텅 빈 지방의 극명한 대비 속에 상대적 박탈감을 극대화하고 서로를 공격하는 파괴적이고 적대적인 대립을 야기할 수 있다.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부산이 진정 ‘노인과 바다’의 도시로 전락하고, 안동이 노인만 사는 ‘정신문화의 수도’로 소멸하는 과정을 지켜볼지 모른다.
어찌할 것인가? 건강한 정당정치의 정립과 새로운 리더십의 창출이 답이다. 결국 국가적·사회적 문제의 해결 방안은 정치에 있다. 공동체의 미래와 구성원의 삶은 사회적 재화의 효과적인 생산과 정의로운 분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근대적 민주정치는 좌우 세력의 균형으로 유지된다. 좌파가 잡든 우파가 잡든 상호 견제를 통한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일방적이고 과격한 폭주는 그만큼의 반동을 낳는다. 역사의 교훈이다.
이번 총선의 패배로 한국의 보수세력은 퇴출 위기에 놓였다. 필자가 보기에 그들은 보수를 참칭하는 극우 세력과 별반 다르지 않다. 반공주의와 경제성장을 빼면 사실상 그들의 이념적 토대라고 할 게 없다. 요사이 세계경제의 위기 징후는 한국 보수세력에 불안한 토대이다. 이제 바라건대 그들은 중도 우파적 정치세력으로 거듭날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보수적 가치를 재정립하고, 중도 우파 정당의 견실한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보수의 떴다방 정치가 낳은 산물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통령 직행이었다. 정치 9단도 모자랄 판에 정치 하수의 대통령직 수행이 불안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의 실패는 보수의 실패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의 실패라는 사실이 아프다.
지금은 제1야당의 시간이다. 필자가 보기에 더불어민주당은 진보적 정치세력이기보다는 중도 좌·우파가 뒤섞인 개인사업체들의 집합체에 가까워 보인다. 극우적 보수의 관점에서 그들은 진보로 규정되고, 보수언론은 맹목적으로 비판의 대상으로 삼아 왔다. 그런 오해가 촛불 민심을 왜곡하고 국민에게 실망을 안기는 결과로 드러났다. 그들은 반사적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지만 사실상 제대로 실력을 보여준 적은 없다. 문재인 정부가 적기였지만 실패했다. 이제 명실상부한 중도 세력의 대중적 정당정치를 대변하는 민주당은 중도 좌파적 위치에서 수권 정당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87체제’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토대로 대전환의 기조를 세우고 정밀한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마지막 기회다! 이번에 실패하면 국민은 더 이상 기회를 주지 않고 자포자기할지도 모른다.
이번 총선에서는 정치 지형에 변화를 가져올 새로운 요소가 등장한 점이 가장 큰 이변으로 꼽을 만하다. 중도 우파적 가치를 지향하는 ‘개혁신당’과 중도 좌파적 가치를 지향하는 ‘조국혁신당’을 말한다. 두 당은 각기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과 선명성 경쟁을 하며,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갈등하는 관계를 맺을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사회권’ ‘보편인권’ 등 유럽 사회민주주의적 가치를 내건 조국혁신당의 실제적인 면모가 관심을 끈다. 이는 ‘87체제’를 극복하는 중요한 개념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게 정치적 리더십의 문제로 귀결된다. 집권당의 참패는 불통과 독단에 기초한 윤석열 대통령의 리더십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차기 리더는 민주적 가치를 실현하고 사회를 통합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새롭게 국회에 입성한 젊은 정치인들에게 눈길이 가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22대 국회가 대전환의 기조와 방향을 잡고, 새로운 체제로 나아가는 관문을 열어 주기를 기대한다.
안상준 필자 이력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 취득 △(전) 한국중세사학회 회장 △컬럼비아대 해리먼 연구소 방문교수 △교수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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