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부는 ‘2024년 5월의 6·25전쟁 영웅’으로 고지전 중 숨을 거둔 윤길병 육군 소령을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1931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난 윤 소령은 안동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모교인 경주 건천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자 육군에 자원입대했다. 그는 육군종합학교를 거쳐 1951년 1월 20일 소위로 임관했다. 이후 국군 제6사단 제2연대 소대장으로 배속돼 강원도 화천군 사창리전투와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전투에 참전해 공훈을 세웠다.
1953년 1월 30일 국군 제12사단 제3대대 제10중대장으로 부임한 윤 소령은 정전협정 체결을 눈앞에 둔 1953년 6월 강원도 인제군에 펼쳐진 중동부전선을 지키고 있었다.
사단 방어선은 인제로 향하는 주요 접근로인 서화리 계곡을 내려다보는 곳이었고, 북한군이 방어선 주변 고지대를 차지하고 있어 주저항선이 항상 적에게 노출되는 악조건이었다. 가장 중요한 지점인 812고지를 지켜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었다.
1953년 6월 1일 북한군 제45사단이 812고지에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자 제37연대장 김재명 대령은 고지 정상을 지키던 제3대대에 “어려움도 극복하고 현 주저항선을 확보하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대대원들은 이미 812고지 일대에 배치돼 전투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북한군의 공격은 812고지 우일선에 위치한 제10중대 진지에 집중돼 윤 소령은 중대원들과 치열한 백병전을 벌였다. 무명고지를 둘러싼 제10중대의 승전에도 불구하고 812고지를 사수하던 국군 상황은 점차 불리해졌고 고지 정상을 뺏고 뺏기는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다.
이에 같은 달 5일 북한군은 812고지 우측 무명고지에 2개 중대를 투입했다. 고지를 사수하던 제10중대는 적의 파상공세에 맞서 격전을 벌였지만 북한군이 추가 병력을 투입하면서 중대 방어선이 고지 정상 부근까지 물러서게 됐다. 윤 소령은 정상만큼은 고수하기로 결심하고 지휘소를 중심으로 거점방어를 하도록 부대원들에게 명령했다.
적에게 포위된 윤 소령은 부대원을 이끌고 동굴 진지로 들어가 항복 요구를 거부하고 항전한 끝에 6월 8일 전사했다. 국군은 1953년 6월 8일 무명고지 정상을 탈환했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1951년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하고 대위에서 소령으로 1계급 특진시켰으며 1953년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다.
윤 소령은 현재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2006년 6월에는 모교인 경주 건천초등학교 교내에 ‘육군 소령 윤길병 상’이 건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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