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자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국가를 대상으로 보복하겠다는 중국판 ‘슈퍼 301조’를 제정하면서 한국이 난처하게 됐다. 중국의 '저가 밀어내기' 수출 전략에 대응하려면 무역 장벽을 높여야 하는데 대중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서는 오히려 된서리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미국·유럽연합(EU)과 중국이 관세법을 활용한 전쟁을 본격화하면서 중국과 주요국 간 공급망 디커플링이 심화할 것으로 우려되는데, 여전히 중국산 부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으로서는 강대국 간 싸움으로 인해 공급망과 수출 전선에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무역위원회가 지난달부터 저가 공세를 이어가는 중국산 스티렌모노머(SM)에 대해 반덤핑 조사에 나섰다. SM은 가전에 들어가는 합성고무 등을 제조하는 데 쓰이는 석유화학 원료다.
특히 알리·테무 등 중국의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한국에 본격 진출하면서 산업용 자재는 물론 소비재에서도 중국산 재고가 초저가에 팔리고 있어 ‘제2차 차이나쇼크’ 우려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산업부의 이번 반덤핑 조사가 실제 중국산 제품의 저가 수출을 막는 방파제 역할은 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달 26일 제14기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회를 열고 올해 12월 1일부터 시행되는 관세법을 가결했다.
이 법에는 중국과 무역협정을 체결한 국가가 중국산 제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해 고율 관세를 매길 수 있도록 한 조항이 담겼다.
중국산 철강·알루미늄·배터리·태양광 제품에 대한 반덤핑 조사에 돌입한 바이든 미국 정부와 11월 미국 대선 이후 추가적인 중국산 제품 제재를 견제하는 수단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이 법안이 미국과 EU 등 특정 국가나 단체를 특정하지 않고 모든 국가에 대한 반덤핑 관세 보복을 규정하는 만큼 한국 역시 사정권에 들어선다는 것이다.
즉 한국이 중국산 제품에 대한 반덤핑관세 부과를 결정하면 중국 역시 한국산 제품에 같은 수준으로 관세를 부과할 수 있게 된다.
당장 우리 정부는 중국산 합판에 최대 27.21%까지 반덤핑 관세를 부과 중인데 12월부터는 중국으로 수출되는 한국산 합판 제품에 같은 수준으로 관세가 부과될 수 있다.
대중국 수출 의존도가 약 25%에 달하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은 중국의 보복성 고율 관세로 인해 최대 피해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에 수십조 원을 투자한 배터리·태양광 등 기업들도 타격을 피하긴 힘들다. 중국산 부품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제재가 더욱 까다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일부 중국산 부품에 대해서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보조금 수급 요건 아래 뒀지만 대선 이후에는 중국과 완벽한 단절이 진행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특히 중국이 사실상 글로벌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양극재·폴리실리콘 등 배터리·태양광 소재는 단기간에 중국산을 배제하기 힘들어 양국 간 무역전쟁에 따른 국내 기업들의 고민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중국 새 관세법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우리 정부 외교 정책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산업부는 2017년과 2019년 중국이 한국산 석유화학 원료와 폴리실리콘 등에 대해 반덤핑 조사에 나서자 중국 상무부와 외교를 통해 일부 성과를 올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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