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가 회사 HBM(고대역폭 메모리) D램 매출이 누적 백수십억 달러에 달한다며 내년에도 HBM 리더십을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마이크론 등이 기술 격차를 좁혀오는 상황에서 미국 인디애나주 첨단 패키징 설비를 거점으로 빅테크와 클라우드 기업(CSP) 맞춤형 HBM을 만들어 점유율을 확대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SK하이닉스가 2일 주요 경영진이 참석한 가운데 경기도 이천시 본사에서 'AI시대, SK하이닉스 비전과 전략'을 주제로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미래 D램·낸드 플래시 전략을 공개했다. 이날 행사에는 곽노정 대표를 필두로 김주선 AI인프라 사장, 김종환 D램개발 부사장, 안현 N-S 커미티 부사장, 김영식 제조·기술 부사장, 최우진 P&T 부사장, 류병훈 미래전략 부사장, 김우현 최고재무책임자(부사장) 등 주요 경영진이 자리를 함께 했다.
시장의 가장 큰 관심사는 생성 인공지능(AI)으로 인해 시장 수요가 폭발하고 있는 HBM D램이다. 곽 대표는 "올해 SK하이닉스 HBM 생산분은 모두 팔렸고 내년 생산분도 대부분 솔드아웃(매진)됐다"며 "HBM 리더십을 확고히 하기 위해 5월 중 고객사에 12단 HBM3E(5세대 고대역폭 메모리) D램 샘플을 제공하고 3분기 양산 가능하도록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가 샘플을 제공하는 업체는 내년 1분기 12단 HBM3E를 탑재한 AI칩 출시를 준비 중인 미국 엔비디아로 풀이된다.
SK하이닉스가 그동안 판매한 HBM D램 매출이 삼성전자보다 1.2배에서 1.5배가량 많은 점도 처음 공개됐다. 곽 대표는 관련한 기자들 질문에 "올 하반기 시장 변화가 있어서 정확한 수치는 따로 집계해야 하지만 (2016년에서 2024년까지) HBM 누적 매출액은 100억 달러대 중반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이날 뉴스룸 기고문을 통해 "2016년부터 2024년까지 예상되는 총 HBM 매출은 100억 달러가 넘을 전망"이라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클라우드 업체들의 AI 서버 관련 대규모 투자와 AI 모델 규모 증가로 인해 HBM, 고용량 D램 모듈 등 AI 메모리와 대용량 QLC(4비트셀) 낸드 플래시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측했다. 2023년 전체 메모리 시장에서 AI 메모리 매출 비중은 약 5%에 불과했으나 2028년에는 61%에 달할 전망이다.
곽 대표는 "SK하이닉스의 HBM 생산능력(캐파)은 과거와 다르게 고객사와 협의를 완료한 상황에서 고객 수요에 맞춰 공급량을 증가시키는 것"이라며 "중장기 관점에서 AI 시장 대형 고객사와 잠재 고객사로 공급을 확대하는 분량도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I 시장이 연평균 60% 성장하면서 관련 D램·낸드 플래시 수요도 같이 증가할 것"이라며 "커스터마이징(맞춤 제작)에 관한 고객사 요구가 커지면서 AI 메모리 사업은 점점 수주형 사업으로 성격이 변하고 과잉공급 리스크는 줄어들 전망"이라고 말했다. HBM 공급과잉에 대한 일각의 우려를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김주선 사장도 "HBM은 다이 사이즈가 크고 생산공정도 길기 때문에 (SK하이닉스의) 일반 D램 생산능력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며 "이를 토대로 일반 D램 재고가 급격히 건전화하면서 메모리 공급업자에 우호적인 시장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현재 미국 대형 팹리스를 중심으로 HBM을 공급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 팹리스의 기술력도 미국 기업을 따라잡을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중국 기업과 HBM 관련 협업도 고려하고 있다.
곽 대표는 "SK하이닉스의 AI 메모리 경쟁력은 대부분의 반도체 기업이 불황으로 투자를 줄이는 상황에서 SK그룹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투자 확대를 결정하며 구성원들의 사기를 높인 것에 있다"며 "AI 메모리는 고객 맞춤형 성격이 있어서 개발·시장창출 과정에서 글로벌 협력이 중요한데,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킹을 토대로 각 고객사·파트너와 긴밀히 협력한 것이 리더십 구축에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낸드 플래시에서도 희망적인 관측을 이어갔다. 안현 부사장은 "AI 서버 수요 증가로 대용량 SSD 수요도 함께 커지고 있다"며 "반도체 다운턴(불황)을 극복하고 PC와 모바일 기기에서 '온 디바이스 AI' 채용이 늘어나면서 회사 매출과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회사 솔리다임은 QLC 60TB(테라바이트) 기업용 SSD(eSSD)로 올해 수요 증가에 대응하고, SK하이닉스도 QLC 60TB eSSD를 연내 개발하는 데 이어 내년에 300TB eSSD를 선보이며 두 회사가 같이 낸드 플래시 수요 증가에 대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류병훈 부사장도 "QLC SSD는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대비 전력 소모는 5분의 1에 불과하고 데이터센터 공간도 10분의 1 절약할 수 있어 데이터 증가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지원 발언을 했다.
인텔로부터 솔리다임을 사들일 때 SK하이닉스로 소유권이 넘어온 중국 다롄팹의 경우 내년 3월 인텔과 거래가 완전히 마무리되면 향후 운영 방향을 정하기로 했다. 다롄팹에서 생산하는 솔리다임 QLC 60TB eSSD는 유일무이한 대용량 저장장치로 상당기간 제품 경쟁력을 유지할 것이란 게 류 부사장의 설명이다.
◆청주→용인→웨스트라피엣 순으로 차기 팹 건립...중복 투자는 'NO'
SK하이닉스는 AI 메모리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 건립을 발표한 '청주 M15X(확장)팹'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 진척도에 관한 설명도 이어갔다. 김영식 부사장은 "청주 15팹에 설치한 HBM TSV(실리콘관통전극) 설비와 연결할 수 있는 클린룸 수요가 커지고 있어 팹 건립에 6조3000억원, 장비 등을 포함해 총 20조원을 투자해 M15X를 건립하기로 했다"며 "M15X는 연면적 6만3000여평에 복층 규모로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M15X는 용수·전력 등 팹 운영에 필요한 인프라를 M15와 공유할 수 있어 클린룸 시작 시기를 앞당길 수 있는 이점이 있다"며 "4월부터 공사를 시작해 2025년 11월 팹을 오픈하고 제품 인증을 거쳐 2026년 3분기 첫 D램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경우 126만평 부지 가운데 56만평에 SK하이닉스의 팹 4기를 건립한다. 근처에는 SK하이닉스의 국내 소재·부품·장비 협력사 50여개사가 함께 입주한다. 현재 △부지 평탄화 42% △ 전력 확보율 71% △용수 확보율 28% △도로 건설 17% 등을 진행한 상황이다.
김 부사장은 "용인 클러스터 1기 팹을 차세대 메모리 생산·개발에 활용한다는 기존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며 "1기 팹 첫 페이즈는 2027년 완공 시점 시장 수요에 맞춰 어떤 D램을 생산할지 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HBM D램 첨단 패키지 공정은 용인 클러스터에서 진행하지 않고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 첨단 패키징 설비에서 진행함으로써 중복 투자를 방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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