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곳곳에 남아있던 판자촌이 재개발 속도를 내고 있다. 최고 20층, 1600가구 단지로 조성될 서초구 방배동 성뒤마을은 내년 12월 착공할 계획으로 판자촌 가운데 속도가 가장 빠를 전망이다.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 등도 각각 정비계획 변경과 토지보상, 신속통합기획 추진 등 개발 속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 중이다.
서초구 성뒤마을 건축설계 공모…최고 20층 1600가구로 재탄생
2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달 서초구 판자촌 성뒤마을 공공주택지구(A1) 건축설계공모에 26개 업체가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는 오는 6월 28일까지 공모안을 접수받고, 7월 선정 결과를 발표한다.성뒤마을 공공주택지구 개발은 서초구 방배동 565-2 일원 13만3004㎡에 평균 15층 이하(최고 20층)로 공공주택 900가구(임대 590가구, 분양 310가구)를 짓는 사업이다. 예정공사비는 2245억원 수준이다. SH는 올해 12월 통합심의, 내년 2월 사업계획승인을 거쳐 같은 해 10월 공사를 발주하는 게 목표다. 착공은 내년 12월, 준공은 3년 뒤인 2028년 12월로 계획했다. 700가구가 들어설 민간주택단지는 민간사업자에 매각하기로 했는데, 이 내용 관련해서는 아직 일정이 계획된 바 없다.
우면산자락 아래 있는 서초구 방배3동 584 일원의 성뒤마을은 1960~1970년대 강남 개발로 생긴 이주민이 정착한 곳이다. 수십 년에 걸친 개발 지연으로 무허가 건축물이 난립하고 방치돼왔다. 지난 2010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초구가 이곳에 외국인 전용 거주단지 '글로벌타운'을 지으려 했다가 용도변경 등을 이유로 서울시가 반대해 무산됐다. 이후 서울시는 2017년 SH공사의 공영개발 방식으로 계획하고 이곳을 공공주택지구로 지정·고시했다. 2019년 1월 승인한 지구계획에서 용적률 160%, 최고 7층, 813가구의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백사마을 이주·철거 진행…분양 늘려 사업성 개선
'서울 마지막 달동네' 백사마을은 지난 3월 노원구로부터 주택재개발사업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았다. 연내 이주를 마치고 철거에 돌입할 예정이다. 오는 2025년 공사를 시작해 2028년 완공이 목표다. 개발이 완료되면 총 18만7979㎡ 부지에 최고 20층 높이, 약 3000가구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 당초 백사마을은 최고 20층, 1953가구 규모의 아파트를 짓는 공동주택구역(A1)과 저층 임대주택 484가구를 짓는 주거지 보전구역(A2)으로 총 2437가구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하지만 최근 백사마을 주민협의체가 주거지 보전구역을 전면 백지화하기로 결정하며 정비계획 변경이 추진되고 있다. 변경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는데, 분양주택을 더 늘려 사업성을 개선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주거지 보전 사업이 백지화된 건 과도한 사업비 때문이다. 지형을 살려 단독주택 형태의 저층 주거단지를 지으려고 했으나 예상 건축비가 3.3㎡당 1500만원에 달해 사업성이 없다는 판단이 나왔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가 4000억원 규모의 사업비를 예상했는데, 행정안전부 중앙투자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며 "주거지 보전 방식은 과거 재개발이 활성화돼있지 않을 때 나온 것으로, 규제 완화 등 재개발이 활성화된 흐름에 맞춰 계획이 변경된 것"이라고 했다.
백사마을은 1960년대 후반 용산, 청계천, 안암동 일대 서울 도심 개발 여파로 철거민들이 이주해오며 형성됐다. 1971년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이며 주거환경이 열악해졌고, 2009년 주택재개발정비구역으로 지정됐으나 개발방식과 사업비 등으로 사업이 오랫동안 난항을 겪었다.
구룡마을 토지보상 시작…개미마을 '신통기획' 추진
강남구 개포동 신축 주거단지 앞에 위치한 구룡마을도 그간 지지부진했던 개발사업에 속도가 날지 주목된다. 구룡마을 도시개발사업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 567번지 일원 26만7466㎡ 부지에 분양 1731가구, 임대 1107가구 등 총 2838가구의 주택 등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구룡마을은 1980년대 말부터 도시정비사업에서 밀려난 철거민들이 농지 위에 무허가 판자촌을 형성해 살고 있다. 지난 2011년 서울시가 공영개발 방식의 도시개발사업 추진을 발표했지만 개발방식과 보상 문제 등에서 갈등을 겪으며 최초 계획 수립 이후 13년 동안 사업이 제자리걸음이었다.
서울시와 SH공사는 최근 감정평가를 마치고 소유자 및 관계인에게 보상협의계약안내문을 통지했다. 이달부터 2달간 토지보상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강제수용도 검토해 연내 보상 절차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사업성이 낮아 개발이 어려웠던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도 서울시 신통기획을 통해 첫걸음을 떼려는 단계다. 서대문구는 지난달부터 개미마을과 맞닿은 홍제4구역, 홍제문화마을을 연계해 신통기획 후보지로 신청하기 위해 동의서를 받고 있다.
서대문구 홍제동 9-81 외 5필지에 위치한 개미마을은 70여 년 전 6·25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모여들며 형성된 판자촌이다. 이곳 또한 수차례 개발 논의가 나왔지만 사업성 때문에 개발 동력을 잃었다. 지난 2006년 개발제한구역에서 해제되며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지정, 이후 자연녹지지역에서 제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용도 변경되면서 4층 이하의 단독주택·공동주택 등을 조성하는 개발이 추진됐지만 낮은 사업성 등 이유로 흐지부지됐다.
이후로도 서울시와 SH공사가 열악한 주거지 개선을 위한 마스터플랜 수립을 추진하려 했지만 개발은 또 무산됐다. 그러다 2021년 서대문구가 개미마을 일대 도시정비사업 추진방안 검토에 나섰고, 최근 신통기획 재개발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낮은 사업성·보상 충돌 등 과제 많아...판자촌 재개발 더 오래 걸릴 수도
서울 내 판자촌 개발에 속도가 나고 있지만 앞으로도 낮은 사업성과 이해관계자들 간 갈등 등 풀어야 할 과제는 많다. 특히 구룡마을은 보상금을 둘러싸고 주민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면서 서울시가 올해 안에 보상 절차를 마치게 될지 미지수다. 무허가 건축물에 거주 중인 주민들은 오랫동안 살아온 만큼 분양권 또는 인근 아파트 땅값 시세에 준하는 보상 등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무허가 건축물이라 분양권을 제공할 수 없으며, 감정평가에 따른 공시가격 기준으로 보상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구룡마을 주민 대부분이 보상금액에 반발하고 있는 점에서 앞으로 토지수용 절차가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도 낮은 사업성으로 여러 차례 개발이 무산됐던 개미마을도 용도지역 상향 등으로 사업성을 개선해야 개발이 가능하다. 토지등 소유자 동의율을 충족해 신통기획을 신청, 이후 서울시 후보지가 돼야 한다. 대부분 제1종 일반주거지역이라 용도지역 상향이 이뤄지지 않으면 개발이 또다시 좌초될 가능성이 높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