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근의 아주경제적 시선] 성장률 늘었는데, 왜 더 힘든가했더니 .. '반도체 착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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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근 바른언론시민행동 공동대표
입력 2024-05-21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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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오정근 바른언론시민행동 공동대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9일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경제”라며 “민생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 불편함들을 더 적극적으로 찾아서 해결해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장 주도와 민간 주도 시스템으로 우리 경제 기조를 잡는 것은 헌법 원칙에 충실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상당 부분을 경제 살리기에 집중했다. "경제의 역동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한편 교육 기회의 확대로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재건하겠다"며 "대한민국을 성장의 길로 이끌 수 있도록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더욱 높이고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도 더 적극적으로 펼쳐가겠다"고 밝혔다. 결국 시장 주도와 민간 주도 시스템으로 경제의 역동성과 공정성을 제고하겠다는 의미다.

윤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담화에서 '민생'을 14차례 언급했다. 특히 고용·복지정책과 산업·시장정책을 통한 중산층 강화를 위해 "복지정책과 시장정책을 따로 나누지 않고 하나로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또 "세제 지원, 규제 혁신을 통해 기업이 성장하면 근로자들에게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기고 그로 인해 임금 소득이 증가하면 기업과 근로자 모두 '윈윈'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민생 중심 정책을 통해 "서민과 중산층 중심 시대를 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최근 화제가 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와 관련해서도 "'소득세법' 개정은 많은 국민들께서 간절히 바라셨던 법안들"이라며 국회의 협조를 촉구했다.

14일에는 서울 중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고맙습니다, 함께 보듬는 따뜻한 노동현장'을 주제로 열린 스물다섯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를 개최했다. 여기서 노동약자지원법 제정과 노동법원 설치 추진을 지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장관은 "기존 노동관계법과 제도는 조직화되고 전형적인 근로자를 중심으로 보호하는 데 좀 더 무게가 실려 있는 만큼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약자를 두텁게 보호하기 위해서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법 제정이 시급하다"며 "법안에는 공제회 설치 지원, 권익 증진을 위한 재정 지원 사업의 법적 근거 등을 담을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노동법원 설치를 위한 협의도 즉시 착수하겠다고 했다.

"대통령 지시로 출범 예정인 미조직근로자지원 담당부서를 통해 근로자이음센터를 운영하는 등 노동약자들이 참여·소통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를 구축하고, 영세 협력업체의 근로복지와 안전관리 역량 격차 축소 등 일하는 여건 개선에도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했다. 또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고용부 산하 기능대학인 폴리텍을 중심으로 투자를 확대해 청년·중장년·경력단절여성이 원하는 교육과 훈련을 받고 좋은 지역 기업에 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17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도 윤 대통령은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약자 복지 정책을 업그레이드해 더 촘촘하고 두텁게 만들어야 한다”며 “어르신을 비롯한 취약계층에는 기초연금, 생계급여를 계속 늘려 생활의 짐을 덜어드려야 한다”고 말하고 올해 2.8%였던 예산 지출 증가율을 내년에는 4%대까지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미 총선 전에 24번 민생토론회를 개최했고 총선 후에도 다시 민생토론회를 재개하고 노동약자 지원과 보호를 강조했지만 점점 고통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민생에 크게 와 닿지 않고 있는 점이 문제다. 결국 이 부분이 총선 패배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요인은 총선을 앞둔 2023년 성장률이 1.4%로 추락했다는 점이다. 미국 경제가 2.5%, 30년 불황의 일본 경제도 1.9% 성장한 가운데 한국 경제는 추락했다. 1.4% 성장률은 신규 일자리를 10만명 정도밖에 창출하지 않는 수준이다. 연간 대졸자만 40만~50만명 배출되는 점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한 일자리다. 사회에 나오는 청년들 중 정규직 취업자가 20%를 밑도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나머지는 대부분 비정규직이나 '알바'로 근무하고 있다. 이러니 젊은 층에서 정부를 지지하는 표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다.

경제가 이 정도 추락하고 선거에서 이긴 역사는 동서고금을 통해 찾아보기 힘들다. 1979년 영국 대처 정부 1980년 미국 레이건 정부의 등장도 당시 2차 석유파동 결과 경제가 붕괴 수준으로 추락하고 고용 사정이 악회되었던 점이 중요한 배경이었다. 경제가 추락해 고용 사정이 악화되면 원인을 불문하고 집권당이 패배하게 마련이다.

특히 GDP 지출항목 중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민간소비증가율이 1.8%에 그친 점이 중요한 요인이었다. 민간소비증가율은 코로나 이전 2015~2019년에는 평균 2.6% 증가했다. 그러나 코로나를 거치면서 고용 사정도 악화되고 자영업자들도 거의 빈사 상태에 이른 데다 물가는 높고 금리는 높은 수준을 지속하면서 한마디로 쓸 돈이 없어 민간소비가 급감한 것이다. 자영업자는 650만명(2024년 4월 말 기준)인데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140만명에 불과하고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무급가족종사자 포함 510만명에 달한다.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보여주고 있다.

자영업자들의 자금 사정은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2일 신용평가기관 나이스(NICE)평가정보가 국회에 제출한 ‘개인사업자 가계·사업자 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현재 개인사업자(자영업자) 335만9590명이 빌린 금융기관 대출(가계+사업)은 1112조7400억원에 달했다. 코로나19 유행 직전인 2019년 말 209만7221명, 738조600억원 대비 4년 3개월 사이 대출자와 대출금액이 각각 60%, 51% 급증했다. 특히 3개월 이상 연체한 위험 차주의 전체 보유 대출 규모는 같은 기간 15조6200억원에서 31조3000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로 뛰었다. 최근 연체 차주의 대출 증가 속도는 더 빨라져 작년 3월 말(20조40000억원)과 비교해 불과 1년 사이 53.4%나 뛰었다.

세 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최대한 빌려 추가 대출이나 돌려막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자영업 ‘다중채무자’ 상황은 더 좋지 않다. 3월 말 현재 전체 다중채무 개인사업자는 172만7351명으로 전체 개인사업 대출자 335만9590명 가운데 절반 이상(51.4%)을 차지했다. 이들의 대출잔액(689조7200억원)과 연체 개인사업 다중채무자 대출잔액(24조7500억원)도 증가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고금리가 지속되면서 원리금 갚을 여력도 없을 정도로 한계에 봉착했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월 개인사업자 연체율은 0.61%로 3년 전 대비 세 배 넘게 치솟았다. 여기서 벌써 수백만 표가 날아간 것이다.

금년에는 성장률이 2.6%(KDI 5월 전망)까지 높아지는데도 고용 사정과 자영업자들의 환경이 개선되지 않으면서 민간소비증가율은 금년에도 1.8%에 머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밖에 건설경기보다 집값 안정에 더 방점을 둔 부동산정책으로 지방을 중심으로 미분양이 증가해 건설회사 부도가 증가하고 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까지 대두되면서 건설투자증가율은 마이너스를 지속하고 있다. 여기에도 많은 서민들의 일자리와 민생이 걸려 있다. 설비투자도 예년에 비해 낮은 증가율에 머물고 있어 민생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투자가 일어나야 일자리가 창출되고 가계의 소비가 증가하면서 민간소비가 증대될 것이다. 그러나 고물가로 고금리도 지속되고 정부의 규제 혁파 주장에도 불구하고 규제는 더욱 증가하고 있다는 보고다.

반면 금년 들어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이 호조를 보이면서 1분기 성장률이 전기 대비 1.3% 전년 동기 대비 3.4% 성장을 보이는 등 성장률은 높아지고 있다. 단연 반도체 수출 증가가 크게 기여했다. 그 결과 경상수지도 지난해 5월부터는 흑자로 전환됐다. 그동안 한국의 수출은 반도체 수출에 크게 좌지우지되어 왔다. 그동안 한국 수출의 가장 큰 시장이었던 대중국 수출 추이를 보면 대중국 수출이 고공 행진을 지속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수출이 호조를 보일 때는 대중국 수출이 호조를 보였고 반도체 수출이 부진했던 2023년 초에는 대중국 수출도 부진했다. 지난해 11월부터는 한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이 반등하면서 한국 전체 수출도 증가하고 경상수지도 흑자로 돌아서고 성장률도 반등했다.

문제는 반도체를 제외한 대중국 수출은 2013년 1238억 달러를 정점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해 지난해에는 800억 달러 수준으로 하락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반도체를 제외하면 무역수지는 2018년 이후 적자를 지속하고 있다. 이는 2015년 11월 10일 공식 타결된 한·중 자유무역협정과 관련이 크다. 한·중 자유무역협정에서 한국이 기술 우위에 있는 품목은 대부분 관세를 낮추는 양허 대상에서 제외됐다. 자동차에 22.5~25%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등 이러한 부문의 완성품에 대한 고율관세로 중국 현지 생산을 유도해 기술 개발을 하고자 하는 중국 측 전략에 백기를 든 셈이다. 기술 우위 품목의 중국 시장 점유를 확대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쳐 버렸다.

중국에 비해 기술은 우위에 있지 않으면서 임금 수준이 높아 가격경쟁력이 열위인 범용제품은 유사한 중국 제품에 한국 시장 점령 기회만 제공한 꼴이 되고 말았다. 중국의 제조 2025로 중국의 기술력도 높아지면서 중저 기술품목은 물론 최근에는 고기술 제품마저 중국 상품들의 한국 시장 점령이 가속화되고 있어 한국 중소 제조기업은 붕괴되다시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점들이 소상공인 중소기업들의 일자리를 앗아가고 있다. 세이프가드 조항 발동, 한·중 자유무역협정 재협상 등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이러한 무역구조는 제조업 생산과 경기가 반도체를 포함한 대기업과 반도체를 제외한 중소기업 중심 경기가 양극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제조업 경기가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반도체를 제외한 경기는 여전히 낮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기업의 생산지수 증가율은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중소기업의 생산지수 증가율은 마이너스를 지속하고 있다. 그 결과 82% 정도가 정상적인 수준인 제조업 평균 가동률이 3월 중 71.3%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최근 성장률 고공 행진에도 불구하고 민생의 체감경기가 부진을 지속하고 있는 배경이다.

따라서 수출과 성장률에 대한 반도체 착시현상을 걷어내고 전체 산업수출과 생산동향을 부문별로 면밀히 살펴보고 빈사 상태인 자영업자, 소상공인, 중소기업에 대해서도 최저임금과 주 52시간 근로의 탄력 적용 등 보다 세밀한 대책이 추진되어야 대통령이 강조하는 민생이 안정될 수 있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제학과 ▷맨체스터대 경제학 박사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서울지방시대위원장·바른언론시민행동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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