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고대역폭 메모리(HBM) 기술 분야에서 협력하는 반도체 장비·공정 협력사들이 국내 증시에서 휘청거리고 있다. 삼성전자가 미국 인공지능(AI) 반도체 업체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하기 위한 검증 절차를 아직 통과하지 못했다는 소식의 여파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엔비디아가 폭증한 AI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려면 더 많은 HBM 물량을 확보해야 하고 결국 삼성전자를 찾을 수밖에 없어, 최근의 주가 조정 국면이 매수 기회라는 분석이 나온다.
2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4일 삼성전자 HBM 분야 납품사로 거론되는 테스, 오로스테크놀로지, 예스티, 와이아이케이의 주가 수익률은 각각 –1.92%, -2.00%, -3.87%,-12.60%로 집계됐다. 삼성전자 주가도 3.07%(2400원) 내린 7만5900원에 장 마감했다.
이날 로이터통신은 삼성전자의 최신 HBM이 발열과 전력 소비 문제로 엔비디아의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엔비디아의 AI용 가속 장치에 쓰이는 4세대 제품 'HBM3'와 5세대 제품인 'HBM3E'에 이러한 문제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테스, 오로스테크놀로지, 예스티, 와이아이케이의 주가가 영향을 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은 최근까지 삼성전자 HBM 협력사로 주목받아 왔다. 반도체 전공정 장비 기업 테스는 지난 4월 삼성전자에 '챌린저CT' 제품을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챌린저CT는 기존 '챌린저HT'의 HBM용 업그레이드 장비다.
반도체 전공정 계측장비 전문기업 오로스테크놀로지는 이달 삼성전자에 HBM 생산을 위한 반도체 전공정 장비를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오로스테크놀로지는 공시를 통해 삼성전자와의 계약 규모는 총 48억원으로 지난해 매출 대비 10.5%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반도체·디스플레이 열처리 장비 전문 기업 예스티는 지난해 삼성전자 HBM 제조용 웨이퍼 가압 장비를 수주했으며, 반도체 테스트 장비 전문 회사 와이아이케이는 HBM 제조에 활용되는 D램용 메모리 웨이퍼 테스터를 수주했다고 공시한 바 있다.
삼성전자에 대한 시장 우려의 근원은 HBM을 비롯한 AI 역량에 대한 의구심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9년 HBM 전담 개발팀을 해체했다. 올해 들어 전담팀을 부활시켰지만, 경쟁사와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상태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의 1분기 HBM 시장 점유율은 59%를 달성한 것으로 보이며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37% 수준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증권가는 최종적으로는 엔비디아가 삼성전자를 찾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오히려 삼성전자와 관련 협력사 비중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대응할 것을 조언했다.
김영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지난 24일 보고서를 통해 "삼성은 내부 '퀄'(Qual·품질 인증 테스트)도 안 거친 제품을 샘플링할 정도의 영세 사업자가 아니다"라며 "일부 부족한 스펙을 계약 조건으로 보완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삼성 HBM이 실패하면 투자자만큼 상실감을 느낄 이는 (엔비디아의 CEO인) 젠슨 황"이라며 "내년부터 36GB 모듈 수요가 늘어나면 엔비디아는 추가 HBM3E 12단 공급자가 절실한 상황이다. HBM 진도가 시원하지 못한 것이 아쉽긴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비중확대 기회로 삼길 권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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