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승 칼럼] 규제보다 동반성장 …유통업 '골든타임' 놓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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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승 단국대 경영대학원장(교수), 한국경영학회 수석부회장
입력 2024-06-2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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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승 단국대 경영경제대학 교수
[정연승 단국대 경영경제대학 교수]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가리지 않고 국내 유통업계에서 나오는 비명이 심상치 않은 요즘이다. 업계가 다 잘될 때에는 다양한 이유로 잘되지만, 지금 모든 업체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데에는 한 가지 이유가 공통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규제 과잉이다.

국내 유통업에 대한 본격적인 규제 원년은 2012년이다. 그해에 대규모유통업법이 제정되어 대규모 유통업체들에 대해 거래를 제한하며 협상력을 꺾어버렸고, 대형마트의 주말 의무휴업제도 도입했다. 모든 규제는 도입 이유가 있고, 공(功)이 있는 만큼 과(過)가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공과 과는 늘어나거나 줄어든다.

2012년 당시 한국 사회에 유통업을 규제해야 한다는 나름의 명분과 이유는 있었다. 까르푸로 대표되는 외국계 할인점들이 국내 중소 납품업체들에 대해 여러 갑질이 회자되었고, 전통시장의 쇠퇴와 대형마트의 종업원 근로환경 악화 등을 범사회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던 시기였다. 전문 유통업체에서 유통되는 상품의 대다수가 중소 제조업체들 것이어서 이들을 대규모 유통업체와 거래할 때 상대적으로 보호할 필요도 있었다. 속된 말로 2012년은 그 동안 잘나가던 유통업체들을 한번쯤은 눌러줄 사회적 필요도 있었던 시기였고, 그 결과물이 대규모유통업법과 대형마트 의무휴업제도였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났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거니와 단순히 10년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할 정도의, 말 그대로 상전벽해의 변화가 대한민국 유통업계에 몰려왔다. 생필품 위주의 저렴한 가격대 상품이 주종을 이루던 대형마트나 편의점 같은 종합 유통채널의 상품이 양질의 고급 상품 위주로 재편되면서 대형 제조∙납품업체들의 입김이 거세지고, 중국산 온라인 유통업체의 시장 잠식은 그야말로 파죽지세이다. 편의점이나 마트, 아니면 백화점에서 아이쇼핑(eye shopping)하다가 정작 구매는 온라인 앱에서 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이러한 쇼핑 패턴이 앞으로 훨씬 많아지면 많아졌지 적어질리가 만무하다.

사실 유통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상충된 이해관계자가 많다. 소비자, 납품업체, 골목상권, 가맹점주, 직원, 주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있다. 문제는 이들의 상충되는 이해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들이 너무 많고 모순된 결과를 낳는다는 점이다. 납품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유통사들의 가격협상력을 대규모유통업법으로 규제하니 소비자의 할인 혜택이 줄고 소매 물가가 올라갔다. 골목상권 보호하겠다고 영업시간 규제하니 소비자들이 불편하다. 개인 슈퍼를 운영하다 대형 유통사 슈퍼 간판으로 바꿔 단 소상공인인 가맹점주들도 대형마트와 동일하게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규제를 받는다. 오프라인 유통사들의 영업시간을 규제하니 온라인 유통사들이 성장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예 규제를 받지 않는 해외 업체들이 직구 형태로 시장에 들어오니 온라인 업체들도 힘들어지기는 마찬가지이다.

다양한 규제로 대부분 유통사들의 매출은 성장하지 못하고 심지어 역성장까지 하고 있다. 영업이익은 적자이거나 1~2% 수준이다. 그래서 인력을 감축하고 비용과 성과급을 줄이니 직원들이 힘들어 한다. 주주들 역시 계속 떨어지는 주가에 신음하고 있다.

유통업은 인구 감소로 어쩌면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 그러면 해외 진출을 통해 성장을 모색해야 하는데 안방에서 규제로 돈을 벌지 못하니 해외 진출을 하기 위한 자금력도 부족하다. 반대로 한국 시장 진출에 적극적인 C-커머스 업체들이 어려운 국내 유통사들을 인수하게 된다면 우리 제조업체들은 중국 제조업체들과 더 치열하게 안방 시장에서 경쟁해야 될지도 모른다.

C-커머스의 국내 진출로 이제 유통의 국경은 사라졌다. 국내에서만 집행 가능한 우리의 갈라파고스 규제로 인해 이제 우리 산업의 발목을 잡고 안방만 내어주게 될 것이다. 이제는 정말 낡은 유통규제들을 드러내서 유통업이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를 둘러싼 실제 현실에 비추어 다시 질문을 해본다. 소위 ‘벤처기업’ 중에도 연 매출 1000억원이 넘는 곳이 2023년 기준으로 900여 개에 달할 정도고 경제 규모가 커진 지금 시점에 단지 연 매출 1000억원이 넘는다는 이유로 대규모 유통업자로 인정되어 모든 납품업체에 대해 갑질을 할 지위로 평가되는 것이 맞는가, 입점에 모시기 위해 가장 큰 백화점 3사도 쩔쩔매는 샤넬이나 루이비통 같은 해외 명품 브랜드를 국내 중소 납품업체와 동일한 선에서 과보호를 하는 것이 정당한가, 지난 12년의 규제 기간 동안 세상은 바뀌었고 규제의 공은 줄어들면서 과는 점점 커져간다.

유통업체뿐만 아니라 납품업체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수년간 수많은 유통업체들이 대규모유통업법상 서면계약서를 안 썼다거나 장려금 형식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적게는 수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고, 형사 처벌의 위험까지 직면했다. 그 납품업체가 세계 1위 가전회사든, 압도적인 영향력의 라면회사든, 대체 불가능한 정도의 브랜드 회사든 상관없었다. 오로지 유통업체라면 납품업체와의 거래에서 감수해야 할 위험이다.

처벌의 위험이 커지면 자연스럽게 몸을 사리는 것이 본능이고 회사도 다르지 않다. 수 년간 집적된 규제 리스크로 인해 대다수의 유통업체들은 단가 협상을 두려워했고, 겁이 나서 판촉행사를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에서 널리 이용되는 판매장려금(sales incentive)은 지극히 제한된 요건에서만 허용되니 납품업체들은 판매 장려를 하려야 할 수도 없는 지경이다.

유통업체들은 리스크 감소를 위해 자제하면 그만이지만 그 불이익은 고스란히 중소 납품업체와 소비자 몫이다. 겁이 나 단가 협상을 제대로 못하고 판촉행사도 자제하니 소매 유통물가는 날이 갈수록 오를 수밖에 없고, 중소 납품업체들은 판촉행사도 제대로 못하고 장려금을 통한 판매 장려도 제한되니 재고 부담에 죽을 맛이다.

어려운 와중에 다행으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작년 말에 기존의 과도한 판촉행사 규제를 해소하는 정책 개선을 하여 유통업체와 납품업체 간 판촉행사가 활성화될 길을 열어주었고, 이에 따라 불과 몇 달 되지도 않았지만 상당한 규제 완화 성과가 중소 납품업체, 유통업체, 소비자에게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최근에는 대기업 납품업체까지 과보호되는 것은 문제 아니냐는 인식의 법원 판결도 나와 그간의 답답함을 어느 정도는 해소해 주기도 하였다.

정부 부처와 법원의 이러한 판단은 달라진 환경과 그에 따른 그간의 문제점을 동일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이에 더 나아가 이제는 일률적인 규제가 아니라 다 같이 함께 잘살 수 있는 동반의 정책이 필요하다. 장담하건대 미국, 중국 온라인몰의 시장 침투는 가속화될 것이고 그로 인한 압박은 고스란히 국내 중소 제조업체들이 받을 것이며, 그 종국적 결과는 물가 상승과 소비자 후생의 감소이다. 기존의 규제로 인해 옴짝달싹 못하는 국내 유통업체는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할 것 없이 제대로 된 대응도 못하고 외국 유통업체와의 경쟁에서 밀릴 공산이 크다.

지난 12년간의 규제를 통해서 우리는 어떤 규제는 더욱 강화해야 하고, 어떤 것은 해소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대규모 유통업체가 중소 납품업체를 괴롭혀서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게 하거나 돈을 뜯어낸다면 마땅히 규제해야 한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유통업체가 대기업 납품업체나 해외 명품업체들과 대등한 수준에서 협상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하고, 중소 납품업체와는 마음껏 판촉행사를 할 수 있도록 하여 업체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도록 하며, 중소 납품업체가 유통 채널별로 판매 장려를 할 수 있도록 해서 이들에게도 유통채널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타당하다.

외국 온라인 플랫폼의 파상공세는 지속되고, 국내 유통업계의 골든타임은 지금도 지나가고 있다. 앞으로 10년, 규제보다는 공생과 동반의 10년이 될 수 있도록 정부의 전향적인 정책 집행을 기대해본다.


정연승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영학과 학사/석사 △연세대 경영학과 박사 △단국대 경영대학원장 (교수) △한국경영학회 수석부회장 △전 한국유통학회 회장 
전 서비스마케팅학회 회장   △전 서울대 경영대학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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