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을 위한, 이재명에 의한
민주당이 당원 중심주의의 기치를 치켜들었다. ‘당원 중심주의’가 정확히 뭘 뜻하는지 분명치 않지만 이재명 대표의 설명과 민주당 일각의 논의로 미루어 ‘당의 결정에 당원의 의사를 적극 반영하는 것’쯤으로 읽힌다. 여기서 당원은 정기적으로 당비를 내는 당원을 말한다. 흔히 권리당원, 책임당원, 후원당원 등으로 불린다. 이들이 당의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게 당원 중심주의라면 레토릭 차원에선 문제될 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민주당은 지난달 16일 22대 국회 전반기 원 구성을 위한 당선자 총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5선의 우원식 의원이 총 투표수 192표 중 189표를 얻어 6선의 추미애 의원을 누르고 국회의장이 됐다. 당원 다수가 지지하고, 이재명 대표의 이른바 ‘명심(明心)'도 얻었다는 추 의원이 낙선하자 많은 당원들은 반발했다. 이들은 윤석열 정권과 맞설 국회의장감으로 평소 전투력이 있다는 추 의원을 선호했다. 그들은 짙은 배신감을 느꼈고 이에 대한 항의 표시로 집단 탈당했다. 그 수가 한때 2만여 명에 달했고 당 지지율도 급락했다.
이 대표가 직접 나섰다. 22일 ‘민주당의 갈 길’ 토론회에서 “이번 탈당 사태를 “과잉 반응 또는 소수의 팬덤 현상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했다. “잠시 일렁이는 정도가 아니라 근본적인 밑바닥 흐름이 감지되는 중”이라며 “이를 당의 분열과 역량 훼손이 아닌 새 발전의 계기로 만들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고 했다. 그는 “뽑은 유권자, 뽑힌 의원, 뽑힌 자들의 대표, 세 단계가 있는데 뽑은 유권자의 의지가 어느 정도 반영돼야 하느냐, 똑같아야 하느냐, 똑같은 게 반드시 바람직한가 하는 논쟁들이 시작된 것”이라고 했다.
'당원 투표 20% 반영'···이건 탈법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 대표는 일관되게 ‘당원 중심주의’를 주장해왔기에 당원 중심주의의 강화 또는 심화를 위한 숨 고르기쯤으로 들렸다. 민주당은 이미 우원식 의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추미애 의원을 지지했다가 낙심한 당원들을 달래기 위해 당헌·당규 개정팀을 통해 ‘당원 투표 20% 반영’을 공식 안으로 채택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건 탈법이다. 삼권분립의 원칙하에 입법부 구성은 헌법과 법률에 근거해 국민 또는 국민이 뽑은 대표자의 의사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이때의 국민은 단순히 다수당의 당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을 배출한 모든 정당의 당원을 포함한 전체 국민이기 때문이다. 행정부와 사법부도 그 구성 원리가 이와 동일하다. 이게 헌법이 선언하고 있는 민주주의다. 반면 자치조직인 정당의 구성은 그 조직의 헌법과 법률에 해당하는 당헌과 당규에 따라 당원이 선택할 수 있지만 그 선택은 정당 안에 머물러야 한다. 당원이 국민 전체를 대변하는 게 아닌 만큼 당연하다.
당원들이 여론조사 차원에서 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비공식적으로 전달할 수는 있지 않으냐고? 그런 시도 자체도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정당들이 대법관 후보를 놓고도 여론조사를 빌미로 지지 여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다. 그게 옳은가? 법의 취지는 ‘정당의 일은 정당에 머무르게 하고 자꾸 정부 안으로 끌고 들어오지 말라’는 거다. 이런 원칙이 무너지면 어떻게 될까. 당이 법과 국가, 그리고 제도를 흔드는 사회가 된다. 그런 사회를 우리는 잘 안다. 대명천지에 그럴 일은 다시 없겠지만 2차 세계대전 직전 파시즘이 그러했다.
미국도 대통령선거 예비선거는 프라이머리(primary‧예비선거)와 코커스(caucus‧당원대회)라는 두 방식으로 치른다. 프라이머리는 당원 또는 지지자들이 모여서 본선 투표 하듯이 후보를 뽑고, 코커스는 등록된 정당원들끼리 만나 본선에 내보낼 대의원들을 뽑는 방식이다. 프라이머리는 당원 여부에 관계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는 개방형(open primary)과 당원만 투표할 수 있는 비개방형(closed primary)으로 나뉜다. 미국도 비개방형에서 개방형으로 진화돼 왔다. 그래서 강성 당원들의 팬덤 현상이 특정 후보에게 쏠리더라도 당원이 아닌 국민들이 참여하는 선택이 허용되는 한 미국 민주주의의 기반이 유지되는 안전판이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왜 민주당과 이재명 지지자들은 자꾸 ‘당원 중심주의’를 외칠까. 답은 간단하다. ‘당원 중심주의’, 그 너머의 ‘권력’을 응시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국회의장 선출 과정에서 당원들의 투표 참여가 가능하도록 만들고, 그 참여율을 높이면 의회 권력도 누릴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다. 이 대표 측근인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강성 팬덤들이 원하는 대로 모든 걸 결정하는 게 이 대표의 당원 중심주의인가”라는 비판(동아일보)에 대해 “웃음이 나온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르는 언론”이라고 했다. 당원 중심주의에 비판적인 언론은 시대에 뒤졌다는 얘기 같은데, 정작 본인은 정당자치(政黨自治) 구현의 원칙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원내대표를 지낸 비교적 합리적인 정치인이다. 그는 지난달 23일 한 인터뷰에서 “원내 직은 국회의원이 뽑고, 당대표, 최고위원, 시도당위원장 등 당직은 당원들이 뽑는 게 맞다”면서 민주당의 오랜 원칙은 지키는 게 좋다고 했다가 일부 당직자들에게 호된 비판을 받았다. 양문석 당선자는 “맛이 간 기득권과 586, 시대정신이 20년 전에 멈춰선 작자들이 원내대표와 국회의장은 국회의원 몫이라고 우기며 내부 총질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당내 친명계 최대 조직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 회원이기도 하다.(한겨레 6월 8일)
우리도 이미 ‘실패 사례’가 있다. 2022년 12월 여당이던 국민의힘은 일반 국민 여론조사 없이 ‘당원투표 100%’로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뽑기로 당헌‧당규를 개정했다가 총선에서 패배하자 다시 국민 참여의 틀로 돌아갈 것으로 알려졌다. 당헌‧당규 개정 당시에도 “친윤’ 후보를 당대표로 선출하기 위해 무리하게 경선룰을 바꾼다”는 비판이 많았다. 그때 나온 구호가 호기롭게도 '당심이 곧 민심'이었다. 국민의힘은 ‘당원투표 70%+일반 국민 여론조사 30%인 종전 경선 룰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결선투표제가 도입되고 ’역선택 방지 규정‘이 추가된다. 국민의힘은 야당인 민주당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는 셈이다.
민주당은 이와 반대로 가는 형국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당원권 강화에 나섰기 때문이다. ‘전국대의원대회’ 명칭부터 ‘전국당원대회’로 바꿨다, 국회의장단은 물론 원내대표 선출에도 권리당원 투표 20%를 반영키로 한 것 외에도 시도당위원장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반영 비율을 20대 1미만으로 제한한다고 한다. 중앙당에는 당원 전담부서인 “당원주권국‘을 설치하고, 당론 위배자에게는 공천예비심사에서 불이익을 주는 방안도 추진한다.
개딸과 태극기부대의 결전장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이재명 대표 ‘단일체제’의 완성 여부에 있다. 어쩌면 이미 끝나버렸는지도 모른다. 그가 민주당을 확실히 장악할 수 있도록 관련 당헌·당규 개정작업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지난 10일 당대표가 대선에 출마하려면 선거일 1년 전에 사퇴해야 한다는 규정에 예외를 두기로 했다. 대통령 궐위 같은 특별하고 상당한 사유가 있을 때는 사퇴를 미룰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현행 규정대로라면 오는 8월 임기가 끝나는 이 대표(임기 2년)는 연임되더라도 차기 대선을 1년 앞둔 2026년 3월 전에 사퇴해야 하므로 그해 지방선거에서 공천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이 규정을 고쳐 이 대표가 2026년 3월 지방선거에서 공천권도 행사하고, 2027년 3월 차기 대선에도 출마할 수 있도록 했다. 전형적인 특정인을 위한 맞춤형 당헌‧당규 개정이고 위인설법(爲人設法)이다. 결국 이 대표와 민주당이 내세우는 ‘당원 중심주의’는 어떤 수사(修辭)를 동원해도 이 대표와 그의 추종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전방위적 방탄작업의 일환으로 보인다.
자신이 지지한 사람이 국회의장이 안 됐다는 이유로 집단 탈당하고, 이를 정치 에너지원으로 삼으려는 것은 민주적 대응이 아니다. 세상이 변했다고들 하지만 민주주의의 요체는 대의제(代議制)다. 당의 결정권은 일차적으로 당원이 아닌 당의 의원들에게 있다. 그 결정을 따르고 존중하는 게 민주주의이다. ‘개딸’이나 ‘태극기부대’에 쉽게 양도할 권리가 아닌 것이다.
섣부른 당원 중심주의, 모종의 정치적 의도가 있는 당원 중심주의는 상대 당을 자극해 갈등과 대결의 악순환만 격화시킬 뿐이다. 작금의 원 구성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여야 간 대결을 보라. 이 대결이 자칫하면 정치와 세상을 개딸과 태극기부대의 결전장으로 만들 수도 있다.
누구의 말처럼 필자는 ‘시대정신이 멈춰선 기득권자’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대의제에 충실한 당과 당원들이 정치를 지키고 키워야 한다고 믿는다. 임혁백(고려대 명예교수)의 말처럼 대의제는 '국민의 지배를 근대국가의 환경에서 실현하기 위한 지난 1000년의 제도적 발명'이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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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시대에선 불가피하게 대의 민주주의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디지털시대를 넘어 AI시대다. 양자역학의 시대라고도 한다. 시시각각 1초가 걸리지 않는 시간에 지구 반대편 소식을 직접 듣고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정보를 접근하는 환경에 극적인 변화가 있다는 얘기다. 국내정치 상황은 말할 여지도 없다. 직접민주주의를 접목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