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외국 순방을 자제하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5선 취임 이후 5개국이나 방문하며 '폭풍 순방' 일정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우방국 위주로 순방에 나서며 '제재의 빈틈'을 찾고자 동분서주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중국, 벨라루스, 우즈베키스탄을 잇따라 방문한 데 이어 19일부터는 북한과 베트남 방문에 나섰다. 지난해 3월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체포영장을 발부한 이후 외부 일정을 극도로 삼가던 푸틴 대통령이 5선 취임 이후 돌연 태도를 바꿔 적극적으로 해외 일정에 나서고 있는 것은 다소 의외다. 물론 올 들어 푸틴 대통령이 방문한 국가는 모두 전통적 우방국이자 ICC 비회원국들이어서 체포될 우려가 없는 나라들이지만 해외 행보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의외로 평가받고 있다.
구 소련 정보기관 KGB 출신인 푸틴 대통령은 이전에도 예측 불가한 행보로 주목을 받아왔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 분야 대가로 평가받는 스티븐 월터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는 지난 4월 미국 외교 전문 매체 포린폴리시에 기고한 '러시아가 다음에 무엇을 할지 아무도 모른다'라는 제하의 글을 통해 어느 누구도 푸틴 대통령 의도를 간파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관계가 완전히 틀어진 유럽과 미국 등 서방을 대체해 아시아 국가에서 해결책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러시아와 같이 서방의 제재하에 놓인 북한 등과 군사적·경제적 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것은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속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는 평이다.
미국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러시아·푸틴 전문가인 라잔 메논 연구원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는 한, 설령 우크라이나가 패배하더라도 서방은 (러시아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푸틴 대통령은 아시아로 눈길을 돌리는 수밖에 없다고 독일 매체 도이체벨레(DW)에 말했다.
사실 푸틴 대통령의 구애 대상이 아시아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신흥국들 간 협의체인 브릭스(BRICS)의 한 축인 러시아는 올해 브릭스 정상회의 개최국이라는 입지를 활용해 '글로벌 사우스(아시아·아프리카·남아메리카 등 주로 남반구에 분포된 개발도상국들을 통칭하는 말)' 국가들을 규합해 미국과 유럽으로 상징되는 서방 주도의 세계에 대항하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도 푸틴 대통령의 해외 행보는 한층 확대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서방 주도의 제재에 직면한 가운데서도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속하면서 우방국들을 중심으로 한 세력 규합 노력이 계속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라트비아 대통령을 역임하며 푸틴 대통령과 만난 적이 있는 발디스 자틀레르스는 미국 군사 전문 매체 스타스 앤드 스트라이프에 기고한 글을 통해 "푸틴은 전술적으로는 예측이 어렵지만 전략적으로는 예측이 가능하다"며 "푸틴은 항상 자기 확신에 가득 차 있고 끝까지 싸우려 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결코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는다"며 "우리는 항상 푸틴이 말하는 것에 귀 기울이고 향후 전투를 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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