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음 커진 지주택] "원수에게 권하라" 함정 도사린 지주택, 조합 파산위기에 피해 속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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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새롬 기자
입력 2024-06-1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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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택조합 사업으로 건설된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보라매자이더포레스트 일대 풍경  사진박새롬 기자
지역주택조합 사업으로 건설된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보라매자이더포레스트 일대 주택가 풍경 [사진=박새롬 기자]

#서울 동작구 한 지역주택조합에 지난 2017년 가입한 A씨는 7년 째 진전이 없는 사업에 1억원이 묶여있다. 아직 조합 설립조차 되지 않고 인허가 관련 심의 등 사업 진전이 없음에도 조합은 추가 분담금을 요구했다. 계약 당시 추진위가 교부한 추가 분담금이 없고, 환불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안심보장증서는 법적효력이 없었다. A씨는 결국 변호사를 선임해 분담금 반환소송에서 이겼지만, 조합이 조합이 빈털터리가 돼 돈을 돌려받을 수 없었다.

토지확보율과 시공사를 속여 조합원 모집, 조합·업무대행사의 사업비 횡령·배임, 불투명한 운영 등 지역주택조합 사업에서 각종 피해가 끊이지 않자 업무행사·신탁사 규제 등 개선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시가 이날 기존 지연 사업장을 정리하자는 취지의 지주택 관리방안을 내놓은 가운데 궁극적으로 지주택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조합 업무중단에 파산위기…파산 시 분담금 공중분해
19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동작구 사당동 175-13 일원 '사당3동 학수 지역주택조합'은 파산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이곳은 계약 당시 사업 진행이 어려워지면 분담금을 반환해주겠다며 조합원 가입을 유도했던 곳이다. 하지만 지난 2018년 12월 조합원모집신고 이후 5년 7개월 가까이 조합설립인가를 받지 못한 채 장기간 지연되고 있다. 조합 사무실은 몇달 째 문을 닫고 업무를 사실상 중단한 상태다. 

이곳 조합원 B씨는 "조합원으로 가입한지 5년이 넘었고, 계약금은 1억원 가까이 납부했는데 아직까지 사업 진척이 없고 업무대행사도 나갔다"며 "조합을 탈퇴하고 분담금이라도 돌려받고 싶은데 소송한다고 해도 돌려받지 못한다고 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채무가 쌓이고 사업 진행이 안 될 경우 선택지는 두 가지다. 조합원들에게 추가분담금을 걷어 급한 채무를 갚고 토지확보를 계속 해나가거나, 파산 절차를 밟게 된다. 토지확보를 분담금을 걷으려면 기존 조합원을 설득하거나 신규 조합원을 모집해야 하는데 파산 직전 상황인 지주택 조합은 관련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조합이 자금난에 시달리다 파산하면 조합원들은 납부한 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2014년 신탁사와 자금관리 약을 맺은 동작구 본동 402-1 일대 '한강지역주택조합'은 2020년 12월 30일 조합설립인가 이후 토지 확보에 난항을 겪으며 사업계획승인을 받지 못했다. 2022년 조합이 시공사로 선정한 호반건설도 사업 불참을 밝혔다. 조합은 조합원들에게 이미 총 납입금액을 다 받은 상황에서 추가 납부를 요구 조합원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토지확보율 95%' 요건…사업지연으로 토지매입·금융비용 폭등
지역주택조합 사업은 1980년 서민주거 마련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재개발과 달리 사업 추진 지역에 토지를 보유하지 않고도 토지주들로부터 토지사용권원(토지사용승낙서 등)만 확보한 상태에서 해당 지역에 6개월 이상 거주한 무주택자 또는 85㎡ 이하 1주택 소유주들이 모여 조합을 설립한다. 일반적으로 정비사업은 건설사, 부동산개발업자 등 시행사가 사업주체인데 지주택은 조합원이 사업시행주체가 되는 만큼 사업 무산 및 지연에 따른 피해는 모두 조합원이 짊어지는 형태다. 

하지만 사업계획승인 단계에서는 토지 95%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기존 소유주들이 모여 추진하는 일반 정비사업과 달리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 땅값이 급등해 토지매입도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사업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금융비용과 공사비도 급등해 조합원이 부담할 비용도 크게 불어나고 있기 때문다. 또 초기부터 사업을 주도하는 업무대행사들이 사업 추진에 집중하기보다 과도한 수수료를 떼가거나 '깜깜이 운영'을 통해 조합 재산을 횡령·배임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서울시에 따르면 모집신고 단계(87곳), 조합설립인가 단계(14곳) 사업지 101곳 중 84곳이 일몰기한이 경과했다. 지주택 추진 사업장이 가장 많은 동작구에서는 총 24곳 가운데 4곳만 착공에 들어갔고, 나머지 16곳은 모집신고 단계에 머물러 있다. 

금융비용이 상승하고 PF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며 토지 매입에 난항을 겪다가 파산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서울회생법원은 지난 10일 서울 관악구 '행운동 더퍼스트힐 (서울대역 편백숲2차)' 지역주택조합 설립추진위원회에 파산선고를 내렸다. 조합원 413명이 있는 이곳은 조합원 모집신고일(2017년 6월)로부터 7년이 지났으나 토지소유권 확보율은 15.17%에 불과했다. 관악구 낙성대동 '편백숲1차 지주택조합'도 사업추진이 어렵다는 판단으로 지난 1월 파산선고를 받았다. 

드물긴 하지만 성공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15년부터 조합원 모집을 시작한 성동구 '서울숲 아이파크 리버포레'는 업무대행사 비리와 토지확보 난항 등 우여곡절 끝에 2021년 사업계획승인, 내년 준공을 앞두고 있다. 동작구 '상도 스타리움'도 2020년 조합설립, 2022년 사업계획승인을 받고 지난 2월 말 실착공에 들어갔다.
 
'지주택 규제' 주택법 개정 필요…업무대행사와 신탁사 책임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지주택 관련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업무대행사 선정 기준 강화와 신탁사 업무 규제 등이 명확히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남형권 주택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업무대행사는 사실상 조합원 가입 유도까지만 하고 실제 사업 추진업무에 관심 없는 경우가 많아 선정과 업무 기준을 강화해야 하고, 사실상 신탁사의 조합 사업비용 관리가 요식행위 수준으로 역할이 미미한데 신탁사 책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주택 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 지주택 제도가 생겼던 때와 달리 지금은 주택공급 방법이 다양해져 이 제도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사업 성공 확률도 낮아 더 많은 피해자가 나오기 전에 제도 보완이 아닌 폐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이날 사업 요건을 강화하는 지주택 관리방안을 발표했지만, 결국 법 개정이 이뤄져야 개선책이 실효성을 얻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시는 업무대행사 자본금 기준을 만들고 공개입찰을 통해 선정하도록 하는 내용의 주택법 개정안을 지난 2월 국토부에 건의했지만, 법 개정이 언제 이뤄질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변호사는 지주택 투자와 관련해 "성공률이 극히 낮기 때문에 조합 가입을 추천하지 않지만, 만약 가입을 고려하고 있다면 사업계획승인 요건(95%)에 가까운 토지 확보가 돼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가입 계약 시 추가 분담금이 없다는 확약서를 써주지만 '총회에 따라 분담금을 부담할 수 있다'는 조항이 병기된 경우가 많아 이 부분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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