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일본을 1년 만에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재지정하며, 외환시장에서 엔화값이 털썩 주저앉았다.
20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이날 ‘2024년 상반기 환율 보고서’를 내고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대만, 베트남, 독일 등 7개 국가를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했다.
재무부는 반기별로 환율 관행 보고서를 발행하는데, 일본이 새로이 관찰대상국 명단에 올랐다. 일본은 지난해 6월 환율관찰대상국 명단에서 제외됐다가, 1년 만에 다시 미국의 모니터링을 받게 된 것이다.
이 소식이 나온 후 이날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엔화값은 장중 2개월래 최저치인 158.95엔까지 하락했다. 159엔선까지 추락할 수 있는 셈이다.
미 재무부는 이번 보고서에서 “2024년 4월과 5월에 일본 당국은 2022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시장에) 개입해 엔화를 매입하고 달러를 매도해 엔화값을 강화했다”며 “재무부는 거대한 자유 시장에서 개입은 매우 예외적인 상황에서, 그리고 적절한 사전 협의 후에만 이뤄져야 한다고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일본은 외환 운영에 있어서 투명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매달 외환 개입을 정기적으로 공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 재무부는 이처럼 일본이 외환 시장에 개입한 점을 지적하면서도, 환율관찰국으로 지정한 것은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는 2022년 국내총생산(GDP)의 1.8%에서 지난해 3.5%로 확대됐다. 미 재무부는 ‘GDP의 3%를 초과하는 경상수지 흑자’를 낸 경우 환율관찰국 지정을 위한 조건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
보고서는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와 관련해 “원유값이 다소 하락하고, 외국인 관광객 유입히 급격히 회복되면서 상품 및 서비스 적자가 줄어든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고위 당국자가 고금리 장기화를 시사한 점도 엔화 매도세에 불을 지폈다.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이날 "인플레이션 상승률을 2%로 되돌리기까지는 1~2년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일본은 올해 초 엔화값 방어에만 사상 최대 규모인 9조8000억엔을 쏟아부었다. 미-일 금리차가 오랜 기간 유지되면서, 엔화값은 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일본이 올해 4월과 5월에 시장 개입했으므로, 재무부의 이번 보고서의 조사 시기와 겹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번 보고서에서 시장 개입이 심도 있게 다뤄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미국은 중국에 투명성을 강화할 것을 요구했다. 재무부는 "외환 개입을 공표하지 않는 점과, 환율 정책의 주요 특징을 둘러싼 광범위한 투명성 결여로 인해 중국은 주요 경제국 중에서 '이탈자'가 됐다"며 "재무부의 면밀한 감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미 재무부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인 2019년에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바 있다. 이후 그 다음해인 2020년에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을 공식 해제했다. 당시 미 재무부는 해제 이유로 중국이 경쟁적 위안화 절하를 삼가고, 환율을 경쟁의 목적으로 삼지 않았다고 약속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2015년 제정된 무역 촉진법에 따라 자국과의 교역 규모가 큰 상위 20개국의 거시정책 및 환율정책을 평가한다. 평가 기준은 △ 150억 달러 이상의 대미 무역 흑자 △ 국내총생산(GDP)의 3%를 초과하는 경상수지 흑자 △ 12개월 중 8개월간 GDP의 2%를 초과하는 달러 순매수 등이다.
이 중 3가지 기준에 모두 해당하면 환율조작국으로, 2가지만 해당하는 경우에는 관찰대상국이 된다. 다만, 관찰대상국은 모니터링 대상일 뿐 제재 대상은 아니어서, 명단에 오르더라도 큰 타격이 없다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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