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3.6원 오른 1388.3원에 장을 마감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7.3원 오른 1392.0원에 개장해 장 초반 1393원까지 올랐다. 원·달러 환율 시가가 1390원대를 기록한 것은 지난 4월 17일(1390.0원) 이후 두 달여 만이다.
지난 4월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간의 충돌이라는 지정학적 요인으로 환율이 급등했다면 이번에는 전 세계적인 금리 인하 분위기가 환율 상승세에 불을 지핀 모양새다.
간밤 달러화는 스위스중앙은행(SNB)의 깜짝 금리 인하와 영국 잉글랜드은행(BOE)의 8월 인하 기대에 강세를 보였다. 스위스중앙은행은 시장 예상과 달리 지난 3월에 이어 이달에도 25bp(1bp=0.01%포인트)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잉글랜드은행은 금리를 동결했지만 2%에 도달한 물가상승률로 다음 회의인 8월에는 금리 인하 기대가 커졌다.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결정이 머지않았다는 관측도 원화 약세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16일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금리를 인하할 수 있는 환경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이틀 뒤 기자들에게 "금융통화위원들이 독립적으로 결정할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되풀이했지만 시장의 금리 기대는 이미 상당히 높아진 상황이다.
김진욱 씨티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9일 보고서에서 "한은이 8월에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이전보다 높아졌다"며 당초 8월 60%, 10월 40% 수준이었던 금리 인하 확률을 8월 100%로 대폭 수정했다. 7월엔 비둘기파로 분류되는 신성환, 황건일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위원이 금리 인하 소수 의견을 내고 대다수 금통위원들의 3개월 후 금리 점도표가 금리 인하로 바뀔 것으로 내다봤다.
1390원대까지 상승세였던 원·달러 환율은 외환당국이 국민연금과 외환스와프 거래 한도를 기존 350억달러에서 500억달러로 증액하기로 합의했다는 발표 이후엔 상승 폭이 줄었고 1380원대까지 떨어졌다. 국내 최대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이 해외주식에 투자하기 위한 달러화 매입 수요를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으로 대체하면 원화 약세를 억제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외환당국은 "외환스왑 거래를 통해 외환시장 변동성 확대에 효과적으로 대응한 경험이 있다"며 "국민연금의 해외투자가 지속되는 점 등을 고려해 두 기관의 대응 여력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이번 한도 증액이 환율의 추가 상승 억제에 얼마나 기여할지 주목하고 있다. 오는 30일 프랑스 1차 조기 총선을 앞두고 불확실성 회피 심리가 강화되면서 달러는 계속 강세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된다. 주말에 발표되는 미국과 유로존 6월 S&P Global PMI에서 격차 축소 여부에 따라 강달러 심화폭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주원 대신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미국과 비미국 간 통화정책 차별화가 부각된 가운데 오는 30일 프랑스 1차 총선까지 앞두고 있어 당분간 달러 강세압력이 빠르게 축소되기는 어렵다"며 "여기에 한국 금리 인하 기대가 커져 한·미 금리차가 확대된다면 환율의 상단 지지력은 약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CPI와 소매판매 등 미국 실물 지표는 컨센서스보다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미국 경기에 대한 눈높이 조절이 지속됐는데도 대외적인 요인이 달러 강세압력을 확대한 상황"이라면서 "최근 유럽 정치 리스크와 글로벌 정책 차별화 내러티브가 완화된다면 달러 강세 압력도 축소될 공산이 크다"고 평가했다.
김찬희 신한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대외적 강달러 압력이 잔존한 가운데 유럽 정치 불확실성에 따른 위험 회피 심리는 원화 약세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면서 "다만 AI와 연계된 반도체 기업으로의 외국인 투자 자금 유입이 원·달러 환율 상단을 제한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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