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외교’라고 불리는 베트남의 외교 정책은 이미 그 중립성과 유연성으로 정평이 나 있다. ‘베트남의 국부’ 호찌민 주석 시절부터 이어진 이 같은 외교 정책은 철저히 국익과 실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어느 한쪽에 완전히 마음을 주지 않으면서도 어느 쪽에도 마음을 완전히 닫지 않는다. 베트남 전쟁 당시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미국은 물론이거니와 45년 전 중월 전쟁을 치른 상대이자 남중국해 분쟁이 현재 진행형인 중국에 대해서도 흔쾌히 대화의 창구를 열어 놓고 있다.
베트남의 ‘대나무 외교’는 실질적 결실을 맺고 있다. 이번에 방문한 푸틴 대통령은 에너지 협력 등을 당근으로 제시하며 구애에 나섰고, 작년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 등 베트남의 첨단 과학기술 산업 발전을 대거 지원하기로 한 가운데 엔비디아 등 주요 빅테크 기업들이 잇따라 베트남 사업 확대를 발표했다. 또한 미국은 푸틴 대통령이 다녀간 지 불과 며칠 만에 국무부 고위 관리를 베트남으로 급파하며 양국 관계를 "계속 심화하고, 확대하고, 개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냉전 환경 속에 세계 주요 강국들이 베트남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가운데 베트남은 이를 십분 활용해 실속을 챙기고 있다.
지난해 8월 한·미·일 정상이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3국 안보 협력을 준동맹 수준으로 강화하기로 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우리 외교 정책은 윤석열 정부 들어 미·일과의 관계에 올인하다시피 했지만 현재까지 들인 노력 대비 성과를 보면 다소 물음표가 생긴다. 일본은 여전히 우리의 주요 7개국(G7) 가입에 회의적 입장을 보이고 있고, 최근에는 라인야후 사태와 함께 우리 정부의 소극적 대응 논란이 불거졌다. 미국은 올해 대선을 앞두고 한 치 앞을 내다보기가 어렵다.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대미 전략을 대폭적으로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사실 현재 한·미·일 정상 모두 지지율 측면에서 ‘내 코가 석 자’인 상황이기 때문에 이들 간 협력의 유효 기간이 얼마나 될지도 의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베트남 ‘대나무 외교’의 성과를 보고 있자니 우리 외교 정책, 특히 정책 유연성에 대한 아쉬움이 뼈저리게 느껴진다. 물론 베트남은 우리와 유사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여럿 있기 때문에 정책을 직접적으로 대입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같이 세계 정세의 불확실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때일수록 실리를 챙길 수 있는 유연성과 적극성은 필수이다. '잡은 물고기한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일본 유명 평론가인 오야 소이치가 남긴 말이다. 그간 우리는 잡힌 물고기는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자꾸 떠오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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