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휘영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 자신이 보는 풍경, 자신이 느끼는 감정들을 똑바로 응시하고 거리낌 없이 털어놓는다. 그것이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지질하게 느껴질지라도. 그가 내세운 솔직함은 시의적절하다.
그룹 SF9 휘영은 지난 20일 싱글 앨범 '트래블링 피쉬(Traveling Fish)'로 솔로 데뷔에 성공했다. 팝 장르곡으로 청량한 무드의 타이틀곡 '잇 이즈 러브(IT IS L0VE)'와 디지털 싱글로 공개한 '드라이브(Drive5)' 'HBD'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이돌 가수로 10대를 보내고 아티스트로 성장한 20대를 지나오며 '청춘'으로 느끼는 크고 작은 감정들이 기록되었다. 오직, '지금' 휘영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들. 휘영의 순간들이 앨범 속 사진들처럼 하나씩 채워지고 있다.
"운이 좋았어요. 사실 저뿐만 아니라 작사·작곡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회사에서) 저의 도전을 믿어주었으니까 (데뷔 앨범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 믿음에 부응하기 위해서 저도 해보지 않은 장르의 곡들에도 도전해 보았던 거고 이렇게 피지컬 앨범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회사에서 요구한 건 '썸인데, 썸이 맞는지 아닌지 고민되는 혼란스럽고 수줍은 감정'을 표현해 주었으면 했어요. 상대방에게 '야! 사랑해!'라고 말하기보다는, '난 널 사랑하는 것 같은데 넌 어떻게 생각해?'라는 뉘앙스요."
사실 '잇 이즈 러브'는 그동안 휘영이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발표해 왔던 곡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휘영은 "휘영 씨만의 무드와는 다른 새로운 감성의 곡"이라는 말에 대번에 "지질함?"이라며 웃었다.
"솔직히 말하면 회사에서 '지질한 건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이별에 대한 노래를 하나 만들었는데 그게 컨펌이 안 났고요. '완전 다른 걸 가져와라'고 해서 다른 무드를 고민하다 보니까 이렇게 만들어지게 되었어요. 나름 계절과도 잘 어울려서 만족하고 있어요. '이게 맞나?' '너무 나랑 안 어울리는 거 아니야?' 생각하기도 했는데 사운드적인 측면에서는 발전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언제나 한 곳에만 머무를 수는 없잖아요. 도전하는 느낌으로 나아가는 거죠. 딱 '내 것' 같은 노래는 아니지만요. 제가 가진 작고 소중한 덜 지질만 모습을 찾아낸 것 같아요. 그것도 좋은 경험이죠."
휘영은 첫 솔로 앨범인 만큼 많은 부분에 의견을 제시하고 조각들을 채워나갔다. 평소 '물'을 좋아하는 그는 '물'의 이미지로 앨범을 만들어 나가기를 바랐다. 그 안에 담긴 자유로움과 유영하는 이미지를 취하고 싶었다.
"제가 물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일단 물이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가 물을 좋아하는 건 '자유로워지고 싶어서'인 것 같아요. 자유에 대한 갈망. 그 마음을 '물고기'로 표현하게 되었어요.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가는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죠. 음악적으로 보더라도 저는 지금 막 뛰어든 거니까요. 여행을 시작하는 의미로 '트래블링 피쉬'라는 이름을 썼어요."
'잇 이즈 러브'라는 제목에서도 휘영의 취향과 미감이 드러났다. 그는 '잇 이즈 러브(IT IS LOVE)'의 영문 표기를 대문자나 소문자 오(O)가 아닌 숫자 영(0)으로 쓴 건 "보기 예뻐서"라며 미학적인 문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간단하게만 말하면 대문자 '오(O)'가 너무 뚱뚱해 보이더라고요. 전체적인 문장이 주는 미감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런 걸로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거든요. 하하. 고민하다가 '오(O)'를 '영(0)'으로 표기했죠. 숫자 '0'이 저를 상징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사운드클라우드 이름도 '0'이거든요. 그런 정신도 제목에 담겼다고 생각해요."
휘영의 미감과 미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앨범의 비주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번 앨범에서 '소년'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싶었다며 청춘의 풋풋하고 파란 느낌을 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소년 같은 모습을 많이 담고 싶었어요. 사랑 이야기고 이제 시작하는 이야기니까 푸릇푸릇한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머리도 자르고 스타일링 할 때도 '소년미'를 강조했고, 그런 '이미지'를 뮤직비디오에도 녹여낸 거죠."
그의 소년다움, 청춘의 이미지가 강조된 '잇 이즈 러브'의 뮤직비디오에 대한 비하인드 이야기도 나누었다.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의 이미지를 차용했다는 뮤직비디오는 사랑에 빠진 소년, 시작점에 선 휘영의 혼란을 녹여냈다는 부연이다.
"휘영이라는 인물 자체의 정신이라고 할까요? 공간과 사물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과 달리 보이는 거예요. 조금 전까지 좋았다가, 금방 슬퍼지기도 하고, 미친 듯이 뛰어보기도 하고, '이게 맞나' 고민하다가 헤벌쭉 웃기도 하고요. 꼭 무슨 '병'이라도 걸린 것처럼요. 사랑은 '병'이잖아요. 그런 의미에서도 꼭 맞는다고 생각해서 (뮤직비디오)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다만 제가 강조한 건 '노래가 BGM처럼 느껴지지 않기를 바란다'는 거였어요. 감독님께서 적절히 잘 만들어주신 것 같아요."
휘영은 이번 앨범을 통해 성장한 부분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하다 보니 더욱 욕심이 생긴다"라는 그는 의심을 지우고 스스로를 직면하고 싶다고 말했다.
"제가 의심이 많은 편이에요. 잘 믿지 못하고요. 그런 부분들을 지우고 직면하고 싶어요. 싹 지우려면 스스로 인정해야 할 거 같아요. 욕심을 조금 더 내서 움직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제가 최근 발견해 낸 부분이기도 해요. '아, 나 욕심이 없지 않구나' 이 정도는 안 될 것 같고 만족스럽지 않은 점들도 있더라고요. 음악적으로 꽉 막힌 데가 있었는데 발전하고 싶으니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게 되고 타협하는 부분들도 생기는 것 같아요. 그게 성장이고 나아가고 싶은 욕심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휘영의 음악적 성장과 배경에 관해서도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래퍼 큐엠에게 음악을 배우며 취향과 적성을 찾았다는 그는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부연했다.
"제가 힙합이 좋았던 건 어떤 '저항정신'에 대한 갈망이 있었거든요. 힙합만 듣고 붐뱁 같은 장르에만 빠져있었어요. 그러다가 밴드 너바나를 알게 되었고 커트 코베인이 울부짖으면서 노래하는 걸 듣고 큰 충격에 빠졌어요. '아, 저항정신이라는 건 힙합에만 있는 게 아니구나.' 신세계였어요. 새로운 장르에 발을 들이게 된 거예요. 그런데 24시간 내내 저항만 하니까 정신이 피폐해지더라고요. 하하하. 알고리즘을 타고 오아시스를 알게 되었는데 또 다른 충격을 받게 되었죠. 저의 사고, 표현 방식이 와장창 깨졌어요. '왜 랩만이 전부라고 생각했을까. 세상은 참 넓구나' 깨닫게 됐죠. 이제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많은 노래를 들어요."
힙합을 기반으로 하드록과 펑크록과 브리티쉬록까지 저변을 확장하며 장르를 넓혀갔고 자기의 취향과 적성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많은 음악을 듣고 만들며 자신만의 철학들도 다져가고 있었다.
"작업할 때 가장 경계하는 건 '포장'하는 일이에요. 꾸미려고 하는 순간 제 노래를 제가 듣기 싫어지더라고요. 굳이 어려운 말을 쓰고 비유하고 있어 보이는 척하면 나중에 들을 때 '이게 무슨 말이야' 싶더라고요. 그러지 말아야겠다 싶었어요. 저는 보여지는 직업이니까 어느 정도 '선'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음악만큼은 저대로, 솔직하게 표현하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사람들이 절 미워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게 음악의 힘 같고요."
휘영은 "어디서든 '잇 이즈 러브'가 흘러나왔으면 좋겠다"며 그게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의 방증'이라고 덧붙였다.
"앨범을 많이 파는 건 목표가 아니에요. 그동안 사운드클라운드로 곡들을 내놓았던 것들도 팬들을 무리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어요. 팬들은 항상 저를 '돈'을 내야만 만날 수 있잖아요. CD도, 행사도, 공연도요. 그래서 앨범을 많이 파는걸 '성공'의 지표로 삼지는 않아요. 제가 생각했을 때 '이 앨범이 잘 됐다' 싶고, 그걸 보여주고 싶은 건 저를 모르는 사람들이 이 앨범을 들어봤으면 하는 거예요."
휘영과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트래블링 피쉬'로 얻고 싶은 성과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짧은 고민 끝에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답했다.
"남들이 보기에 헛된 도전처럼 보이더라도 누군가 나와 닮은 상황, 도전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요. 사람들이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많이 고민하고, 방황해 본 이만이 내놓을 수 있는 말처럼 느껴졌다. 휘영은 또 잠시간 말을 고른 뒤 "무모한 도전이 제일 재밌는 법 아니냐"며 씩 웃었다.
"나중에 기자님들을 다시 만날 때면 '저 잘 해냈죠?' '잘 됐죠?'하고 거드름 피울 수 있을 정도로 성과도 냈으면 좋겠어요. 약간 거만해지고 싶달까. 하하. 솔직히 할 때는 '내가 최고야' 당당하게 구는데요. 속으로는 어지럽거든요. '트래블링 피쉬'가 좋은 결과를 내고 많은 분께도 희망이 되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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