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인한 기상 이변이 점점 빈번해지면서 전 세계가 폭염과 폭우, 산불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때 이른 불볕더위와 열대야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것은 물론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지구온난화 주범은 화석연료를 쓸 때 뿜어 나오는 온실가스가 꼽힌다. 이 때문에 데이터센터를 보는 시선은 마냥 곱지만은 않다.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 처리해야 하는 인공지능(AI) 산업이 활성화하려면 데이터센터도 함께 늘어야 하는데 '전기 먹는 하마'라고 불릴 정도로 전력 소모량이 많아서다. 거센 비판에도 데이터센터 늘리기에 나선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재생에너지 확보와 원전 활용 등으로 이런 과제를 해소하고 있다.
'파리협정 무색' 늘어나는 세계 탄소 배출량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내놓은 '2023년 이산화탄소(CO₂) 배출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전 세계 에너지 관련 CO₂ 배출량은 사상 최고치인 374억톤(t)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4억1000만t(1.1%) 증가한 수치다. 수력발전을 대체하기 위한 화석연료 사용이 이산화탄소 증가분의 40%를 차지했다.
IEA는 "'파리기후협약'이 정한 기후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요구되는 이산화탄소 배출의 급격한 감소는커녕 배출량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고 지적했다. 파리기후협정은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세계 195개국이 지구 평균기온을 산업화 이전보다 2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장기적으로 1.도로 제한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런 장기 목표에 맞춰 모든 국가가 2020년부터 기후행동에 참여하고, 5년 주기로 이행 점검을 통해 점차 노력을 강화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생산 활동 활성화도 지난해 CO₂ 증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한창이던 2022년에는 에너지 집약적인 산업 생산이 감소해 CO₂ 배출이 크게 줄었으나 2023년에는 이런 효과가 약화했다고 IEA는 분석했다.
올해 상황도 여의찮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달 5일(현지시간) 발표한 '1~10년 기후 업데이트 보고서'에서 올해부터 2028년까지 5년간 지구 연평균 표면 기온이 산업화 이전 시기인 1850∼1900년 기준선보다 1.1∼1.9도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를 근거로 같은 기간에 연평균 기온 상승 폭이 1.5도를 넘어서는 해가 적어도 한 번 나올 확률을 80%로 내다봤다.
2015년엔 0에 가까웠고 2017∼2021년엔 20%에 불과했던 확률이 2023∼2027년 66%로 상승한 데 이어 80%까지 치솟은 것이다. 1.5도는 기후 위기의 '티핑 포인트(임계점)'으로 불린다. 지구 연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에 비해 1.5도 오르면 기상 이변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코 배럿 WMO 사무차장은 이 보고서를 두고 "우리가 파리기후협정에서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서 크게 벗어나 있다는 암울한 현실에 놓여 있다"고 짚었다. 그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더 노력을 서둘러 하지 않는다면 수조 달러의 경제적 비용, 더 극심한 기상 현상에 따른 수백만 명의 인명 피해, 환경과 생물다양성에 대한 광범위한 피해 등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내 상황도 다르지 않다. 최근 기상청이 내놓은 현재 수준과 비슷하게 온실가스 배출이 이어지는 '고탄소 시나리오'에 따르면 2081~2100년 서울의 평균 폭염일수는 109.8일까지 증가한다. 폭염일수는 일일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인 날수를 뜻한다. 찌는 듯한 불볕더위가 3개월 넘게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름일수와 열대야일수, 강수량 역시 함께 늘어난다. 고탄소 시나리오상 2081~2100년 서울 지역 여름일수는 194.3일로 평균 127.7일인 현재(2000~2019년)보다 66.6일 많다. 1년 중 절반 이상이 무더운 여름인 셈이다. 같은 기간 열대야 일수는 96.1일로 11.3일인 현재보다 8.5배가량 증가한다. 이 시간 서울의 연평균 강수량은 1521.9㎜로 현재 1269.6㎜보다 252.3㎜ 더 쏟아진다. 하루 강수량이 80㎜ 이상인 날인 호우일수도 현재 2.7일에서 3.7일로 하루 늘어난다.
"3일에 1개씩" 비판에도 데이터센터 건립 붐
최근 급증하는 데이터센터도 탄소중립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24시간 중단 없이 운영되고, 데이터센터에 설치한 장비에서 나오는 발열 관리 등으로 전력 사용량이 많아서다. 데이터센터 하나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전력량은 연간 기준으로 평균 25기가와트시(GWh)다. 4인 가구 기준으로 6000가구가 1년에 쓰는 전력량과 맞먹는다. '전기 먹는 하마'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여러 효율 향상에도 데이터센터에서 처리하는 작업이 급격히 늘면서 최근 몇 년간 에너지 사용량도 함께 뛰었다. IEA 자료를 보면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량은 매년 20~40%씩 증가하고 있다. 여러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빅테크 기업인 구글·마이크로소프트(MS)·아마존·메타(옛 페이스북)가 사용한 전력량은 2017년에서 2021년 사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IEA는 올 초 내놓은 보고서에서 2026년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이 저전력 시나리오 기준으론 620테라와트시(Twh), 고전력 시나리오로는 1050테라와트시(Twh)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2022년 460TWh와 비교해 최대 두 배 넘게 증가하는 것이다. 특히 이 같은 전력량 급증은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AI 영향이 크다고 봤다. 보고서는 오픈AI '챗GPT' 사용만으로도 한 해 동안 10TWh에 이르는 추가 전력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실제 생성형 AI 대중화는 전력 사용량을 가파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미국 전력연구소(EPRI)가 지난 5월 발표한 '인텔리전스 강화: AI와 데이터센터 에너지 소비 분석' 보고서를 보면 구글 1회 검색에 필요한 전력은 0.3와트시(Wh)지만 챗GPT는 2.9Wh를 소모했다. 구글 검색보다 10배 많은 전력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이미지·비디오·동영상을 생성하는 멀티모달 AI인 '블룸'은 한 번에 4Wh를 사용했고, 생성 AI 기능을 더한 구글 이용 땐 8.9Wh까지 치솟았다.
EPRI는 2021년 구글·MS·아마존·메타 등 미국 빅테크 기업이 사용한 전력량은 2017년과 비교해 두 배 이상 증가했는데 생성 AI가 이런 현상을 더 부추길 것으로 내다봤다. EPRI 보고서에서 "데이터센터는 2030년까지 매년 미국 전력 생산량 중 4.6~9.1%를 소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런데도 데이터센터 수는 매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AI 개발 붐이 불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빌 바스 아마존웹서비스(AWS) 부사장은 지난 3월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린 에너지 콘퍼런스 세라위크에서 "전 세계적으로 사흘에 하나씩 새로운 데이터센터가 생기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전 세계에 세워진 데이터센터는 8000개가량이다.
국내에서도 데이터센터 건립 붐이 불면서 전력 소비량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에 있는 데이터센터는 총 150개로 용량은 1986메가와트(㎿) 수준이다. 1000㎿급 원전 2기가 생산하는 전력량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29년까지 신규 데이터센터 수요는 732개에 달할 전망이다. 여기에 필요한 전력 용량은 4만9397㎿로 현행 수준을 크게 웃돈다. 예정대로 지어진다면 1만㎿급 원전 53기를 추가로 건설해야 한다.
유재국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AI 데이터센터는 기존 데이터센터의 6배 전력을 소비하기에 대규모 전력 설비를 확충해야 건설·운영이 가능하다"며 "AI 혁명에 부응하려면 선제적 전력 공급과 적절한 전원 구성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픈AI·MS·구글, 재생·친환경에너지 확보에 총력
글로벌 빅테크는 재생에너지·원전 확보 등으로 자사 데이터센터 전력 수급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곱지 않은 시선을 누그러뜨리고 있다.
오픈AI를 이끄는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4월 벤처캐피털 안데르센 호로위츠와 함께 태양광 스타트업 엑소와트에 2000만 달러(약 270억원)를 투자했다. 대규모 데이터센터 운영에 필요한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엑소와트는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이터센터의 에너지 수요를 해결하고자 설립된 스타트업이다. 태양광 패널 대신 태양광 렌즈를 이용해 에너지를 모으는 대형 모듈을 개발했다. 이 렌즈는 태양 에너지를 열로 변환해 하루 24시간 에너지를 저장한다.
올트먼이 에너지 기업에 투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1년엔 핵융합 발전 스타트업인 헬리온에너지에 3억7500만 달러(약 5100억원)를 투자했다. 헬리온은 지난해 5월엔 MS와 전기를 공급 계약을 맺기도 했다. 핵융합 발전은 태양과 항성의 에너지 생산 원리인 핵융합을 이용해 전력을 만든다. 전력을 거의 무한정 얻을 수 있고, 핵융합 과정에서 온실가스나 방사성 폐기물이 나오지 않아 청정에너지로 불린다.
구글은 2022년 미국 핵융합 발전 스타트업인 TAE테크놀로지스에 수억 달러를 투자했다. 지난해 11월에는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을 위해 지열발전 스타트업인 페르보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지열 에너지는 지구 내부에서 발생하는 열을 이용한다. 날씨 영향을 받지 않고 사계절 내내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 풍력·태양 에너지 대안으로 불린다.
MS는 지난 5월 브룩필드애셋매니지먼트의 재생에너지 개발 프로젝트에 100억 달러(약 13조원)를 투자했다. 이 투자 계약에 따라 브룩필드는 2025년부터 2030년까지 미국과 유럽에서 생산되는 10.5GW 규모 재생에너지를 MS 데이터센터에 공급한다. 앞서 지난해 6월엔 미국 최대 원전 기업인 콘스텔레이션에너지와 전력 공급 계약을 맺었다. 미국 버지니아주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력 확보 차원에서다.
국내 업체들도 친환경 전력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카카오가 이달 중순 문을 연 '카카오 데이터센터 안산'은 건물 외벽과 옥상 등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전력을 확보한다. 서버를 냉각하고 발생한 폐열을 난방에 재사용하는 방식도 쓰고 있다.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세종'은 자체 태양광 발전시설과 지열 에너지 등을 활용 중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