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애플에 이어 마이크로소프트(MS)를 상대로 반독점 규제의 철퇴를 휘둘렀다. EU 당국은 이들이 자사 앱스토어 선호와 특정 프로그램을 끼워파는 등의 관행이 시장 경쟁을 저해한다는 잠정 결과를 내놨다. 최종적으로 규칙 위반이 확정되면 막대한 과징금이 나오는 가운데 추후 조사 물망에 오른 구글, 메타 등 다른 미국 빅테크 기업들도 긴장의 끈을 놓기 어려운 상태다.
25일(현지시간) EU 집행위원회는 MS의 '화상회의 앱' 끼워팔기 관행이 독점금지법을 위반했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집행위는 MS가 2019년 4월부터 화상회의 앱 '팀즈'를 자사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앱과 묶어 팔아 경쟁을 제한했다고 판단했다. 그동안 해당 소프트웨어를 구매하려면 팀즈 사용권을 제외하고 구매하는 선택지가 없어 기업 고객들은 어쩔 수 없이 팀즈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MS는 지난 4월 집행위 조사에 맞춰 팀즈를 전 세계적으로 분리 판매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집행위는 이것만으론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집행위는 "경쟁 제한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MS의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번 조사는 메시징 플랫폼 슬랙(Slack)이 2020년 7월 경쟁 앱이었던 팀즈가 MS 오피스 프로그램과 부당하게 결합 판매되고 있다고 EU에 반독점 혐의로 신고한 데 따른 것이다. 3년 전 슬랙을 인수한 세일즈포스는 이날 사장 명의 성명으로 "자유롭고 공정한 선택 회복할 수 있도록" 구속력 있는 구제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에 EU는 전날 애플에 이어 MS까지 이틀 연속으로 미국 빅테크 기업들을 상대로 반독점 판결을 내렸다. 전날 애플은 앱스토어의 '폐쇄적 운영' 문제로 EU의 새 기술기업 규제법인 '디지털시장법'(DMA)를 위반했다는 잠정 결과를 통보받았다. EU 당국은 이들 기업에 예비조사 결과 시정조치가 부족하다는 의견을 낸 것이다. 추후 업체 측의 반론과 시정 방안을 감안해 최종 제재 부과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규정 위반이 인정되면 전 세계 연간 매출의 최대 10%가량의 벌금을 선고받을 수 있다. 애플과 MS는 지난해 매출이 각각 3830억 달러(약 532조원), 2120억 달러(약 295조원)에 달해 판결이 확정될 경우에는 수십조원에 달하는 벌금을 내야 할 수 있다. 다만 실제로 이렇게 큰 과징금이 집행되는 경우는 없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EU 당국은 두 기업 말고도 페이스북 모회사인 메타 및 구글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U 당국은 우선 두 기업이 기존 독점금지법상 광고 분야에서 경쟁을 저해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추가적으로 새 법안인 DMA에 위배되는 다른 사안도 살펴보고 있다. 구글의 경우 앱 스토어 검색 시 자사 서비스를 상단에 노출시키는 점 등이 도마에 올랐다. 메타의 경우 구독료 지급하거나 데이터 이용제공 동의를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점 등도 당국의 조사대상이 됐다.
물론 이들 기업이 실제로 과징금 선고를 받을 지 여부는 확실치 않다. 기업 측이 EU 당국의 조사를 늦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빅테크는 규제가 기술 산업의 혁신을 저해한다는 논리로 법정 다툼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고 FT는 이날 전했다. 실제로 애플은 지난 21일 유럽 내 아이폰에 새 인공지능(AI) 시스템 출시를 잠정적으로 미루기로 했다. DMA가 자사 제품과 서비스의 보안을 저하할 수 있다는 이유를 댔는데, 사실상 EU 당국에 압력을 행사한 것이라는 평이 나온다.
또한 이들 기업은 문제가 된 일부 관행을 바꾸는 식으로 제재를 우회할 가능성도 있다. 예컨대 애플은 자체 결제시스템인 '애플 페이' 외에 경쟁업체 유사 결제서비스를 허용하지 않다가, EU 압박에 다른 근거리 무선통신(NFC) 비접촉 결제 서비스앱을 설치해 활용할 수 있게 했다. 게임 개발사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인수하는 MS는 EU 조사 압력에 로열티를 덜 받는다는 식의 타협점을 제시해 당국의 승인을 받았다.
EU가 이렇게까지 빅테크 규제에 진심인 이유는 유럽 내 스타트업 등 소규모 업체에 대한 보호 때문이다. 수년간 스타트업 관계자와 활동가들이 유럽 내 빅테크 규제 신설 속도가 늦다고 촉구한 끝에 2022년 역내 소규모 업체들의 공정경쟁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 DMA를 제정하게 됐다. DMA는 빅테크 기업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막고자 이들을 '게이트 키퍼'로 지정해 규제하는 법안이다. DMA는 이른바 '사전' 규제를 통해 빅테크에 플랫폼 사업 내에서 공정하게 운영하도록 요구사항을 제시하고 미이행 시 벌금을 부과해 강제성을 갖췄다.
FT는 현지 법률 전문가를 인용해 "이번 조사를 통해 EU가 기술 스타트업을 위한 경쟁 시장을 확보하고자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상관없다는 식"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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