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사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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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재용 금융부 부장
입력 2024-07-0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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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저씨인터넷 사진
영화 아저씨[인터넷 사진]

돌이켜 보면 '강남불패'는 늘 옳았다. 30평(1평=3.3㎡) 크기의 강남아파트가 5억원, 10억원을 넘어설 때도 '내재 가치 대비 과대평가 됐다'는 사회적 논란이 늘 따라다녔으나, 그 콘크리트 박스에는 시간이 지나면 항상 더 높은 가격표가 붙곤 했다.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기 전 자칭 부동산 전문가라는 한 지인이 한강에 인접한 강남 아파트를 가리키며 '30억원, 심지어 50억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을 때만 해도, 저 콘크리트 박스들이 그 가격에 실제 팔릴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이 정도면 이제 강남불패는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깨지지 않는 진리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2030들이 자주 가는 인터넷 사이트를 가보니, 강남불패를 넘어 '강남신화'가 자리 잡아 가고 있었다. 영끌을 해 강남 아파트를 산 2030들은 강남 아파트 '100억원 시대'를 호기롭게 전망하고 있었다. 강남에 인접한 수도권 지역에 아파트를 산 젊은 층들도, 강남 아파트를 부러워하며 한편으로는 아직 등기를 치지(아파트 구매) 못한 사람들을 보며 위안을 얻고 있었다.

요즘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 강남아파트 가격이 실제 더 오르지 말란 법도 없어 보인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재화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 원칙만 살펴봐도 그렇다. 혹자는 인구 감소로 아파트 매매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아직은 현실화 되지 않은 먼 미래 얘기다. 현재 시장에는 고연봉으로 무장한 2030들이 영끌을 해 강남 아파트를 사려고 줄지어 있다. 여기서 콘크리트 박스의 내재 가치는 중요하지 않다. 향후 100억원을 갈 것이라는 신화를 믿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는 한 아파트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과거 유럽에서 튤립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 역시 같은 이치다.

정치권 역시 다수 국민의 거의 전 재산인 아파트 가격의 하락을 바라지 않는 눈치다. 강남지역에서 고정적으로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여당뿐 아니라, 늘 아파트 가격 거품론을 얘기하던 야당 내부에서도 이제 외연확대를 위해 고가 아파트 관련 세금을 깎아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 정부는 아파트 살 돈이 부족한 2030들을 위해 각종 '특례' 대출 상품을 내놓으며 '빚내서 집 사기'를 은근히 유도하고 있다. 강남불패 신념으로 무장한 탄탄한 수요에 정책적 뒷받침까지 겹친다면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고리타분한 얘기겠지만 강남불패 아니 강남신화가 자리 잡아 가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가 1970~80년대처럼 두 자릿수 고속성장을 이어간다면 아파트 값 고공행진은 문제 될 게 없을 것이다. 하지만 0%대 수렴하는 경제성장률에 전 세계 최소 수준이라는 출생률(0.6명)을 가지고 있는 이 나라에서 아파트 값만 치고 올라가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대한민국호'의 성장 엔진은 꺼져 가고, 이 엔진에 다시 불을 붙일 사람 수도 심각하게 줄어드는데...아니 조금 더 심하게 표현하면 이대로 가다가는 이 배는 표류하거나 침몰할 수밖에 없는데, 배에 올라탄 사람들은 갑판 위에서 '더 좋은 땅'과 '안 좋은 땅'을 구분하고, 더 좋은 땅 소위 '상급지' 아파트에 모든 자산을 쏟아붓고 있다. 정치권 역시 배 침몰을 막기 위해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기보다는 눈앞에 표를 따내기 위한 행동만 하고 있다.  

내가 탄 배가 침몰해 가는데 갑판 위 좋은 지역에 아파트 값이 100억원을 가면, 또 우리 쪽 정당이 정권을 한번 더 잡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살아 생전에 배가 침몰할 일은 없으니 나름 현명한 투자, 올바른 정치 행위라고 믿고 있는 것일까. 

우연히 TV 영화채널에서 오래전 개봉한 영화 '아저씨'를 보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오버랩됐다. 주연배우 원빈이 악당들을 향해 "난 오늘만 산다"고 일갈할 때다. 이 말은 '난 내일을 생각하지 않으니, 무서울 게 없다'는 얘기다. 실제 무서울 게 없는 원빈은 악당들을 멋지게(?) 처리했다.

미래 닥쳐올 국가적 위기를 생각지 않고 아파트 100억원 시대를 기다리는 현재의 대한민국 역시 오늘만 사는 원빈과 닮았다. 또 현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죽기 전 그 끔찍한 위기가 닥치진 않을 테니, 현재의 경제활동과 정치활동 모두 손해 보지 않는 똑똑한(?) 행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암울한 미래를 물려받은 후손들은 지금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어떻게 기억할까. 적어도 원빈처럼 '멋지다'는 아닐 것이다. 대신 한 없는 원망 속 '무서울 게 없는 사람'들 이라는 평가는 쉽게 내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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