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의 과학기술 전략을 총괄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중앙과학기술위원회 사령탑으로 딩쉐샹(丁薛祥·61) 부총리를 임명했다. 딩쉐샹은 시자쥔(習家軍·시진핑 측근 그룹)의 핵심 인물이다. 미·중 기술 전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믿을 수 있는 최측근을 중앙과학기술위원회 수장 자리에 앉혔다는 분석이다. 다만 기술 분야까지 시 주석이 통제하게 되면 오히려 기술 혁신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25일 중국 과학기술대회, 양원(중국과학원·중국공정원)원사대회 제2차 회의가 이날 오전 베이징에서 열렸으며 딩쉐샹 부총리 겸 중앙과학기술위원회 주임이 참석해 연설했다고 전했다.
중앙과학기술위원회의 수장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지난해 3월 출범한 중앙과기위는 같은 해 7월 1차 회의도 열었으나 수장 인선에 대한 공식적인 언급은 없었다.
일반적으로 공산당 위원회 회의 이후에 관영 매체를 통해 정책 방향 등을 공개하는 것과 달리 첫 회의 개최 사실 자체도 뒤늦게 알려지면서 시 주석이 조직을 비밀리에 운영하려고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중 기술 경쟁이 격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간·군 기술을 다루는 기구가 서방의 주목을 받아 견제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주임 자리에 딩 부총리를 앉힌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안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시 주석이 신임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딩쉐샹은 부총리 임명 전까지 10년간 시 주석의 비서실장 격인 국가주석 판공실 주임을 맡았던 인물로 시 주석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일각에서는 리창 총리 이상의 신임을 받는 최대 실세라고 할 정도다. 2007년 시 주석의 상하이 당서기 재임 시절, 그의 비서실장을 지내며 신임을 얻은 딩쉐샹은 2013년 시진핑이 국가주석에 등극하자 중앙 판공청 부주임 겸 국가판공실 주임으로 중앙 무대에 진출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시 주석이 기술분야 사령탑에 최측근을 앉힌 것에 대해 첨단 반도체와 인공지능(AI)을 둘러싸고 미국과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만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기술 개발을 모색해야 하는 조직에 정치적인 색깔이 짙어지면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반체제 중국어 신문 다지위안의 리린이 평론가는 "딩쉐샹은 수년 동안 시진핑 비서직에 있었고, 그가 정치국 상임위원회 위원, 상무 부총리가 될수 있었던 것은 그의 정치적 충성심 덕분이었다. 그는 정치를 모른다"면서 "그는 시진핑을 안심시킬 수는 있겠지만 이는 기술 분야까지 정치적으로 통제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정치적 안보의 강조는 기술 혁신에 나쁘다"고 덧붙였다.
더욱이 중국 정부의 과학 기술 정책을 총괄하는 자리를 맡기에는 딩 부총리의 자질 자체가 의심된다는 것이다. 딩 부총리는 둥베이중장비대에서 기계공학과를 졸업했으나 관련 석·박사 학위는 없고, 푸단대에서 행정관리학 석사를 받았다. 천스민 국립대만대학교 정치학과 부교수는 "기술을 누가 책임질지는 (능력보다는) 시진핑으로부터 누가 더 신임을 받느냐에 달려있다"며 "딩쉐샹이 비록 공대 학위가 있긴 하지만 과학기술 분야 박사도 아니고 이렇다 할 관련 경력도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인선이 시 주석의 권력 강화 차원이라는 시각도 있다. 애초 중국 정부는 중앙과학기술위원회 출범을 알리며 “당과 국가기구를 개혁해 과학기술사업에 대한 당 중앙의 집중통일영도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집중통일영도'는 시 주석을 정점으로 공산당 권력을 강화하는 것을 뜻한다.
천 부교수는 "당국이 금융·기술 등 조직의 중앙집중화를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권력이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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