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 칼럼] 채상병 특검법 핑퐁게임,…여당은 왜 수정안 제시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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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시사평론가
입력 2024-07-0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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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채상병 특검법이 지난 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1대 국회 말에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으로 폐기된 지 37일 만에 국회를 다시 통과한 것이다. 이날 표결에서 국민의힘 의원들 대부분은 우원식 국회의장의 필리버스터 강제 종료에 항의하며 불참했다. 다만 표결에 참석한 안철수 의원과 김재섭 의원이 각각 찬성표와 반대표를 던졌다. 이날 재석 의원이 190명이었으니 189명의 야당 의원들은 모두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22대 국회 개원일인 지난 5월 30일에 채상병 특검법을 당론 1호 법안으로 재발의하고 초고속으로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거쳐 다시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번 특검법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이 조만간 거부권을 행사할 것임은 기정사실이다. 특히 이번 법안은 채상병 순직 사건은 물론 파생된 관련 사안을 모두 특검이 수사하도록 하고, 야권의 특검 추천 권한을 넓혀 더욱 수위를 높였다는 반응이 여권에서 나온다.

이번 채상병 특검법의 내용을 보면 특검은 민주당과 비교섭단체로부터 1명씩 총 2명을 추천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되어있다. 대통령이 3일 이내에 임명하지 않으면 연장자가 자동으로 임명된다. 야당만이 특검을 추천하고 사실상 임명까지 하는 셈이다. 특검의 규모도 파견검사 20명, 파견공무원 40명 등 최대 104명인 초대형 특검이다. 수사 기간은 70일이지만 준비 기간과 2회 연장까지 포함하면 최대 150일에 이른다.

대통령실은 특검 추천권을 야당에 부여한 채상병 특검법이 대통령의 공무원 임명권을 침해하며 삼권분립에 어긋나는 위헌적 법안이라는 입장이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위헌성 때문에 재의결이 부결됐으며 헌법에 맞게 수정하는 것이 상식이고 순리일 텐데 오히려 위헌에 위헌을 더한, 반헌법적 특검법으로 되돌아왔다"며 "헌정사에 부끄러운 헌법 유린을 개탄한다"고 주장한다.

국민의힘도 채상병 특검법을 '정치폭력'으로 규정 짓고 야당의 단독 처리를 비난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입법 횡포를 넘어 헌법질서 근간을 파괴하는 위헌적 정치폭력에 대한민국 헌정질서가 파괴되고 있다"며 "국민들이 반드시 심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이번에도 윤 대통령에게 채상병 특검법 거부권을 건의할 방침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조만간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문제는 거부권 행사 이후의 정국이다. 이미 야당의 단독 처리에 반발하여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국회를 파탄시켰다”면서 윤 대통령에게 22대 국회 개원식 불참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지난 5일로 예정됐던 국회 개원식은 결국 무기한 연기되는 국회 파행이 초래됐다. 앞으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22대 국회 개원 정국은 더욱 얼어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거부권 행사로 국회로 돌아온 특검법이 재의결 되려면 재적 의원 3분의 2인 200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민주당에다가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 진보당 등 채상병 특검법에 찬성하는 야당 표를 전부 모아도 192표에 그친다. 여당에서 최소 8표가 이탈해야 특검법 재의결이 가능한데, 지난 표결에서 여당 찬성표가 안철수 의원의 1표뿐임을 감안하면 이번에도 채상병 특검법은 재의결에서 다시 부결되어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특검법이 다시 폐기되더라도 22대 국회 내내 계속 발의해서 여당표의 분열을 노린다는 방침을 거론한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여권의 요구를 일부 수용한 수정안을 발의하면 국민의힘이 반대하거나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명분이 없어질 것이라는 얘기도 거론되고 있다.

무리한 명령에 따라 실종자 수색을 하던 군 장병이 순직을 했는데도, 수사에 대한 외압 의혹이 불거졌는데도, 그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특검법이 이렇게 여야 간 핑퐁게임의 대상이 되고 있음은 정상적인 광경이 아니다. 당연히 여야가 합리적인 수정법안을 마련해서 합의된 특검을 통해 진상을 규명해야 할 일이다.

물론 민주당의 특검법 내용에는 문제가 있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할 특검을 오직 야당이 추천하고 사실상 임명하도록 만든 특검법에 여권이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여권에서는 채상병 특검법이 결국 ‘윤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라고 받아들이며 거부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는 특검법안을 내놨어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 적극적인 수정안 제시도 하지 않고 무조건 반대와 거부만 하고 있는 여권의 모습은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특검법이 야당의 입장만 반영된 것이라면, 중립적인 특검을 위한 수정법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하여 여야 합의 처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책임이 여권에게 있다. 다른 일도 아니고 군 장병이 작전 중에 의문의 죽음을 맞은 사건이다. 그 사건에 대한 수사 과정에 윗선의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평소 국방과 안보를 그렇게도 외치던 보수정치세력이라면 진상규명에 소극적인 인상을 심어주는 태도를 취할 일이 애당초 아니었다. 국민의 대다수가 찬성하는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 여권이 막무가내로 반대만 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뭔가 정말 덮으려는 일이 있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만 키울 뿐이다.

이미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에 출마한 한동훈 후보는 '대법원장 추천 특검'이라는 제3의 대안을 제시했고, 개혁신당 천하람 원내대표는 '대한변호사협회(변협) 추천 특검'을 중재안으로 내놓았다. 법안에서 특검 추천과 임명에 대한 여야 간 절충이 이루어진다면 채상병 특검법을 둘러싼 여야 대립은 큰 고비를 넘을 수 있다. 이런 수정안은 국민의힘이 먼저 내놓을 때 여권이 채상병 특검을 무조건 피하려 한다는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런 마당에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채상병 특검법에 찬성표를 던진 안철수 의원을 겨냥해 당 차원의 제명 조치나 자진 탈당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고 한다. 야당이 통과시킨 특검법안이 일방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찬성표를 던졌다고 그런 얘기가 나오는 국민의힘의 모습은 민심과 유리된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여야는 채상병 특검법을 놓고 더 이상 대립하며 정쟁거리로 삼는 모습을 반복할 때가 아니다. 이제는 합리적인 수정안을 갖고 협상과 합의를 통해 채상병 죽음의 진상, 그리고 외압 여부의 실체를 밝히는 길을 가야 한다. 이대로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일은 분명 아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기정사실이라면 그 뒤에는 국민의힘이 먼저 수정법안을 제시할 일이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 사이버대학교 NGO학과 외래교수 ▷전 한림대 사회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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