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변화가 시작된다."
지난주 영국 총선에서 중도 좌파 성향인 노동당이 14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루어 낸 가운데 신임 총리에 오른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가 선거 승리 후 한 말이다. 전체 의석 650석 중 약 3분의 2인 412석을 차지하는 대승을 이끈 그는 "우리나라(영국)는 변화를 위해 과감하게 투표했다"며 "우리 임무는 시급하다. 우리는 오늘 그 일을 시작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패장' 리시 수낵 총리는 "국민들은 영국 정부가 변화해야 한다는 분명한 신호를 보냈다"며 패배 소감을 전했다.
'세계 선거의 해' 2024년이 어느덧 반환점을 돌았다. 올해는 전 세계 80여 개국에서 선거가 진행되는 가운데 세계 인구 절반가량인 약 40억명이 투표권을 행사한다. 현재까지 치러진 각국 선거 결과를 보면 단연 두드러지는 추세는 '변화'다. 대부분 집권 세력이 패배하거나 혹은 지지율이 악화된 상황에서 변화를 갈망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국가별로 우파, 좌파, 중도 등 정치 성향 차이는 있을지언정 현재 대부분이 바라고 있는 것은 변화다. 현재까지 선거에서 집권 세력이 대부분 고전을 면치 못한 데서도 이는 잘 드러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5선을 확정 지은 것을 비롯해 집권 세력이 정권을 재창출한 곳도 있지만 상당수는 집권당에 대한 지지율 하락이 뚜렷하다. '세계 인구 1위' 인도에서는 힌도 민족주의로 유명한 강경 우파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3연임을 이루었지만 의석수는 이전 총선에 비해 크게 감소한 가운데 연정을 통해 가까스로 정권을 연장할 수 있게 됐다.
미국 매체 NPR에 따르면 스티븐 레비츠키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는 "전체적으로 사람들은 그들의 정부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며 "일부 예외가 있지만 집권 세력이라는 점이 점차 불이익이 되어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올해 11월 있을 '빅 이벤트' 미국 대선에서도 정권 교체 가능성이 커졌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TV토론에서 상대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상대로 참패를 당한 가운데 연일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트럼프 2기가 점차 현실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유권자들의 변화 요구가 커진 것에는 각국마다 여러 요인들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경제 문제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2020년대 들어서자마자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에 이어 뒤이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미·중 패권 경쟁 등 여파에 물가 상승, 고금리 등으로 민생 경제가 악화한 것이 유권자들의 정권 변화 필요성을 자극한 모습이다.
물론 이러한 범지구적 요인들은 각국 정부의 역량만으로는 대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상황이 어떻게든 변해야 한다는 유권자들의 절박한 심정이 투표를 통해 정권 교체라는 형태로 표출되었다는 관측이다.
마이클 브루터 런던정치경제대학교 선거심리연구소 소장은 "절망감은 선거 심리학에서 매우 강력한 감정"이라며 "변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가치로 자리잡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올해는 세계 선거의 해를 맞아 민주주의의 효용성을 재차 검증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선거 결과가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민주주의의 효용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새뮤얼 울리 텍사스대학교 오스틴 미디어센터 교수는 "민주주의는 최근 수년간 전 세계적으로 약화되면서 그 제도는 여전히 불안한 위치에 있다"며 올해 미국 대선 등 주요 선거는 "향후 전 세계 통치 체제에 대한 전조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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