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양제지, 락앤락, 신성통상, 쌍용C&E, 제이시스메디칼, 커넥트웨이브, 티엘아이. 상장폐지를 위한 공개매수를 진행 중이거나, 상장폐지를 마무리한 회사들이다. 올 들어 공개매수로 소액주주 지분을 줄인 후 상장폐지를 하는 회사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거세다. 법적 조치에 나섰거나 법무법인 선임 등 준비를 하고 있는 곳이 많다. 상장폐지를 위한 공개매수 시점이 논란이다. 주가가 최근 몇년 중 가장 낮거나 그와 유사한 수준인 시점에 이를 바탕으로 공개매수 가격을 정했기 때문이다. 주가가 공개매수 가격으로 고정되다 보니 주가 상승을 기대하고 보유해온 소액주주들의 손실이 사실상 확정되어 버린 것이다.
주가가 낮은 시점에 대주주들이 공개매수를 하는 것은 적은 비용으로 많은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소위 ‘주가 누르기’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합병가액 산정을 앞두고 ‘주가 누르기’를 한 삼성물산 사례에 비추어 보면 그러한 의혹을 마냥 음모론이라 치부하기는 어렵다.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입더라도 회사에 대한 의무위반이나 위법행위가 되지 않는 선에서 ‘주가 누르기’를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먼저 배당가능 이익이 있더라도 배당을 하지 않는 방법이 있다. 기계장치의 내용연수 변경 등과 같이 회계기준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비용 인식을 더 많이 해 재무제표상 이익을 줄일 수도 있다. 기말 발생 매출이나 중요 계약을 늦춰 다음 기로 이월할 수도 있다. 소액주주들을 축출한 후 대주주에게만 배당을 하거나 호전된 회사의 실적을 발표한 사례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런 행위를 하더라도 소액주주만 피해를 입을 뿐 회사에는 손해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사들은 배임행위로 처벌되지 않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피해자가 된 소액주주에 대해서는 책임을 부담해야 마땅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행 상법 규정에 의하면 이사는 회사에 대해서만 충실의무를 부담한다. 전체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할 의무를 직접 부담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이사들이 대주주 이익만을 위할 뿐 소액주주들의 이익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소액주주들의 불만이 나온다.
상장폐지를 위한 공개매수 가격이 1주당 순자산가치에 미치지 못하면 소액주주들 몫의 재산이 대주주에게로 이전되는 결과도 발생한다. 1주당 순자산가치에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공개매수를 해서 절대적인 지분을 보유하게 된 대주주는 회사 해산결의를 할 수 있다. 이 경우 전체 자산에서 부채를 제외한 순자산가치를 모두 대주주가 가질 수 있다. 굳이 해산을 하지 않더라도 순자산가치 이상의 가격으로 회사를 매각하는 것도 가능하다.
공개매수에 응하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상장폐지를 전제로 한 공개매수는 그렇지 않다. 공개매수에 응하지 않더라도 다른 누군가 공개매수에 응하면 상장폐지가 되고, 상장폐지 이후 주주보호 조치는 같은 가격으로 주식을 매수해주는 것이 사실상 전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포괄적 주식교환 등의 방법으로 남아 있는 소액주주들을 강제 축출하는 것 역시 가능하기에 더 그렇다.
주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주식을 계속 보유하는 것은 다시 가격이 상승해 손해를 만회하거나 이익을 기대하는 것이지만 공개매수 후 상장폐지는 그러한 가능성도 봉쇄한다. 공개매수 가격을 순자산가치, 미래 가치를 반영하는 등 공정가치로 정한다면 위와 같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법령상 그러한 제한도 없고 법원이 그렇게 판단하지도 않는다.
피해 소액주주들은 여러 방안을 모색하지만 이를 막을 방법은 찾기 어렵다. 우리 법이 이런 방식의 공개매수와 소액주주 축출을 모두 허용하기 때문이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을 해야 이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지난 3일 발표한 ‘역동경제 로드맵’에서 그러한 상법 개정안 추진을 제외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최대주주의 상속세 인하 정책이 뜬금없이 들어왔다. 그렇지 않아도 온갖 합법·편법으로 이익을 누리던 대주주만 더 이익을 얻게 되었다. 상황이 이러니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로 향하는 길을 막을 수 없다. 올 들어 국내 개인투자자가 미국 주식에 투자한 규모가 80억 달러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괜히 ‘국장 대신 미장’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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