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처럼 늘어난 대외투자가 국내투자 부진으로 이어질 경우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의 생산능력 확대 및 생산성 제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에 한은은 국내에서 반도체, 2차 전지 등 고부가가치 중심의 투자가 꾸준하게 이어질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14일 한은의 '최근 수출 개선에도 수입이 부진한 배경'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수출이 전년동기 대비 369억 달러 늘어나는 동안 수입은 407억 달러 감소했다. 지난해 총 수입은 12.1% 감소했다. 올해 들어서도 총 수입 증감률은 1분기(-11.1%)에 이어 2분기(-1.4%)까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수출이 빠르게 회복되는 것과 상반된 모습이다.
하지만 한은에서는 경상수지 흑자가 늘어나는 것을 마냥 낙관적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한다. 수출 호조세에 가려진 수입 상황, 특히 자본재 수입의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다. 남석모 한은 조사국 국제무역팀 과장은 "자본재 수입이 장기간 줄어들 경우 우리 경제 생산능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수출 개선세에도 수입이 줄어든 원인을 △내수 회복 지연 △중간재 국산화율 상승 △반도체·항공기 등 업종별 특이요인을 꼽았다. 지난해부터 수입통관 흐름을 살펴보면 원자재(기여율 68%)와 자본재(22%)가 크게 부진했는데 원자재는 주로 단가 하락에, 자본재·소비재는 물량 감소에 주로 기인했다.
중간재 국산화율이 상승하면서 수출의 수입유발 효과가 약화된 것도 수입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2018년 이후 반도체·자동차 등 주력산업의 중간재 국산화율이 올랐고 2020년 이후엔 반도체·자동차·기계류 등 수출의 수입유발률이 낮은 산업을 중심으로 수출 개선이 지속됐다.
반도체 투자 속도조절, 항공기 도입 지연, 신성장 산업의 대외투자 확대 등 일부 산업의 특이요인도 수입 제약 요인으로 작용했다. 최근 반도체 경기는 호조를 보이는 데 반해 반도체 설비투자는 부진한 흐름이다.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점유율 확대보다 수익성 제고에 집중하면서 설비투자 속도 조절에 나선 점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남 과장은 "과고 반도체 기업들은 업사이클에 대응해 투자를 큰 폭으로 늘려왔는데 이번에는 그 정도가 약한 모습"이라며 "인공지능(AI) 관련 기술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업들이 생산능력 확대보다 R&D 투자에 집중하면서 설비투자 여력이 제약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코로나 팬데믹 종료 이후 여행수요가 회복되면서 항공기 투자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지만 보잉사 항공기 결함으로 항공기 도입이 당초 예상보다 지연된 점도 운송장비 수입이 줄어든 한 요인이다.
이외 신성장 산업 측면에서는 반도체·전기차·배터리를 중심으로 대(對)미 투자가 늘어난 부분이 수입 감소 요인으로 작용했다. 국내 설비투자 여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자본재 수입 부진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반도체 산업 의존도(지난해 수출 비중 38.5%)가 높고 미·중 기술분쟁 리스크에 크게 노출된 대만도 2020년 이후 대미투자가 크게 늘어난 반면 자국 내 투자는 둔화세다.
남 과장은 "물가증가세 둔화로 소비는 점차 개선되고 기업실적 개선에 따른 투자여력 확대로 설비투자가 회복하면서 수입은 늘어날 전망"이라면서도 "향후 수입증가 속도는 주요 산업의 국산화율 제고, 해외생산 확대를 고려할 때 수출 증가세보다는 점진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국내 설비투자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자본재 수입의 움직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대외투자가 늘어나면서 자본재 수입이 감소하는 경우 국내투자 수축을 시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남 과장은 "국내에서 고부가가치 중심의 투자가 꾸준하게 이어질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조성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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