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세계 지배전략 펼치는 AI 트라이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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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논설위원장
입력 2024-07-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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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도 AI 전략 과감히 재정비 할때

곽재원 논설위원장
[곽재원 논설위원장]


'인공지능(AI)'이라는 글자를 신문 지면에서 볼 수 없는 날은 이제 더 이상 없다. 그 효시가 된 미국 오픈AI가 일반인용 생성 AI를 공개한 것은 2022년 11월 30일. 불과 1년 반 전이다. 그 후 둑이 터지듯 학술 연구는 물론이고 비즈니스와 일상생활의 현장으로 밀려들었다. 최근 신기술 보급을 보면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는 서비스 개시 후 인구의 50% 이상에게 보급되기까지 5~10년 걸렸다. 생성 AI는 이미 컴퓨터 브라우저에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고, 곧 인구의 50%에게 보급될 것이다. 진화 속도도 엄청나다. 간단한 텍스트 기반 응답, 작문, 번역에서 고도의 동영상 제작까지 가능해졌다. 이를 악용해 유명인의 얼굴과 목소리를 이용한 악의적인 사기도 급증하고 있다. 빠른 보급과 진화 속도로 생성 AI는 지금까지 기술과는 전혀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요즘 전문가들 사이에 급대두하고 있는 화두 가운데 몇 가지 주목할 게 있다. 첫째는 ‘AI 거품론’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미국 기술 기업들이 최근 실적 시즌에 접어들면서 월스트리트의 기술 기업 가치 평가에 뚜렷한 혼동이 찾아오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이 잡지는 “2024년 중반이 발전하고 있는 AI의 '에어 포켓'이 될 수 있다”며 “이 기술로 촉발된 투자 붐은 너무도 눈에 띄지만 기술 업계의 최종 고객이 새로운 역량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월스트리트의 인내심이 곧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새로운 기술을 기존 제품에 AI 기능을 탑재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는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주식시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예컨대 최근 애플이 자사 기기에 인공지능 기술을 자유롭게 적용하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를 위한 매력적인 새로운 서비스가 나오지 않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챗GPT를 접한 뒤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아이폰을 처음 손에 쥐고 구글 검색창을 사용하거나 페이스북에서 친구를 찾던 때와는 달리 디지털 생활이 달라지지는 않고 있다. 이는 생성 AI의 광범위한 도입이 지연되고 있음을 뜻한다. 멈춤이 길어질수록 투자 붐과 부진한 최종 수요 사이의 격차는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그럼에도 기술 기업들이 최근 실적 발표를 하면서 모든 징후는 여전히 호황이 한창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게 사실이다. 많은 기업 고객들이 이제 막 기술을 사용한 첫 번째 파일럿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며, 궁극적인 용도가 불분명하더라도 앞으로 몇 달 동안 기술 테스트를 늘릴 전망이다. 대규모언어모델과 이를 지원하기 위한 인프라에 돈을 쏟아붓는 것은 대형 기술 기업들에도 전략적으로 필수적인 일이 되었다. 또한 이러한 기업들이 경쟁을 유지하고 심지어 확대할 수 있는 충분한 재정적 여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마존, 메타의 영업 현금흐름은 지난 5년 동안 99% 증가해 2023년에는 4560억 달러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96% 증가해 1510억 달러에 이르는 자본 지출을 감당하기에 충분한 수준이다.

기술 거품에 관해선 몇 가지 진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우리가 거품의 내부에 있을 때는 거품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개별적인 지출이나 투자 결정이 비록 그 효과가 극단적으로 보이더라도 합리적으로 여겨질 수 있다. 또 거품이 일고 있다는 일반적인 합의가 있을 때는 거품이 훨씬 더 부풀어 오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거품에서 너무 일찍 빠져나온 투자자가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거품이 꺼진 후에는 그것이 단지 과대광고의 산물인지 아니면 앞으로 다가올 더 큰 기술 붐의 전조인지 알아내는 데 수년이 걸릴 수 있다. ‘AI 거품론’에 대한 논의가 무성해지고 있다.
 
두 번째는 ‘AI 윔블던 현상’이다. 컴퓨터가 인간의 능력을 모든 면에서 능가하는 '싱귤래리티(기술적 특이점)'의 주창자이자 AI 연구자인 레이 커즈와일이 6월 말에 신간을 출간했다.

2005년 저서 <싱귤래리티는 가깝다>의 속편으로, '가깝다' 부분을 '더 가까운(니어)'으로 제목을 바꾸었다. 미국 IT 산업의 열기를 상징하는 책이다. 생성 AI는 폭발적인 속도로 전 세계적으로 이용이 확대되고 있으며, 일본과 아시아에서도 ​​​​​​'GAFAM(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 5개사 등이 대규모 투자를 표명하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AI 학습에 필수적인 데이터센터에 대한 투자 금액은 일본에서만 연초 이후 약 4조엔(미국 기업이 발표한 계획의 합계)에 달한다고 한다. 일본 전문가들은 “해외에 압도당한 채 국내 파워가 밀린다는 점에서 1990년대 인터넷 보급기와 비슷하다. AI 시대도 테니스계에서 유래한 '윔블던 현상'처럼 문호를 개방하면서 해외의 독주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이점에서는 우리도 일본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윔블던 현상이란 '문호를 개방한 결과 외국 세력이 우세해져 토종 세력이 침몰하거나 도태되는 현상'을 말한다. 좁은 의미로는 시장경제에서 '자유경쟁에 의한 토종 세력의 도태'를 나타내는 용어이다. 특히 시장 개방으로 인해 외국계 기업에 의해 국내 기업이 도태되는 것을 말한다. ‘윔블던 효과’라고도 한다.

어원은 테니스 윔블던 챔피언십이다. 원래는 1877년 7월 9일에 런던의 소박한 지역 윔블던에서 시작된 테니스 대회였으나 규정을 변경해 세계 각국의 강호들이 모이는 세계 최고 권위의 대회로 성장했다. 그러나 개최지인 영국 선수가 우승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남자 단식에서는 1936년 프레드 페리의 우승부터 2013년 앤디 머레이의 우승까지 77년 동안 영국인의 우승이 없었다. 여자 단식에서는 1977년 버지니아 웨이드의 우승을 마지막으로 40년 이상 영국인 우승자가 나오지 않았다. 윔블던 대회는 테니스의 4대 국제대회 중 하나로 편의상 '전영(全英)오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GAFAM과 오픈AI는 거액을 투자해 다른 기업이 따라올 수 없는 영역까지 먼저 도달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투자의 목적은 대규모언어모델의 한 단계 더 큰 규모화이며, 결국 학습에 사용하는 미국 반도체 대기업 엔비디아의 고가 영상처리 반도체(GPU)를 대량으로 조달하거나 새로운 고성능 칩을 개발하는 데 있다. 우리 기업들은 아마도 이러한 투자 경쟁에서 제대로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다. 재무 기반에 큰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학습에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상의 데이터 양에서도 미국 기업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세 번째는 ‘AI 플레이어 참여’이다. 지난달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 미국 거대 기술 기업들의 올해 기술 트렌드를 점치는 연례 개발자 행사가 끝났다. 각 기업 모두 AI 신기술 발표 일색이었지만 가장 열기가 뜨거웠던 것은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엔비디아가 개최한 'GTC 2024'였다. 엔비디아는 시가총액에서 한때 애플을 제치고 세계 1위로 급성장하는 AI 신데렐라 기업 중 하나다.

인간형 로봇, 애플의 고글형 단말기 '비전프로'를 이용한 설계, 미국 오픈AI의 동영상 생성 AI '소라(Sora)'를 이용한 데이터 압축 기술 등 엔비디아가 개최한 행사에서는 화제의 기업들이 최신 기술을 활용해 점점 더 새로운 실험을 선보이는 모습이 눈길을 잡았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에 무지막지한 열기로 참가했던 국내 기업들이 ‘GTC 2024’에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게임 관련 기업에서 생성 AI의 금맥을 발견한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는 혁신의 싹을 '제로 빌리언 달러 시장(아직 보지 못한 10억 달러 시장)'이라고 부른다. 자동차와 로봇을 AI의 다음 축으로 삼고 있으며, 스타트업들이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기회를 노리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자동차 전시회가 사라졌고, 미국 게임 박람회 'E3'도 막을 내렸다. 종합 전시회에서 기업들이 초대제로 개별적으로 여는 행사가 늘고 있다. 그만큼 기술자들끼리 서로 연결고리를 갖고 인맥 네트워크에 끼어들 수 있느냐가 중요해졌다는 얘기다. 일본경제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 경제산업성 주도 아래 실리콘밸리에 스타트업 지원 거점을 개설했고, 5년간 창업가 1000명을 해외에 파견하는 계획을 세웠다. 일본 기업들이 실리콘밸리에서 더 이상 '공부'는 그만하고 실제 사업에 매진하자는 것이다. 자동차, 소재, IT, 종합상사, 은행, 보험회사에 이르기까지 대기업들은 실리콘밸리에 거점을 두고 있지만 현지에서 최신 상황을 '학습'하고 일본 본사에 보고하는 기능이 많다는 지적이다.

"지금은 특별한 순간이다"라는 샘 올트먼 오픈AI CEO의 말처럼 생성 AI의 충격은 GAFAM으로 불리는 빅테크에 대항할 기업이 탄생하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오픈AI를 탄생시킨 샌프란시스코와 인근 지역에서는 매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생성 AI 미팅이 열리고 있다. 대기업 직원들도 일을 마치고 인맥을 쌓거나 새로운 비즈니스 개척에 매진한다. 아시아계로 보이는 것은 인도와 중국계 기업가들뿐이라고 한다.

앞으로 우리 기업도 AI 등 최신 기술 분야에서 플레이어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일정 리스크를 감수하고 해외 거점의 재량권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본사에 보고하고 문의하는 것만으로는 비즈니스에 깊숙이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AI 트랜스포메이션’이다. IMF(국제통화기금)는 지난 6월 17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AI 도입에 따른 노동시장의 대규모 혼란과 격차 확대에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각국 정부에 경제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IMF는 과거 디스럽션(창조적 파괴)을 일으켰던 기술과는 달리 생성 AI는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직업에서도 고용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며 각국에 실업보험 확대 등 대책을 제안했다. IMF는 생성 AI가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고 공공 서비스 개선을 촉진할 수 있는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하면서도 급변하는 미래 노동시장에 대비하기 위해 교육 및 직업훈련 관련 정책은 평생학습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노동자들이 새로운 직업과 업종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업종에 특화된 훈련, 실습 제도와 재교육(리스킬링) 프로그램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IMF는 "새로운 노동 환경으로의 전환은 고통스러울 수 있다"며 "이 값비싼 전환이 가져올 영향을 완화하고 사회의 통합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의 4개 화두를 정리해 봤지만 무엇보다도 AI혁명을 선도하고 있는 미국이 실리콘밸리의 빅테크(기술), 월스트리트(자금), 워싱턴(국가전략)의 굳건한 트라이앵글 체제로 세계 지배전략을 펼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주요국들이 AI 총력전에 나서고 있는 이유다. 우리도 ‘AI 정책·전략’을 재빠르고 담대하게 가다듬어야 할 때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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