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담보대출을 포함한 은행권 가계대출 수요가 3년 3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금융당국의 압박과 시중은행의 가산 금리 인상 대응으로 가계대출 총량 조절에 나섰지만 약발이 전혀 먹히지 않는 모습이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피벗'(통화정책 전환)에 나서면 대출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7월 말 기준 559조7501억원으로 집계됐다. 6월 말(552조1526억원)과 비교해 한 달 사이 7조5975억원 뛰었다.
1분기까지 안정적으로 관리되던 주담대는 4월부터 증가세로 돌아섰다. 문제는 증가 속도다. 주담대 증가 폭은 △4월 4조3433억원 △5월 5조3157억원 △6월 5조8467억원 △7월 7조5975억원 등으로 갈수록 가팔라지고 있다.
가계대출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담대가 빠르게 늘면서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도 715조7383억원으로 7조1660억원 늘었다. 역시 6월(5조3415억원)보다 증가 폭이 커졌다.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도 3.36%로 올라섰다. 5대 은행이 연초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내놨던 증가율 목표치는 1.5~2%였다. 금융당국은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이내로 관리한다는 게 목표다.
주담대 증가세가 수그러들지 않자 금융당국은 시중은행을 한자리에 모아 엄격한 관리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금융감독원은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1단계 시행 과정에서 은행권이 충실하게 제도를 적용했는지 등에 대한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압박에 은행들은 한 달에 3~4차례 가산금리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국민은행은 7월에만 3일, 11일, 18일에 이어 29일까지 총 4차례 금리를 인상했다. 2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해 구입자금 대출을 제한하고, 타행 대환용도 주담대 신규 취급도 막았다. 신한은행도 지난달 세 차례 금리를 조정한 데 이어 오는 7일부터 금리를 최대 0.3%포인트 추가로 인상한다. 이에 따라 2%대였던 하단은 3% 중반대로 올라서게 됐다.
정부는 대출 총량을 줄이기 위해 정책자금 대출 금리 혜택도 주고 있다. 지난달 29일부터 디딤돌 대출을 한도 대비 30% 이하로 신청하면 금리를 0.1%포인트 깎아준다. 대출실행일로부터 1년 경과 후 대출원금 40% 이상을 중도상환하면 금리를 0.2%포인트 낮춰주기로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력이 실질적인 효과로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9월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을 앞두고 '막차 수요'가 몰리는 데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매매 가격이 전 고점을 회복하며 상승장 초입에 진입했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어서다.
여기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9월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한다면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하 압박을 더 강하게 받게 된다. 시장금리가 더 크게 내려간다는 뜻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은 31일 “9월에 기준금리 인하가 논의될 수 있다(could be on the table)”며 코로나 사태 이후 가장 강하게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내비쳤다. 시장은 9월 기준금리 인하를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예금은행의 주담대 금리가 이미 2년 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3.71%)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는 은행권 주담대 금리 하락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권 관계자는 "9월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가 기정 사실인 상황에서 은행이 금리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일차원적 방식으로는 대출 수요를 진정시키기 힘들다"며 "당분간 가계대출 증가 흐름을 거스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헸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