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리더십] ②'언노운·칩 프라이스' 오명 탈피…철저한 품질관리로 일군 '글로벌 빅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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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가림 기자
입력 2024-08-0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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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 회장, 7년 보증 앞세워 품질강조

  • 유럽 내 현대차그룹 인식 전환 계기

  • 올해 美 충돌평가서 최고등급 영예

  • 中업체와 신흥국 점유율 경쟁 치열

  • SDV·자율주행기술 확보 서둘러야

그래픽아주경제
[그래픽=아주경제]
1999년 세계 판매 순위 10위에 머물렀던 현대자동차·기아는 한때 치욕의 땅이었던 미국에서 165만대, 유럽에서 110만대를 포함해 세계 시장에서 730만대를 파는 빅3 업체로 발돋움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비결을 '품질'을 강조해 온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뚝심에서 찾는 목소리가 높다. 조만간 본격화할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SDV) 시대는 정 회장의 더욱 강력한 리더십이 발휘돼야 할 시점으로 여겨진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간 스텔스 이노베이션(보이지 않는 혁신) 경쟁에 불이 붙은 가운데 현대차그룹의 SDV, 자율주행 기술은 선두 그룹에 속해있지 못한 상황이다. 중국 완성차업체의 자동차 수출 강화 전략이 갈수록 거세지고 현대차그룹이 진출한 신흥국 시장에서도 점유율 뺏기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기아가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컨설팅을 통해 유럽 내 브랜드 이미지 조사를 의뢰한 결과 '언노운'(알 수 없는)이 가장 많은 점수를 차지했다. 이어 '프랙티컬'(실용적), '칩 프라이스'(저렴한 가격)이 뒤를 이었다. 

당시 품질의 우수성은 고려조차 되지 않았다. 권위 있는 소비자 만족도 조사기관 JD파워의 신차품질조사(IQS) 결과를 보면 1995년 현대차의 순위는 34개 브랜드 중 33위로 나타났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도 30여 개 브랜드 중 꼴찌권을 유지했다. 

품질 문제로 곤욕을 치른 적도 다수다. 포니 엑셀은 미국 진출 첫해 24만대 팔렸지만 1980년대 말 품질 문제로 홍역을 앓았다. 1980년대 초 출시된 중형 세단 '스텔라'는 폭우가 쏟아지면 물이 차 안으로 스며들어 '수텔라'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캐나다 브루몽 공장은 생산 차종인 쏘나타가 경쟁차종에 비해 품질이 크게 떨어지자 미국 소비자들의 냉담한 반응을 얻으며 4년 만에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물론 현재의 현대차그룹은 그때의 현대차그룹이 아니다. JD파워의 2024 IQS에서 현대차와 기아는 뷰익, 닛산, 포르쉐, 렉서스, 포드, 혼다 등을 제치고 각각 3위, 4위에 이름을 올렸다. 현대차그룹 종합으로 보면 글로벌 15개 자동차그룹 가운데 1위다. 2024 내구품질조사(VDS)에서는 기아가 8위를 기록하며 BMW, 지프, 캐딜락, 닛산, 혼다, 벤츠를 앞섰다. 깐깐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미국 고속도로 안전보험협회(IIHS)가 발표한 충돌평가에서 아이오닉6, 아이오닉5, 코나 등 현대차 3개 차종과 G90, G80, G80 전동화 모델, GV80, GV60 등 제네시스 5개 차종, 기아 텔루라이드 등 9개 차종은 최고등급인 '톱 세이프티 픽 플러스(TSP+) 등급을 획득하는 영예도 얻었다. 
2006년 12월 정의선 당시 기아차 사장오른쪽과 얀 슬로타 질리나 시장이 씨드 생산 기념식을 갖고 악수하고 있는 모습 사진기아
2006년 12월 정의선 당시 기아차 사장(오른쪽)과 얀 슬로타 질리나 시장이 씨드 생산 기념식을 갖고 악수하고 있는 모습. [사진=기아]
◆현장 누비며 판매·마케팅에 힘

현대차그룹이 세계 최고 품질의 자동차 생산 메이커로 우뚝 서게 된 밑바탕에는 정 회장의 리더십이 작용한다. 그는 기아 사장 시절부터 끊임없이 현장을 누비면서 품질 쇄신의 필요성을 주문하고 실천해왔다. 당시 정 사장은 슬로바키아공장 건설과 씨드 출시 등 굵직한 해외 프로젝트를 논의하기 위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유럽총괄법인 출장 중 유럽 메이커(2년)와 한국(3년), 일본 도요타(5년)의 품질 보증기간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장 안착을 위해 일본처럼 보증기간 확대를 검토했지만 대규모 비용 감수가 불가피했다. 기존 3년 보증에 4년을 연장시키면 대당 225유로+α의 비용이 추가돼야 했다. 비용을 최소화하려면 품질이 뒷받침돼야 해 현지 임원들의 부담을 샀다. 정 회장은 당시 7년 보증을 결단하면서 동시에 현지공장의 자동화율을 높이고 실무진에게 꼼꼼한 품질검사를 주문했다. 폭스바겐, 도요타, 푸조 등 오너와 실무진은 이 전략이 공개된 파리모터쇼 부스에 모여들어 '크레이지'라고 외치는 동시에 전시 차를 유심히 살폈다. 7년 보증을 앞세운 만큼 품질이 얼마나 좋은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보란듯이 현대차그룹은 유럽시장 판매 비중을 빠르게 늘려나가며 현재 랭킹 4위까지 오를 수 있는 초석을 다졌다. 씨드 출시 전 시승차에 문제가 생기자 '출시 전 결함을 먼저 잡으라'고 지시하는 등 정 회장은 직접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품질이 높아지니 대리점과 딜러들의 판매에도 자신감이 붙었고 마케팅 부서에서도 투자를 유치할 때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며 "리더십으로 결정돼야 할 사안들을 정 회장이 당시 시원하게 결정하고 직원들을 독려해줬고 이는 결국 유럽 내 현대차그룹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터닝포인트가 됐다"고 말했다. 

브랜드 초기 기획 단계부터 외부 인사 영입과 조직 개편까지 모든 과정을 기획하고 주도한 제네시스를 성공적으로 만든 것도 이 같은 현장경험이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회장 취임 이후에도 품질 컨트롤타워를 세워 질적 성장을 이끌었다. 현대차에 품질기준 태스크포스팀(TFT)과 안전부품품질확보체계화TFT, 제조품질개선TFT 등을 꾸리고 신차 품질을 확보했다. 차량제어 소프트웨어(SW) 품질실, 환경인증품질확보팀, 통합안전환경품질센터, 전동화품질실 등 갈수록 높아지는 글로벌 환경규제에 맞춘 부서도 마련해 전동화 신차 개발에 속도를 높였다. 

GM 출신이면서 안전·품질 분야 전문가인 브라이언 라토프 부사장을 글로벌 최고 안전 및 품질책임자(GCSQO)로 승진 임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브라이언 라토프 부사장은 최근 송창현 현대차 첨단차플랫폼(AVP) 본부장과 양희원 현대차·기아 R&D본부장 등 남양연구소 리더들과 모여 새로운 안전·품질 검증 프로세스를 점검하는가 하면 조지아주 신규 공장을 방문해 설비를 점검하는 등 정 회장의 품질경영에 발 맞춰 가고 있다. 
 
GV70 사진제네시스
GV70 [사진=제네시스]
◆中·유럽·미국에 뒤처진 SDV·자율주행 순위

현대차그룹은 전통 완성차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미래 자동차 시장을 선도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SDV 전환에 대응할 수 있는지 여부에 현대차의 미래가 달린 것으로 평가된다. 

워즈오토 등 해외 시장조사업체에 따르면 SDV 기술 순위로는 루시드와 니오, 테슬라가 10점 만점에 10점으로 1위를 기록했다. 이어 리비안(9.3), 폴스타(7.8), 벤츠(7.1), 지커(7.1), 스텔란티스(6.5), 폭스바겐(6.4), 볼보(6.3) 등이 뒤를 이었고 현대차그룹이 4.8점으로 11위를 기록했다. 중국 업체 대다수가 상위권을 차지했다. 최근 현대차그룹 각 주요 부서에 '중국업체 대응 전략'을 마련하라는 오더가 떨어진 이유다. 

자율주행차 경쟁력에서도 한국은 다른 국가에 비해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국가별 자율주행차 경쟁력은 미국(100), 유럽(98.2), 중국(95.2), 일본(89.4)이 선두를 달렸고 한국(88.4)이 5위를 기록했다. 

실제 현대차그룹의 판매가 늘어날수록 결함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국토교통부 자동차리콜센터에 따르면 기아의 올해 시행된 51건의 무상점검·수리에서도 30건이 SW 오류로 인한 조치로 집계됐다. 자동차 내부 전자 제어 장치인 ‘ECU’ 오류로 카니발 하이브리드·셀토스·모닝·K5·쏘렌토 하이브리드·봉고Ⅲ에 대한 무상수리가 시행됐다. 통합충전제어장치(ICCU)와 통합형 전자식 브레이크(IEB) 제어기, 배터리제어시스템(BMS) 등 오류로 싼타페 하이브리드·아이오닉5·아이오닉6에 대한 리콜이 이어졌다. 

정 회장은 올해 미국에서 열린 CES 2024에서 "해외에서는 이미 하고 있는데 우리가 SDV 전환이 좀 늦었다"며 "갈 길이 멀다"고 언급했다. 전동화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 시기에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해외에 비해 부족한 전문 인력과 부품사들의 전동화 사업 전환 지연 등이 발목을 잡고 있다.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문제를 찾아야 할 인력의 부족이 지속되면 이는 곧 품질 저하로 이어지게 된다. 또 소프트웨어의 복잡성이 증가하면서 시뮬레이션만으로 문제를 바로 잡아내기 어렵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은 "판매물량이 점차 정체되는 상황에서 부가가치를 창조하려면 고급화가 요구된다. 중국은 수천대의 차량으로 자율주행 레벨4 시험을 하고 있고 300만대 규모의 신흥시장까지 노리고 있다"며 "품질, 디자인 경영을 넘어서는, 산업전환기에 맞는 새로운 리더십이 요구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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