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안정 총력전에 나선 정부가 식품업계에 대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최근엔 식품업계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가격 인하를 재차 요구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정부 측 조치를 두고 기업 팔목 비틀기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업 고유 권한인 가격 책정까지 정부가 과도하게 간섭한다는 이유에서다.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서울에서 식품산업 발전을 위한 간담회를 열고 식품업계 대표들에게 제품 판매 가격 인하를 요청했다. 최근 설탕·밀가루 등 식품 원료 가격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간담회에는 롯데칠성음료·빙그레·삼양식품·샘표식품·SPC삼립·오리온 관계자 등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 장관은 "가공식품은 국민 일상생활과 매우 밀접하고 소비자 체감도가 높은 분야"라면서 "국민이 고물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식품기업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가격 인상을 꺼낼 수 없는 분위기를 조성한 셈이다. 이에 식품업계는 "제품 가격 인하와 할인행사 등을 통해 물가 안정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답했다.
농식품부가 식품업계를 불러 모아 물가 안정 협조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3월에도 당시 한훈 농식품부 전 차관은 19개 식품기업 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 식품 가격 조정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압박한 바 있다.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에도 정부가 전방위로 가격 인상 자제를 압박하자 정부의 시장 가격 간섭이 도를 넘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원재료 가격 안정세를 근거로 제품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것은 난감하다는 반응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제품 가격은 원자재·부자재 구매비, 노임 대금, 경비 등으로 구성된다. 여기서 원자재 가격이 안정세라 하더라도 나머지 요소가 오르면 가격 인하는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건비와 물류비 등 각종 제반 비용이 상승하는 상황에 이 같은 가격 인하 압박은 기업 투자와 고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도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엔 공감하면서도 "올해 기업을 겨냥한 정부의 가격 인하 압박은 계속되고 있다"며 "기업이라면 이익을 내야 하는 데 압박이 심해지는 상황이다 보니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에 대한 정부의 팔목 비틀기식 물가 관리가 계속되는 가운데 제품 가격 책정을 기업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기업 제품 가격을 규제하기 시작하면 스프링처럼 반드시 튀어 오르게 마련"이라며 "정부가 물가 관리에 나서는 동안 기업들이 가격 인상은 한동안 미루겠지만 관리가 느슨해지면 줄줄이 시차를 두고 가격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과도한 가격 규제는 시장경제 논리를 벗어나는 것"이라며 "인건비와 물류비 등이 오르는 상황에서는 기업이 그에 맞춰 제품 가격을 책정하도록 가격 조정을 최대한 민간 기업에 맡겨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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