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선수단이 파리 올림픽에서 역대급 성적을 냈다. 1976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역대 최소 규모 선수단을 파견했지만, 선수들의 투지가 빛났다. 금메달 13개 은메달 9개 동메달 10개를 획득하며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번 대회 가장 큰 화두는 '총칼활' 종목의 선전이었다. 금메달 싹쓸이를 한 양궁부터 사브르 강세가 돋보였던 펜싱, 새로운 스타들을 배출한 사격까지 무려 10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대한민국이 '전투민족'임을 전 세계인들에게 각인시켰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선전에는 '총칼활' 종목 외 선수들의 활약도 일조했다. 투기 종목에서의 부활이 반가웠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노 골드'에 그치며 '도쿄 참사'를 당했던 태권도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수확하며 자존심을 되찾았다. 유도는 은메달 2개와 동메달 3개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마지막 단체전에서 나온 선수들의 투지는 많은 국민들을 감동에 빠뜨렸다. 복싱에서도 12년 만에 메달리스트가 나오며 과거 '복싱 강국'의 명성을 새삼 추억하게 했다.
구기 종목에서의 선전도 도드라졌다. 배드민턴에서 각각 1개씩 금메달과 은메달을 따냈고, 탁구에서는 동메달 2개를 수확했다. 여기에 수영, 역도, 근대 5종에서도 메달리스트를 배출하는 기쁨을 누렸다.
박태준·김유진의 금빛 발차기...김민종·안바울의 투지 가득한 메치기
이번 대회 태권도가 부활을 알렸다. 첫 주자로 나선 '막내' 박태준이 스타트를 잘 끊었다. 박태준은 지난 7일(현지시간) 그랑 팔레에서 열린 남자 태권도 58㎏급 결승전에서 아제르바이잔의 가심 마고메도프를 상대로 라운드 점수 2-0 압승을 거두며 금메달을 품었다. '태권 황제' 이대훈 MBC 해설위원 바라기였던 그는 이 위원이 보는 앞에서 '금빛 발차기'를 날렸다.
이튿날 또 다시 태권도에서 금빛 소식이 들려왔다. 여자 57㎏급에 출격한 김유진이 그야말로 '도장깨기'를 제대로 선보이며 전 세계인을 놀래켰다. 세계 랭킹 24위에 불과했던 그가 올림픽에서 세계 랭킹 1위, 2위, 4위, 5위를 모두 잡는 이변으로 금메달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태권도 마지막 날 이다빈이 여자 67㎏ 초과급에서 동메달까지 얻어내며 피날레를 장식했다. 4위에 머무른 남자 80㎏급 서건우까지 모두 준결승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유도의 활약도 눈부셨다. 남자 100㎏ 초과급 김민종과 여자 57㎏급 허미미가 개인전 은메달을 얻었고, 남자 81㎏급 이준환과 여성 78㎏ 초과급 김하윤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기에 유도 마지막날 펼쳐진 혼성 단체전에서 투지를 불태우며 값진 동메달을 땄다.
특히 혼성 단체전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도 팀을 위해 기꺼이 출전한 김민종과 한 체급 높은 선수를 상대로 골든 스코어에서 승리를 만들어낸 안바울의 투지가 눈부셨다. 안바울은 대한민국 유도 역사상 최초의 3회 연속 메달리스트(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개인전 은, 2020 도쿄 올림픽 개인전 동, 2024 파리 올림픽 혼성 단체 동)가 되는 겹경사도 누렸다.
여자 복싱 54㎏급에 출전한 임애지는 한국 여자 복싱 역사상 첫 올림픽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 2012 런던 올림픽 이후 끊겼던 복싱에서 12년 만에 나온 귀중한 메달이었다.
안세영·신유빈, '구기 종목'서 발군의 활약...강력 스매시 날렸다
'배드민턴 여제' 안세영은 이번 올림픽에서 발군의 실력으로 오랜 숙원이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어릴 적부터 '배드민턴 신동'으로 주목받았던 그는 지치지 않는 체력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늪수비'로 상대를 차근차근 제압해냈다. 실제 안세영과 경기 도중 상대 선수들의 지친 기색이 역력할 정도였다.
안세영의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금메달은 지난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방수현 이후 무려 28년 만에 나온 대기록이다. 안세영은 금메달을 따낸 뒤 포효하며, 기쁨을 만끽했다. '배드민턴 여제'의 대관식이 파리에서 열리는 순간이었다.
다만 안세영은 금메달 획득 후 그동안 쌓여왔던 대한배드민턴협회의 부조리를 폭로하며, 논란을 불렀다. 안세영과 협회 측은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배드민턴에서는 안세영의 금메달뿐 아니라 강세를 보이던 혼합 복식에서도 은메달을 수확했다. '구토 투혼'까지 선보인 김원호가 정나은과 짝을 이뤄 기적적인 행보를 보였다. 조별 예선 첫 경기와 마지막 경기에서 패배한 이들이었지만, 운이 따라주며 토너먼트에 진출했고, 천천히 상대들을 격파해나갔다. 4강전에서는 대한민국 대표팀 서승재-채유정을 맞이해 김원호가 구토까지 하면서도 결승에 올랐다. 김원호는 1996 애틀랜타 혼합 복식 금메달, 여자 복식 은메달, 1992 바르셀로나 여자 복식 동메달을 따낸 전설적인 배드민턴 선수 길영아의 아들이다. 이번 대회를 통해 대한민국 배드민턴 역사상 최초의 '모자(母子) 메달리스트'가 탄생했다.
'삐약이' 신유빈은 강철 체력을 선보였다. 대회 기간 동안 무려 14경기를 치렀다. 혼합 복식, 개인전, 단체전까지 모두 4강에 오르며 자신의 실력이 세계 최정상급임을 증명해냈다. 임종훈과 짝을 이룬 혼합 복식과 전지희, 이은혜와 함께 나선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유남규(1988 서울 올림픽 남자 단식 금메달·남자 복식 동메달), 김택수(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단식 동메달·남자 복식 동메달), 현정화(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여자 단식 동메달·여자 복식 동메달) 이후 탁구 단일 올림픽에서 멀티 메달을 딴 4번째 선수가 됐다. 그야말로 전설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뿐만 아니라 신유빈이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바나나와 에너지젤을 먹는 장면은 많은 화제를 불렀다.
아쉬웠던 '황금세대'...김우민, 박태환 이후 12년 만에 메달 수확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수영 대표팀은 큰 주목을 받았다. 김우민, 황선우를 주축으로 이뤄진 경영 대표팀은 '황금세대'로 불리며 이번 대회 역대 최다 메달 획득을 기대케 했다. 이미 세계 정상급 기량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림픽 무대는 쉽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동메달 1개를 수확하는데 그쳤다. 김우민이 남자 자유형 400m 결승에서 3위로 터치 패드를 찍으며 동메달을 따낸 것이 전부였다. 황선우의 부진이 뼈아팠다.
그래도 한국 수영 선수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낸 건 2012 런던 대회 박태환 이후 12년 만이다.
韓 유종의 미...'제 2의 장미란' 박혜정 銀, '근대 5종' 亞 최초 여성 메달리스트 성승민
대회 마지막 날 대한민국 대표팀은 은메달 1개와 동메달 1개를 수확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제 2의 장미란'으로 주목받던 박혜정은 여자 81㎏ 초과급 경기에서 인상 131㎏, 용상 168㎏, 합계 299㎏를 들어 올렸다. 한국 신기록을 작성하며 전체 2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한국 여자 최중량급에서 메달이 나온 건 지난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낸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이후 무려 12년 만이다. 장 차관은 여자 75㎏ 초과급에서 2004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낸 전설이다.
근대 5종의 새 역사도 쓰였다. 성승민이 여자 근대 5종에서 최종 3위를 기록해 동메달을 획득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여자 근대 5종 메달이다. 또한 아시아 권역 최초 여성 근대 5종 메달리스트가 됐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지난 2020 도쿄 올림픽 남자부 근대 5종 동메달리스트 전웅태에 이어 여자 근대 5종에서도 메달을 수확해냈다.
이뿐만 아니라 근대 5종은 남자부에 출전한 전웅태와 서창완, 여자부의 성승민, 김선우까지 모두 결승에 진출하는 쾌거를 누렸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이 신흥 근대 5종 강자임을 느끼게 해줬다.
이처럼 대한민국 선수단은 단체 구기 종목에서 여자 핸드볼을 제외하고 모두 탈락해 근래 최소 규모의 선수단을 파리에 보냈지만, 반전을 쏘며 역대 최다 금메달 수확(13개, 2008 베이징, 2012 런던과 동률)이라는 결실을 제대로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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