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준의 지피지기] 뜨는 싱가포르…저무는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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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 논설주간
입력 2024-08-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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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 논설주간
[박승준 논설주간]
 
1997년 7월 1일 오후 1시 30분 홍콩 컨벤션 앤 엑시비션 센터(香港會議展覽中心),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 국가주석은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전 세계를 향해 선포했다.

“홍콩이 (조국으로) 돌아온 것은 중국 인민들이 침략당한 1백년의 국치를 설욕하고, 홍콩과 조국 내지(內地) 공동 발전의 신기원을 연 것입니다.”

그때로부터 27년, 홍콩은 ‘동방의 진주(東方之珠)’로서의 빛을 잃어가고 있고, 홍콩에서 남서쪽으로 2500㎞ 떨어진 싱가포르의 빛이 더욱 강렬해지고 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싱가포르는 홍콩, 한국, 대만과 함께 NICS(New Industrializing Countries)로서, 서양 사람들의 입에 ‘네 마리의 호랑이(Four Tigers)’라고 오르내리고 있었다. 중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큰 용이 될 것이라는 뜻에서 ‘네 마리의 작은 용(四小龍)’이라고 불렀다.

이 가운데서도 싱가포르와 홍콩은 함께 영국의 식민지로 출발해서, 영어가 통용되는 데다가, 영국이 세워놓은 ‘법치(Rule of Law)’에 따른 상거래 보호가 잘 된다는 점에서 자유무역 중계지로서 경제가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세계은행(World Bank) 통계에 따르면, 중국이 영국으로부터 홍콩의 주권을 넘겨받은 직후인 2000년 홍콩의 GDP는 1716억7000만 달러(current $ 기준)였고, 싱가포르는 960억8000만 달러로 홍콩의 경제 규모가 싱가포르의 2배에 가까운 규모였다. 1인당 GDP도 홍콩이 2만5756달러로 싱가포르의 2만3852달러보다 약간 앞서있었다. 인구는 홍콩 666만5000명에 싱가포르는 402만7877명으로 홍콩이 다소 많았고, 외국인 직접 투자(FDI)도 홍콩이 GDP의 41.1%였던 데 비해 싱가포르는 GDP의 16.1%에 불과한 규모로, 여러 가지 면에서 홍콩이 싱가포르를 앞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20여 년이 흐른 2023년 현재 싱가포르가 모든 면에서 홍콩을 앞지르는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GDP는 홍콩 3820억5000만 달러에 싱가포르는 5014억3000만 달러, 1인당 GDP는 홍콩 5만696.6달러에 싱가포르는 8만8428달러로 격차가 벌어졌다. 외국인 직접투자(FDI) 규모도 홍콩이 41.1%에서 34.1%로 줄어든 반면. 싱가포르는 16.1%에서 29.8%로 비중이 커졌다. 현재 인구는 홍콩이 753만6100명, 싱가포르는 591만7648명으로 홍콩이 다소 많은 정도다.

그러나 이런 하드웨어적인 수치 말고 법제와 사법 시스템이 보장하는 경제자유도라는 기준에서 홍콩과 싱가포르 사이에는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다. 전 세계 지역과 국가들의 경제 자유도를 조사해 온 캐나다 몬트리올의 프레이저 연구소(Fraser Institute)의 조사 결과, 홍콩과 싱가포르가 60여 년간 유지해 오던 홍콩 우위의 질서가 지난해에 처음으로 역전됐다. 사법의 독립 정도, 법원의 독립성, 사법적 통일성, 정치적 자유도 등을 측정한 수치에서 프레이저 연구소는 지난해에 사상 처음으로 “싱가포르가 홍콩을 제치고 세계 1위의 자유경제지역(World’s freest economy)인 것으로 조사됐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홍콩과 싱가포르의 경제적 자유도가 변하는 사이에 홍콩과 싱가포르에 설립된 다국적 기업의 아시아 지역본부 사무소의 숫자도 변화했다. 지난 2월 발표된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싱가포르에는 4200개의 다국적 기업 아시아 지역본부가 설립돼 있고, 홍콩에는 싱가포르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1336개의 다국적 기업 아시아 지역본부가 설립돼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싱가포르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 자동차 제조사 롤스로이스와 제너럴 모터스가 아시아 지역본부를 설립해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인터넷 플랫폼 기업인 틱톡과 쉬인도 싱가포르에 아시아 지역본부를 설치했으며, 알리바바와 화웨이는 싱가포르 사업 규모를 확장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다국적 기업들은 싱가포르의 법인세율이 17%로, 홍콩의 법인세율 16.5%보다 다소 높지만, 특정 기업을 대상으로 13.5%까지 낮춰주는 탄력적인 법인세율 정책의 수혜자가 되는 것을 겨냥해서 싱가포르에 아시아 지역본부를 두고 있다고 지난 2월 22일 발표된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보고서는 진단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개혁개방 정책의 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1997년 사망)과 영국 마거릿 대처 총리가 1979년에 합의한 홍콩 반환 원칙에 따라 1997년 7월 1일에 실현된 홍콩의 주권 반환 당시 발효한 ‘홍콩기본법(Hong Kong Basic Law)’의 정신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이른바 ‘일국양제(一國兩制·One Country Two Systems)’ 원칙에 따라 발효한 홍콩 기본법 제5조는 “홍콩특별행정구는 사회주의 제도와 정책을 시행하지 아니하며 원래의 자본주의 제도와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최소 50년 동안 변동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돼 있었으나 이 합의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주권 반환 후 50년의 절반도 안 지난 2020년 7월부터 시행된 ‘국가안전 유지법’과 2024년 3월에 홍콩입법회가 통과시킨 ‘국가안전수호 조례’는 홍콩의 자유경제 체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정치적 자유를 박탈함으로써 자유경제 체제 유지에 필수적인 ‘법의 지배(Rule of Law)’가 무력화됐다.

자유경제 체제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요건인 공정한 사법 적용 원칙이 무너지면서 홍콩에는 이른바 ‘퉁로완(銅鑼灣) 서점 사건’이 발생해서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게 됐다. 이 서점 관계자 5명이 지난 2015년 10월에서 12월 사이에 실종됐다가 보름 또는 3개월 후에 중국으로 납치된 것으로 밝혀져 홍콩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 서점이 출판 판매하려던 ‘시진핑과 여섯 명의 여인(Xi and Six Woman)’, ‘시진핑의 애인들(The Lovers of Xi Jinping)’은 결국 출판 판매되지 못했다. 이 퉁로완 서점은 홍콩에서 문을 닫고 현재는 대만 타이베이(臺北)로 이전해서 개업했다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新聞)가 타이베이발로 전했다.

홍콩이 가장 자유로운 자유경제 지역의 지위를 상실한 것은 중국 내 정치 상황의 변화 때문이다. 2020년 10월 24일 중국 최초의 인터넷 플랫폼 기업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馬云)이 상하이(上海)에서 열린 한 금융 심포지엄에 나가 “중국의 은행들은 전당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강도 높은 비판을 한 뒤 실종됐다. 이후 마윈은 실종 상태에 빠져있다가 2년 후 알리바바와 지주회사 앤트 그룹의 지배권을 상실했다.

2022년 10월 16일 개막된 제20차 중국공산당 당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시대의 정치 규칙인 3연임 금지를 깨고 당 총서기 자리에 눌러앉는 정치적 사건을 만들어냈고, 시진핑의 3연임을 전후해서 중국 정치에는 ‘공동부유(共同富裕)’ 같은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의 정치구호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중국 내의 그런 분위기를 피해 많은 중국 부자들이 싱가포르로 탈출하는 흐름이 만들어졌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지난해 2월 27일 “2022년 말까지 싱가포르에는 약 1500개로 추정되는 중국 부자들의 개인사무소가 싱가포르에 문을 열었다”고 보도했다.

싱가포르는 AMCHAM(주한 미 상공회의소)이 지난 3월 국제적인 다국적 기업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아시아지역 본부 설치 선호도 조사에서 가장 선호도가 높은 도시인 것으로 조사됐다. 약 5000개의 다국적 기업들이 아시아 지역본부를 싱가포르에 설치하는 것으로 희망한 것으로 나타났고, 홍콩은 1400개 정도의 다국적 기업들이 아시아 지역본부 설치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에 아시아 지역본부 설치를 희망하는 다국적 기업은 거의 없었다. 다국적 기업들이 아시아 지역본부 설치를 희망하면서 고려하는 사항은 지정학적 역동성, 공급망의 탄력성, 비즈니스와 생활 비용, 시장의 근접성, 조세 부담 등인 것으로 조사됐다. “홍콩에서 탈출한 중국의 부(富)가 향하는 곳이 대부분 싱가포르이지 한국은 아니라는 점을 깨닫고 한국의 비즈니스 조건을 개선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AMCHAM은 충고한 것이다. 요즘 우리의 사법 시스템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점이나, 정치인과 관리들이 부패한 정도도 다국적 기업들이 아시아 지역본부 설치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고려 요소라는 점을 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잘 알아야 할 것이다.

아시아의 금융허브였던 홍콩의 주권이 중국으로 반환된 1997년에 만들어지기 시작해서 2000년 10월에 개봉한 ‘화양연화(花樣年華)’라는 영화가 있었다. 남자 주연은 룅치우와이(梁朝偉·Leung Chiu-Wai)에 여자 주연은 쵱만육(張曼玉·Cheung Man-Yuk)이었고, 두 배우 모두가 1960년대 초에 홍콩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성장한 홍콩사람이었다. 이 두 배우의 이름을 요즘 중국사람들은 ‘맨더린(Mandarin·北方官話)’이라는 중국 표준어 발음으로 ‘량차오웨이(Liang Chaowei)’와 ‘장만위(Zhang Manyu)’라고 부른다. 그러나,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반 홍콩에 거주했던 필자에게는 서양사람들이 ‘캔토니즈(Cantonese)’라고 부르던 광둥어(廣東語) 발음으로 두 남녀 주인공의 이름을 들어야 그 이미지가 제대로 떠오른다. “꽃 같은 시절”이라는 영화제목처럼 룅치우와이와 쵱만육 두 배우는 몸에 착 달라붙는 재킷과 치파오를 입고 홍콩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숨막힐듯한 홍콩의 40대 기혼남녀의 불륜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을 피해 싱가포르로 도망간다.

이 두 배우가 영화 속에서 만나던 호텔 방번호는 ‘2046’이었다. 1997년부터 일국양제(一國兩制)로 보존되는 50년의 마지막 해가 2046년이다. “Are you Chinese?”라고 물으면 “No, I’m Hong Kong people”이라고 대답하던 홍콩사람들이 빚어내던 화양연화 같은 홍콩의 기억은 아무래도 2046년이 채 되기도 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질 판이다.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현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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