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기를 마친 금융감독원의 사정 칼날이 다시 금융지주와 은행을 향하고 있다. 당장 우리은행의 수백억 원대 부정대출 결과 발표를 시작으로 횡령사고와 관련한 제재 절차와 정기검사까지 줄줄이 대기 중이다. 각 사안은 개별 건이지만 모두 민감한 이슈를 담고 있어 은행권에서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180억원 규모 횡령 사고가 발생한 우리은행에 대한 현장점검을 휴지기 직전 마무리하고 조만간 제재를 위한 절차에 착수할 예정이다. 통상 검사 종료 후 2~3주 안에 현장검사 결과와 대책이 발표되지만 추가 확인이 필요하면 시일이 더 걸릴 수 있다.
금감원은 대리급 직원이 수개월간 돈을 횡령했음에도 이를 지점 관계자는 물론 본점에서도 적발하지 못한 것에 대해 시스템상 결함이 있다고 판단하고, 우리은행 내부통제 시스템 운영 실태를 집중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건은 제재 수위다. 본점의 관리 실패가 사고 원인으로 지목되면 중징계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앞서 우리은행은 2022년 발생한 700억원대 횡령 사고에 대해 '기관경고'를 받았다. 감독당국의 금융기관 제재는 △등록·인가 취소 △영업정지 △시정명령 △기관경고 △기관주의 등 5단계로 나뉘는데 기관경고 이상은 중징계로 분류된다.
책무구조도 도입이 담긴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지배구조법) 시행 전 발생한 사고인 만큼 조병규 우리은행장을 포함한 경영진에 대해 제재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180억원대 횡령과 별도로 금감원은 우리은행이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친·인척에게 수백억 원 규모의 부정 대출을 내준 것과 관련한 제재 절차에도 들어간다. 법령 위반 소지와 대출 취급 시 이해 상충 여부 등에 대한 법률 검토를 거쳐 징계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검사 과정에서 발견된 차주와 관련인의 허위 서류 제출 관련 문서 위조, 사기 혐의 등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에 통보하기로 했다.
3000억원대 횡령 사고가 발생한 경남은행에 대한 징계 절차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23일 처음 열린 제재심의위원회에서 결론을 내지 못해 조만간 일정을 잡고 다시 제재심을 개최할 예정이다. 금융권에서는 장기간, 대규모로 횡령이 이뤄진 만큼 내부통제 부실과 늑장 보고에 대한 책임을 물어 경남은행이 기관경고 이상 중징계를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오는 22일부터는 KB금융지주와 KB국민은행에 대한 정기검사가 시작된다. 통상 3년 주기로 시행하는 종합검사의 일환이지만 최근 시장과 업계 상황을 고려하면 피감기관 측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이번 검사에서는 내부통제와 가계대출, 고위험 상품 판매 현황 등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은행에서 올해에만 100억원 이상 대출 배임 사고 3건이 발생했다. 이에 금감원에서는 종합검사 범위를 현행 본점에서 지점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과 같은 고위험 상품 판매 과정에서 내부통제 부실 운영이 있었는지도 점검 대상이다. 국민은행은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H지수 ELS의 최대 판매사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이어지면서 국민은행의 대출 관리 방안도 함께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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