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다채로워지고 있다. 가로수 밑, 버스정류장 근처, 잔디가 벗겨졌던 작은 화단···. 바쁜 일상 속에 스쳐 지나갔던 공간이 이제는 알록달록한 정원으로 탈바꿈해 시민들 발길을 붙잡고 있다.
14일 정오 점심식사를 하러 직장인들이 쏟아져나오는 서울 중구 무교로 일대. 가로수마다 다양한 식생으로 조성된 작은 화단이 눈길을 끌었다. 1㎡ 남짓한 공간에 높낮이가 다르고, 색도 3가지 이상인 식물이 빽빽했다. 폭염을 이기지 못하고 힘없이 처진 꽃은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양보다 질에 초점···사계절 내내 즐길 수 있는 도심정원
가로변 등 도심 속 유휴공간을 활용해 정원을 조성한 '가로정원'은 약 1.55㎞에 이르는 세종대로 곳곳에 마련돼 하나의 매력정원이 됐다. 이전까지 녹지사업이 빈 공간을 메꾸는 확장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정원도시 사업은 어디서든 사계절 정원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도록 '질'에 집중한 모습이다. 유혜미 서울시 조경과장은 "시민들이 사계절 내내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봄·여름·가을에 피는 꽃 종류를 모두 섞어서 심고 있다"며 "풀(초본)보다는 꽃이 피는 나무(화관목)를 더 많이 심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와 자치구의 노력으로 평소 남아돌던 자투리 공간도 매력정원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시가 지난 3월 매력가든·동행가든 1700여 곳을 조성하겠다고 밝힌 이후 지난달까지 176개 공간, 15만9000여 ㎡ 규모에 사업비 220억8200만여 원이 잡혔다. 강남구 율현공원 '거점형 꽃정원' 사업이 2만2000㎡로 규모가 가장 크다.
정원 관리는 다음 과제···"시민정원사 역할 알려졌으면"
매력정원 조성에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뒷받침됐다. 특히 시가 매년 100명 이상 양성하는 시민정원사는 정원박람회부터 매력가든 조성 및 관리까지 자원을 마다하지 않았다.
2017년부터 시민정원사로서 마포구에서 활동해온 최혜숙씨(50대)는 자원봉사만 해오다가 공공정원 설계까지 하게 됐다. 그는 "공덕 1-1 공영 주차장 옆 화단에 쓰레기더미가 쌓여 악취가 났다"며 "2020년에 구청에서 제안이 온 이후 직접 식재설계를 하고 지금까지 관리해오고 있다"고 했다.
최씨는 "처음에 경의선 숲길을 자발적으로 관리를 하니 담당 주무관이 감사하다며 먼저 연락이 왔다"며 "최근에는 젊은 30대 여성이 안 좋은 생각도 했는데 매번 땀 흘리면서 꽃을 관리하는 모습을 보니 위안을 얻는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최씨가 조성에 참여한 공원은 공덕소공원, 서강대역 부근에도 2곳 있다. 이날 최씨를 따라 간 공덕 공영주차장 옆 꽃피는언덕정원, 서울서부지법 인근 공덕소공원 소담길정원에는 버려진 분갈이 흙, 우산 등이 있었다. 최씨는 "시민정원사들은 맡은 구역에 매주 와서 관리하지만 구청에는 그럴 여력이 없을 것"이라며 "특이한 식재를 심으면 뽑아가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양천구청 옆 해놀이 정원, 용산역 앞 잔디광장, 종로구 종로타워도 시민정원사들의 손길이 닿은 곳이다. 자투리 공간을 자발적으로 가꾸고 관리하는 게 이들의 기쁨이다. 도심 유휴공간을 매력가든으로 재탄생시켰다면 꾸준히 관리하는 게 다음 과제다. 아파트나 건물에 딸린 부지는 관리주체가 명확하지만 구에서 만든 자투리 공간은 자칫 관리 사각지대가 될 수 있다고 이들은 걱정한다.
최경재 시민정원사회 회장은 "인근 주민들이 자발적이고 주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먼저 다가가서 리더로서 나서는 게 시민정원사 역할인 것 같다"며 "시민정원사 존재가 10년 가까이 됐는데도 각 구청과 시민들은 잘 모른다. 시가 조례로 매해 교육하고 예산을 투입하면서 양성하는데 역할을 더 알릴 수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