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성창훈 조폐공사 사장 "현금없는 사회? 조폐기술 노하우로 새 먹거리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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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아 기자
입력 2024-08-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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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금 비중 줄자 위변조 기술 활용해 업역 확장

  • 예술형 주화, 국가 이미지 제고·수출 가능해져

  • 남은 임기 2년 목표?…"10년 먹거리 만드는 것"

성창훈 한국조폐공사 사장 사진유대길 기자
성창훈 한국조폐공사 사장 [사진=유대길 기자]
"조폐가 곧 산업이 돼야 10년 먹거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조폐공사도 화폐 제조 분야에 갇힐 게 아니라 정보기술통신(ICT) 기업, 문화 기업, 수출 기업으로 확장해 나가야 해요. 머릿속에 구상해 둔 새로운 사업들을 나열해보니 16가지는 되더라고요."

스마트폰만으로 모든 결제가 가능한 사회다. 서울 시내버스 4대 중 1대는 현금 승차가 불가능하고 키오스크(무인단말기)가 설치된 매장도 매년 늘고 있다. 현금 없는 사회로의 전환이 가속화하면서 사명처럼 화폐 제조에 특화된 한국조폐공사 역시 업역 확장에 한창이다.

성창훈 조폐공사 사장은 아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의 경영 비전이기도 한 '조폐가 산업이 되는 시대'를 수차례 강조했다. 업이 지속 성장하느냐 쇠락하느냐 갈림길에 선 만큼 조폐를 하나의 산업으로 육성해 국민 경제에 기여하는 게 생존 전략이라는 판단에서다.
현금없는 사회 가속화···해법은 '업역 확장'    
성창훈 한국조폐공사 사장 사진유대길 기자
성창훈 한국조폐공사 사장 [사진=유대길 기자]
성 사장은 지난해 10월 제25대 조폐공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취임 직후 가장 큰 고민은 현금 없는 사회로의 전환 속 조폐공사의 역할이었다.

우리나라 전체 지출액에서 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38.8%에서 2021년 21.6%로 하락한 상황이다. 반면 신용·체크카드 비중은 37.4%에서 58.3%로 뛰었다. 현금 결제 거부 비중도 2018년 0.5%에서 2021년 6.9%로 급증했다.

화폐를 찍어내는 조폐공사는 그 여파를 직격탄으로 맞았다. 성 사장이 부임 후 절실히 느낀 건 조직 내 위기감이다. 현금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퇴직 때까지 공사가 멀쩡히 운영될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이 팽배했다.

성 사장은 "조폐공사에 와서 보니 동전 수요가 10년 전에 비해 90% 정도 줄어든 상황이었다"며 "취임 당시의 다짐은 임기 3년 동안 조폐가 산업이 되는, 10년 먹거리를 마련하고 공사를 떠나겠다는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업역 확장을 위해서는 공사가 제조업 관성에서 벗어나 벤처기업처럼 변화에 빠르고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 공사가 보유한 조폐 기술과 노하우를 접목할 새 분야를 찾는 것도 과제였다. 

조폐공사의 주 업무는 화폐와 신분증 제작이다. 그는 "지폐와 동전, 여권·주민등록증·공무원증 등만 제작해서는 현 매출을 유지해 나가는 것도 버거운 게 현실"이라며 "자칫 인력 감축까지 고려할 처지"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기준 조폐공사의 매출 비중은 화폐 제조 24%, 신분증 제조 24%다. 기존 주력 사업의 매출 비중이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얘기다.

다행히 조폐공사에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위변조 방지 기술이 있다. 5만원권 제작에만 22가지 기술이 적용될 정도다. 조폐공사는 이 역량을 '브랜드 보호 사업'에 활용했다. 화장품·농수산물·공산품 등에 위변조 방지용 보안 스티커를 부착해 중국산 가짜 제품에 대응하는 것이다.

함량을 속이기 쉬운 금 역시 이 기술로 품질을 인증한다. 직접 골드바를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다. 성 사장은 "골드바는 1㎏에 1억원이 넘어가 금액적 부담이 크다"며 "조그맣게 1g짜리로 제작하면 13만원 정도에 판매할 수 있어 소비자가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24 파리올림픽을 맞아 지난달 판매한 '팀코리아 골드카드' 제품이 대표적이다. 화폐를 만드는 기술이 문화 상품 판매로 확장된 셈이다.

성 사장은 화폐 제조 기술 측면에서 한국이 글로벌 상위권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해외에서도 위변조 기술을 다른 분야에 활용하는 국가는 중국과 스페인 등 몇 나라에 불과하다"며 "이렇게 기술을 확장해 나가는 것은 우리나라가 제일 앞서 있다"고 자신했다.
조단위 시장 '예술형 주화', 미래 먹거리로
해외 주요국 예술형 주화 사례표한국조폐공사
해외 주요국 예술형 주화 사례[표=한국조폐공사]
최근에는 요판화 사업으로도 시야를 넓혔다. 화폐를 제조하는 인쇄 기술로 미세한 선이나 점을 표현하는 일종의 문화 산업이다. 

공사가 미래 먹거리 중 가장 주력하는 '예술형 주화'도 이 기술을 통해 탄생했다. 예술형 주화는 국가 상징물을 소재로 발행하는 기념주화다. 보통 국가적 행사나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한시적으로 발행한다.

성 사장은 예술형 주화를 두고 "새로운 산업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예술형 주화 발행은 국가 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될뿐더러 판매량의 절반 이상이 해외로 팔려 나가 수출 증진에도 기여할 수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예술형 주화 시장은 20조원 이상 규모로 성장했으며 매년 파이를 키워 나가고 있다. 그는 "우리보다 앞서 예술형 주화를 도입한 국가들도 한국의 참여를 독려하는 중"이라며 "5000년에 달하는 역사,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 등을 한국이 가진 매력으로 꼽는다"고 귀띔했다. 

조폐공사는 세미나 등을 통해 예술형 주화의 적절한 도안을 모색하고 있다. 동전의 한 면은 한글을 넣었으면 좋겠다는 게 세미나 참석자들의 중론이다. 또 다른 면의 경우 호랑이·봉황·해태 등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성 사장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한 뒤 국민 의견도 청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은행도 현행 법 내에서 예술형 주화 도입이 가능한지 검토 중이다. 제작이 결정되면 6개월 혹은 1년 정도면 시판에 나설 수 있다. 성 사장은 "임기 중 예술형 주화 도입이 결정된다면 제일 큰 보람이 될 것"이라며 "1년에 5조원씩 발행하는 나라도 있지만 우리는 500억원이든 100억원이든 시장 상황을 감안해 늘려 간다면 좋은 사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도래로 각광을 받는 블록체인 기술도 새로운 사업 모델로 육성하고 있다. 조폐공사는 10년 전부터 타 기관에 앞서 블록체인 기술 연구와 사업화에 나섰다. 

2018년에는 블록체인 기반의 모바일 지역사랑상품권을 출시했다. 지금은 전국 80여 개 지방자치단체에 지류·카드·QR코드 등 모바일 상품권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모바일 신분증에도 조폐공사만의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된다.
"워라밸·실적 두루 갖춘 'A급' 공기업 될 것"
성창훈 한국조폐공사 사장 사진유대길 기자
성창훈 한국조폐공사 사장 [사진=유대길 기자]
합계출산율 0.72명의 저출생 시대에 조폐공사 임직원 평균 자녀 수는 1.7명에 달한다. 일·가정 양립을 위한 근무 환경 유연화에 공을 들여온 결과다. 

남녀 구분 없이 눈치 보지 않고 육아휴직 제도를 100% 사용할 수 있는 게 대표적 사례다. 성 사장은 "육아휴직을 써도 인사상 차별이 전혀 없으니 직원들이 필요할 때 자유롭게 신청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조폐공사는 지난 6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3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서 양호(B) 등급을 받았다. 32개 공기업은 △탁월(S) 0곳 △우수(A) 6곳 △양호(B) 10곳 △보통(C) 11곳 △미흡(D) 4곳 △아주 미흡(E) 1곳으로 집계됐다.

조폐공사는 상위 50% 내에 드는 성적을 거뒀지만 성 사장은 전혀 다른 관점을 제기했다. 그는 "우리의 진짜 실력은 C 정도라고 직원들에게 강조한다"고 전했다.

이어 "다만 화폐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직원 모두가 도전적으로 업무를 수행했기에 B등급을 받은 것"이라며 "좀 더 분발한다면 내년에는 A등급을 받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웃었다. 

성 사장은 수평적 조직 문화를 지향한다. 직원들이 상급자를 평가하는 '보텀업(Bottom-Up)' 방식의 인사 제도를 도입해 호평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스스로에 대한 직원 평가도 진행했다.

그는 "사장 평가를 해보니 일을 너무 많이 벌여 놨다는 지적이 가장 많았다"며 "신사업 확장에 주력한 탓에 지방 공장 직원들이 소외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외부 일정이 많으니 이사들과 업무를 분담하라는 지적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솔직한 지적은 따끔하지만 공사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직원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게 성 사장의 지론이다.

성 사장은 1400명이라는 직원 수가 주는 무게감이 결코 작지 않다고 했다. 그는 "직원들의 생계부터 임기 후 공사의 미래까지 매 순간 어떤 게 회사에 도움이 될지 고민한다"며 "남은 2년여의 임기 동안 10년 먹거리를 확실하게 만들어 두고 떠나고자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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