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우의 공정경제] 시장의 일은 시장이 가장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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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전 국회의원
입력 2024-08-22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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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제 21대 국회의원
[이용우 제 21대 국회의원]
 
우리 기업이 미국 시장(NYSE 또는 NASDAQ)에 상장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접하면 국내 시장 상장보다 좋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절반만 맞는 것이다.

몇 년 전 필자가 금융위 간부에게 미국 시장에 상장심사가 있는지를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당연히 있는데 왜 물어 보지 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상장심사 절차가 없기 때문이다. 상장은 전문가들이 스스로 책임을 지고 계약을 맺는 사적인 일로 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주관사다. 회사가 주관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증권거래위원회(SEC·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의 S-1 보고서를 제출함으로써 상장 절차는 시작된다. SEC가 S-1 보고서의 회계 및 투명성 등을 ‘점검’하는 것을 '심사'라고 한다면 심사가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심사 절차는 없다. S-1 보고서에 기재된 정보가 허위이거나, 투자자가 오인(misleading)하게 하거나, 상장 후 사업이 기재된 것과 다르면 투자자는 이를 사기 행위로 보고 소송을 제기하고 법원의 판결에 따라 처벌이 뒤따른다. 주관사는 회사가 S-1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에 조언을 한다. 투자자의 관점에서 재무제표뿐만 아니라 리스크 요인, 향후 성장 전망 등 모든 정보를 담도록 돕는 것이다.

주관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수요예측(Bookbuilding)이다. 수요예측에는 연기금 및 여러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가 참여한다. 주관사는 회사와 함께 잠재적 투자자를 접촉하고 회사의 IR을 주선한다. 기관투자자는 가격과 인수 물량을 제시한다. 우리나라의 수요예측과 다른 점은 가격과 물량을 제시한 투자자는 그 주식을 인수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A회사가 주당 30달러 희망 가격에 1000만주를 상장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기관투자자들은 S-1과 IR 등을 분석하고 투자를 결정한다. a기관이 50달러에 200만주, b기관은 45달러에 100만주 등으로 투자금액을 제시한 결과 40달러에서 희망 물량 1000만주가 소진된다면 상장가격은 40달러로 결정되고, 수요예측에 참여한 투자자는 40달러에 희망 물량을 인수한다. 만일 희망 물량이 20달러에 소진되면 상장가격은 20달러가 된다. 이때 회사는 20달러에 발행하든지 아니면 상장을 포기하고 다른 시점이나 다른 자금 조달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다. 소프트뱅크가 투자한 위워크가 상장을 포기한 이유는 상장가격이 희망가격보다 낮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우리와 달리 수요예측에 반드시 책임(=비용)이 따른다. 돈을 내고 참여한다는 것이다. 시장에 참여하여 자기 돈을 갖고 투자하는 기관투자자이기 때문에 상장심사를 할 필요가 없다. 전문가가 심사하는 것과 돈을 내고 직접 책임을 지는 투자자의 의사 결정, 어떤 것이 더 효과적일까?  

미국 절차의 특징은 정부기관이 가격 결정에 개입하지 않고 시장에 맡긴다는 점이다. '시장의 일은 시장이 가장 잘 안다'는 원칙이 지켜진다. SEC는 시장 질서를 유지하는 규칙을 정하고 불공정거래 등 시장질서를 교란하는 시장 참여자에 대해 압수수색까지 할 수 있다. 질서 유지에 관한 법규만 있다면 시장 참여자가 스스로 새로운 것을 찾고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시장질서 유지는 정부기관인 SEC가 담당하고, 참여자 간 다툼은 소송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다. SEC의 처분도 최종적으로 사법부의 판단으로 확정된다. 핵심은 사법부 피해구제절차의 신속성과 실효성이다. 1)증거개시절차(Discovery)와 2)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s) 제도가 소송의 신속성을 담보한다. 증거개시절차는 원고와 피고가 소송에서 사용할 증거를 법원의 명령에 의해 서로 공개하는 제도다. 이는 '무기 대등의 원칙'이라고 하는데 서로 소송에 사용될 증거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소송 지연 전술이 불필요하고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있어 당사자 간 조정을 촉진한다. 우리나라는 법원의 심문기일에 법정에 나가서 진술한 것만을 인정하는 것에 반해 미국에서는 쌍방 변호사가 상대방의 진술을 녹취하여 증거로 제출할 수 있어 재판을 통해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다. 미국은 보상적 손해배상(Compensatory Damages)에 더해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s)을 인정한다. 단순 과실(Negligence)을 넘어 고의적·악의적(Maliciously) 행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이 요구할 수 있다.  S-1 보고서의 내용이 고의성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치명적인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미국 시장 상장 시 기대가 절반만 맞다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장 규모가 크고 다양한 투자자를 유치할 수 있기 때문에 큰 기회이지만 상장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과 리스크도 매우 크기 때문이다.

미국 상장 제도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의 문제는 무엇인가?
첫째, 상장심사에서 그 기준을 마련하고 심사할 수 있는 전문가가 부족하는 점이다. 한국거래소에서 상장심사를 한다. 그 기준은 해당 사업의 전문가, 교수 등의 조언을 받아 만들고, 이 기준에 따라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심사한다. 문제는 전문가 풀(pool)이 매우 적다는 데 있다. 기술특례상장제도에 의해 적자임에도 불구하고 상장이 허용된 바이오산업을 예를 들어 보자. 2018년 코로나19·바이오 열풍을 타고 상장했던 바이오벤처들은 올해 상장 5~6년 차가 도달하면서 무더기 상장폐지 위기에 빠졌다. 올해 3월 말 KOSPI·KOSDAQ 시장에서 상장폐지사유 공시 기업 29개 중 7개가 바이오벤처였다. 감사의견 거절, 경영진의 횡령·배임과 기술 개발이 아닌 금융투자 손실로 위기에 빠진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어떻게 심사했을까? 이 산업도 세부적으로 나누면 매우 다양한 영역이 있다. 이런 각 영역의 기업을 이해하고 심사할 수 있는 전문가가 얼마나 있을까? 이 영역을 잘 아는 전문가가 있다고 할지라도 해당 기업과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때마다 상장심사·유지 기준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기준을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심사 잘못이므로 심사를 주관하는 KOSPI·KOSDAQ 그리고 주관사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기준을 주관하는 거래소 및 금융위원회 관계자가 전문영역을 잘 알고 있는가? 잘 모르기 때문에 그 분야 전문가의 조언을 듣거나 참여시켜 심사할 것인데, 그 풀이 적을 때에는 어떻게 되는가? 어차피 기준은 제 기능을 하기 어렵다. 이 상황에서 상장 관계자나 담당 관료는 위험을 회피하는 태도를 가진다. 잘 알 수 없는 분야에 대해 가능하지도 않은 '모든 경우의 수'를 따진다. 결국 제도 마련은 지체되고 그조차도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둘째, 당국이 시장가격에 개입하는 것이다. 1)PEF가 지배하는 상장기업의 과도한 공모가 산정, 주관사와 기관투자가의 공모가 ‘뻥튀기’에 가이드라인을 만들거나 2)대형 IPO기업의 유가증권 상장신고서를 수정하여 공모가 산정에 개입하는 사례 등이 그것이다. 물론 금융당국은 "공모가 산정 기준을 더 명확히 기재해 달라는 취지"라며 "공모가가 높은지 낮은지 우리가 판단하지는 않는다"고 말하지만 최근에는 기준금리 상승에 따라 개인들의 이자율 부담이 높아지는 것에 대해 금감원장이 이자 부담을 경감시키는 방안을 은행장들을 소집하여 발언하는 등 시장가격에 직접 개입하는 사례도 있다. 시장금리가 5%인데 당국이 개입하여 4%가 되었다면 무슨 문제가 일어날까? 이 금리가 적정한지 여부를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5%의 시장금리에 대출되었을 때 은행은 그에 걸맞은 대손충당금을 적립하여야 한다. 대손충당금은 그 대출의 부도위험(PD·Possibility of Default)에 예상손실액(LGD·Loss of Given Default)를 곱하여 산출된다. 5%의 시장금리를 4%로 되게 하면 부도위험은 줄어들 것이다. 예상손실액에 변화가 없다면 은행은 실제보다 적은 대손충당금을 적립하게 될 것이며 실제 부도가 발생했을 때 대손충당금이 부족할 가능성이 있다. 이 부족에 대한 책임은 은행에 있을까, 아니면 당국에 있을까? 당국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나?

당국의 직접적인 시장개입으로 국가가 직접적 손실을 본 사례는 투자자 국가소송(ISDS·Investor State Dispute Settlement) 절차에서 발견된다. 1)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하나은행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당국이 인수가격 문제에 개입한 것에 대해 론스타가 우리나라를 상대로 ISDS 절차를 밟은 결과 정부가 론스타에 2925억원을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조정으로 지연이자 1000억원, 소송비용 470억원 정도를 더해 총 4500억원 정도를 배상하여야 하는 사례 2)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이에 개입한 것에 대해 론스타, 메이슨 캐피털이 ISDS의 조정으로 정부가 양사에 대해 각각 270억원, 438억원을 배상하는 사례가 그것이다. 조정의 핵심 요지는 당국이 법규에 의하지 않고 임의로 개입하여 가격에 영향을 주어 투자자에게 손실을 입힌 것에 대해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치(官治)의 문제가 생긴다.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이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것은 아니다. 당국은 제도를 정비하고 법규를 명확히 하는 것이고 시장 참여자는 그 제도 변화에 따른 가격 신호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다.

셋째, 금융업 중 일부를 인위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정책이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2016년 사모펀드 육성정책을 예로 들어 보자. 공모펀드는 감독당국에 사전신고하여 승인(약관, 신탁계약 등)을 받아야 하는 등 엄격한 규제가 있다. 반면 사모펀드는 이런 규제가 면제된다. 50인 미만의 제한된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운용 방법 및 대상 상품을 선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적 자치의 원칙으로 국가가 간여할 이유가 없다. 라임, 옵티머스, DLF(독일채권) 등 소비자 피해를 양산한 금융상품이 대부분 사모펀드였다. 공모펀드 규제를 받아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모자펀드, 시리즈펀드 등 형식으로 사모펀드로 포장하였던 것이다. 말 그대로 사모펀드였다면 은행에서 그렇게 많이 팔릴 수도 없고 피해자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주기적으로 반복될까?

정책을 입안하는 당국자들이 시장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저 상품이 잘되는데 우리는 왜 잘 안 될까라는 생각으로 그 시장을 키우기 위해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금융위·금감원 당국자는 유가증권시장에서 거래를 할 수 없다. 주식이나 채권도 거래해 보지 않은 사람이 파생상품까지 포함된 다양한 상품 거래의 리스크와 그 거래 이유 등을 알 수 있을까? 시장 참여자들과 의견을 교환한다면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지만 유착, 이른바 카르텔 이슈로 만나는 것을 신고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럴 기회도 적다. 시장 관계자나 전문가들과 공식적으로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있지만 그 정책에 대해 시장 참여자는 어떤 생각을 할까? 새로운 정책에 대한 의견을 묻는 순간 시장 참여자는 당국자의 정책 의도를 간파하고 그 정책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생각하며 이를 우회할 방법을 찾고 있지 않을까? “정책이 나오면 30분 내에 대책을 찾을 수 있다.” 필자가 기업에서 일할 때 종종 하는 이야기다.

정책이 의도된 결과를 낳으려면 그 정책을 받아들이는 시장 참여자의 반응곡선을 이해하여야 한다. 시장이 정책 의도와 목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란 태도는 곤란하다. 시장을 모르는 사람들이 제도를 만드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규제가 명확하면 시장 참여자들은 그 체계 내에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그 과정에서 산업이 육성되기 때문에 육성정책은 필요가 없다. 정책수용성 문제로 당국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효과를 검증한 후 법규로 편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가이드라인의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위배하였을 때 당국이 조치를 하면, 법적 소송으로 이어지고 당국이 지는 경우가 많아진다. 가이드라인을 지키기만 한다면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시장 참여자는 면책될 가능성이 높고 그것을 만든 당국자에게는 책임이 뒤따르게 된다. 가이드라인도 엄해지고 시장 변화 속도에 맞지 않는 뒷북이 되는 것이다.

네 번째 문제는 시장이 원활히 작동하고 시장의 갈등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시장 환경을 위한 정책이 외면되는 것이다. 시장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이유 중 하나는 정보비대칭성(information asymmerty)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공시제도(disclosure rule)를 정비하여 시장 참여자들 간 분쟁을 조정할 재료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특히 정보비대칭성은 금융사와 금융소비자 사이에 가장 크게 나타나기 때문에 금융사가 판매하는 상품, 회사에 대한 정보를 빠르고 광범위하게 유통되게 하여야 한다. 사모펀드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금융소비자였다. 금융소비자보호처를 독립시키는 것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금융회사의 비용이 증가하고 감독당국의 권한이 축소될 것이 두려워 필요한 정책도 추진하지 않는 것이다. 소비자가 금융회사를 믿지 못하는데 금융산업이 발전할 수 있을까?

미국 시장의 상장과 우리나라의 그것을 비교했을 때 가장 핵심에 있는 것은 정책당국이 할 일, 법원이 할 일, 그리고 시장 참여자가 할 일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는 점이다. 주어진 법규 아래 시장 참여자는 자기 이익을 위해 다양한 것을 시도하고 그것의 결과도 자신이 지는 '자기책임' 원칙이 지켜지는 것이다. 정책당국이 심사하면 그 잘못에 대한 책임도 따라온다. 어떤 사안에 대해 정책·감독당국에 문의를 한다면 답을 내려고 하지 말고 '알아서 하라. 그 결과의 책임도 당신에게 있다'는 자세를 가지면 된다. '시장의 일은 시장이 가장 잘 안다'는 원칙과 시장 참여자의 자기책임 원칙에 의한 시장 접근, 시장 참여자 간 다툼과 피해 구제를 위한 소송제도 등 신속한 해결 장치를 만드는 것이 공정한 시장을 만들기 위한 핵심이다.



이용우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 박사 ▷제 21대 국회의원 ▷카카오뱅크 공동대표 ▷한국투자신탁운용 총괄 최고투자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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