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의 기밀 유출 사건을 계기로 국가 안보 체계에 대한 점검 필요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70년째 제자리걸음 중인 간첩법을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다. 군사기밀뿐 아니라 기업 차원에서의 기술 유출 위험성도 나날이 커지고 있어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새로운 법 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2대 국회에서 발의된 간첩법(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총 13건이다. 군사상 기밀 누설 책임을 다루는 군형법 일부개정법률안도 2건이 발의된 상태다. 간첩법 개정은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4건의 관련법 발의를 통해 논의됐지만, 전부 폐기됐다. 당시 국회에서는 간첩죄의 적용 범위가 넓어진다면 처벌 대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 다만 22대 국회에서 여야가 동일한 내용의 법안을 다시 마련한 만큼 간첩법 개정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이미 형성된 분위기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개정안은 형법 98조에 명시된 간첩죄 처벌 대상을 '적국'에서 '외국'으로 넓히는 것을 골자로 한다. 형법 98조 1항은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를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헌법상 우리나라는 북한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외국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적국의 범위에는 현재 대한민국과 휴전 상태인 북한만 포함되는 것이다.
일례로 최근 정보사 군무원이 중국 국적을 가진 동포(조선족)에게 이른바 '블랙 요원' 명단이 담긴 군사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군 수사를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외국을 위한 행위로 판단돼 간첩죄로 처벌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군형법은 군사기밀의 특수성을 인정해 일반 형법보다 처벌 수위가 강력하다. 군형법 13조에 따르면 적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사람은 사형, 적의 간첩을 방조한 사람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한다. 그러나 이 또한 처벌 인정 대상이 '적'이라는 모호한 표현에 국한돼 있다. 만약 간첩 행위가 동맹국 등 외국과 관련될 경우 간첩법 자체가 사문화되는 셈이다.
1953년 제정 이후 70년 넘게 그대로 유지 중인 간첩법의 허점을 두고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21일 '형법 제98조 개정 입법토론회'에서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스파이를 적국에 한정해서 처벌하는 나라는 없다"며 "보호해야 할 국익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안보 정책 드라이브의 일환으로 간첩법 개정을 당론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실제로 미국, 독일, 영국 등 여러 국가는 간첩법에서 외국의 범위를 포괄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독일은 형법 94조에서 '다른 국가'나 '알선인'에게 국가기밀을 전달하는 행위를 외환죄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 98조와 99조에서도 간첩 활동의 범위를 '다른 국가나 다른 국가의 정보기관'을 위한 적대 활동으로 보는 등 우리나라와 달리 적·외국 개념을 구분하지 않았다.
영국도 지난해 7월 국가안보법(National Security Act)을 제정하면서 간첩법을 강화했다. 국가안보법 32조에서는 간첩법 적용 대상을 외국 주권자, 외국 정부 등으로 설정하면서 이를 '외부 세력'이라고 명명했다.
미국은 미 연방법 18편 37장에 따라 '외국'과 관련한 간첩 활동을 제재하고 있다. 37장 794조에 따르면 '외국 정부를 위한 국방 정보의 수집 또는 제공' 등의 행위를 한 자를 처벌하도록 했다. 아울러 연방 특별법의 형태로 연방간첩법, 선동금지법, 외국인등록법 등 법률이 마련돼 있어 간첩죄 처벌 규정을 체계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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